권한 위임의 심리학

“조언해달라”는 말로 회의 시작해 보라
평범했던 직원의 잠재력이 터진다

268호 (2019년 3월 Issue 1)

PDF 다운로드 횟수 10회중 1회차 차감됩니다.
다운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아티클 다운로드(PDF)
4,000원
Article at a Glance
권한 위임, 자율성 확보 등이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과제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정작 왜 필요하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물어보면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심리를 조금만 더 깊이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 사람들은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느낄 때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조언을 해달라’는 말로 회의를 시작해 보자.
2.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은 다르다. 전문가는 추상적이고 넓은 범위의 과제를, 비전문가는 세세하고 명확한 과제를 줘야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3.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동기부여만큼 중요한 게 ‘왜 일을 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성취를 위해 일하는 상황과 회피하고 싶어 일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모 A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시는지. 그 부모 A는 당연하다는 듯이 열심히 살도록 가르친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다. 다시금 분명한 어조로 미래에 성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되돌아온다. 이번에는 또 다른 부모 B에게 물었다. 성공하고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정작 아이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면서도 두 부모 A와 B 중 누구로부터도 듣지 못한 대답이 있다. 바로, ‘어떻게 하면 열심히 살 수 있는가’다. 우리 인생은 항상 이런 대화들 속에서 힘들어진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그 행동이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는 정말 많은 사람이 목청 높여 얘기해 준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무엇을 시작하고, 또 진행하며, 유지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교사와 열심히 공부하면 어떤 좋은 결과가 있는가를 말해 주는 멘토들은 세상에 차고 넘쳐나지만 정작 ‘어떻게 하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른들의 세상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자율성과 권한 위임에 대한 세상의 이야기다.

요즘 들어 다양한 조직에서 통찰력 있는 많은 분이 부쩍 강조하는 바가 바로 권한 위임과 자율이다. 그래서 필자에게도 자주 물으신다. 어떻게 하면 권한 위임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를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권한 위임이라는 용어는 심리학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 뜻을 한번 찾아봤더니 ‘empowerment’라고 나와 있다. 무슨 말이겠는가. 아랫사람에게 power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경영학을 비롯한 관련 분야 문헌들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가도 찾아봤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중요한 업무를 부하에게 할당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 위임을 통해 업무 수행 시 범위와 판단의 자율성을 증대함. 그리고 이를 통해 관리자의 승인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조직관리 방법’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렇게 권한 위임을 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찾아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첫째, 자기 효능감을 고양시킬 수 있다. 둘째, 내적 동기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극대화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다른 전문가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내적 동기와 자율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면 한결같이 분명한 어조로 권한 위임을 해야 한다고 한다. 권한을 하급자에게 재분배하라는 말이다. 이럴 때마다 솔직히 조금 약이 오르지 않으신가? 목적과 방법을 계속해서 같은 선상에서 말을 한다. 필자의 느낌을 조금 솔직히 말하자면 원인으로 결과를 설명하고 다시금 결과로서 원인을 말하는 순환논리, 혹은 순환모순이라고 쓴소리를 하고 싶을 정도다. 필자가 이렇게 불평하자 가깝게 지내는 경영학자 한 분이 그래서 권한 위임이 힘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하긴 어떤 무언가가 매우 중요한 것은 분명한데 그 구체적인 방법들은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필자 역시 마땅한 답을 속 시원히 내놓지 못해 죄송스러운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자율성을 통해 보다 ‘정확한’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먼저 자율의 근본적 목적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자. 그렇게들 자율을 강조하는데 정작 그 자율의 근본적인 힘과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많은 리더와 조직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른바 그저 ‘알아서들 잘해라’와 ‘나 좀 신경 쓰지 않게 해줘’라는 안일한 생각도 상당 부분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솔직한 상황인 경우도 많다. 심리학 연구들을 종합하면 자율적인 사고와 행동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의외의 힘은 ‘정확함’에 있다. 자율이 어떻게 정확함과 일맥상통하는지 많은 분이 어리둥절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 의아함은 자율과 자유, 더 나아가 일탈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식견 부족 때문이다.

시카고경영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아일렛 피스바(Ayelet Fisbach) 교수 연구팀은 자율이 흥미와 결합하면 조직의 정확함과 치밀함이 어떻게 더 강화되는가를 절묘하게 보여준 연구로 유명하다. 피스바 교수의 유명한 연구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1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중 하나를 시킨다. 당연히 흥미로운 일을 시키기 위해서 자율적인 선택을 사전에 보장했고 그렇지 못한 일을 부여하기 위해서 반대로 타율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일을 하든 간에 그 일을 할 때마다 적은 금전적 보상과 (적은 보상의 2배 정도 되는) 큰 보상 중 하나를 받게 된다. 흥미는 심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내적 동기로 분류한다. 그리고 금전적 보상은 전형적인 외적 동기다. 내적 동기가 외적 동기보다 더 강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행동을 유지시킨다는 것은 학부 1학년에 배우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은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지금 당장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일을 내일 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사람들이 그 일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할까? 물론 내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얼마나 할 것 같은지 그 예측치를 말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렇게 다소 복잡한 상황의 조합을 통해 지금 하는 사람들의 실제 수행과 자신이 그 일을 어떻게 할까를 예측한 양 간의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게 된다.

그 결과는 일을 지금 당장 하는 사람들은 외적 동기에 해당하는 금전적 보상이 많든 적든 간에 거의 차이 없이 흥미로운 일을 더 오래, 많이 했다. 내적 동기가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한 것이다. 그런데 내일 그 일을 한다고 설정해 예측치를 답한 사람들의 양상은 판이했다. 흥미 여부와 상관없이 돈을 더 많이 받는 일을 더 많이, 오래 할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예측한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일을 얼마나 오래 하고 많이 할 것인지를 ‘예측’할 때는 돈과 같은 외적 동기가 얼마나 큰가를 주로 고려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할 때는 흥미와 같은 내적 동기제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그러니 더더욱 중요한 점 하나가 부각된다. 큰 보상과 같은 외적 동기를 받기 위한 예측치가 실제 일한 양과의 차이가 가장 컸다는 것이다. 피스바 교수의 이러한 결과는 이후 다양한 후속 연구를 통해서 반복 관찰됐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최소한 세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저 돈과 같은 금전적 보상을 보고 뛰어든 일은 오래 못한다. 횟수와 지속시간 모두에서 그렇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신의 예상보다 더 못한다는 점이다. 둘째, 내적 동기인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훨씬 더 예측력이 정확하다. 얼마나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스스로 판가름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자율적인 상황과 조직에서만 흥미와 관심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셋째, 내적 동기 없이 외적 동기(돈 or 인센티브)에만 의존한 예측은 최악으로 부정확해지며 따라서 가장 심각한 계획 오류를 초래한다. 계획 오류는 사전에 예측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결과가 나오지 않는 모든 경우를 의미한다. 당연히 개인과 조직을 극도로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러니 이러한 세 가지 함의들은 조직과 리더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말해준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통해 얼마나 큰 인센티브나 금전적 보상을 받는가를 강조하면 팔로어들은 필연적으로 낙관적 계획 오류에 빠진다. 조직은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과 리더는 어떤 일을 하게 만들기 전에 그 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아까워 한 결과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자율은 흥미와 관심이라는 내적 동기를 매개로 해서 예측과 결과 간의 괴리를 좁히는 정확함을 조직에 선물한다. 그 선물의 결과는 건강한 자신감이다.

자율적 조직은 평상시가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한다
자율은 창조와 혁신을 만든다고 한다. 왜일까? 바로, ‘우연적 협동’에 의한 극대화된 융통성과 탄력성을 조직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에 따르는 걱정 중 하나가 이른바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평상시에 좀 약해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 가보시라. ‘어? 여기는 사람들이 설렁설렁 일하네?’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심지어 자율적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강한 미군의 경우는 가끔 (속된 표현으로) 당나라 군대라는 비아냥까지 받아 오곤 했으며 실제로도 그런 느낌을 우리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율적인 조직의 가장 큰 힘은 평상시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발휘된다.

독일군과 일본군은 가장 엄격한 규율로 자신이 맡은 일을 확실히 해내는 모습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국민성과도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이 왜 미군에 패배했는가를 분석하는 학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내부의 규율과 규칙, 심지어는 전통을 지나치게 강조해 다른 조직과의 협동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쟁역사 전문가들은 육해공 다른 병종 간은 물론이고 같은 병존 내 다른 병과 간의 협동조차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

매우 놀랍게도 미군은 이러한 협동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그것도 위급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강하게 발휘됐다는 사실이다. 독일과 일본의 눈으로 보면 미군은 군기가 빠진 정도가 아니라 보이스카우트 캠핑 온 사람들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미군들은 상륙작전 때 상륙하는 해병대나 보병이 쓰러지면 의무병도 아닌 공병이 부상병들을 구출해 냈다. 함정의 대공포 사수가 쓰러지면 취사병도 순간적으로 기관포를 대신해 쐈다. 공병이 가교나 부교를 놓다 적의 총탄에 쓰러지면 보병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견원지간이었던 해군과 육군에서도 빅딜은 늘 이뤄졌다. 해군 최고사령관 체스터 니미츠가 육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가 입안한 작전의 가치를 인정하고 통합 지휘권을 양보했을 정도니 말이다. 각기 다른 병종과 병과의 구성원들이 자기 일이 아닌데도 역동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어느 누가 시키거나 평상시 가르치지 않았어도 순간적이고 본능적으로 지휘관들과 병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동들이었다.

반면, 엄격한 규율과 군기는 강조됐지만 그로 인해 자율성은 거의 없었던 두 침략국은 자기들끼리의 협동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군이 협동이 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미드웨이해전에서 미군에게 자국 함대가 전멸하다시피 한 사실을 일본 육군은 6개월이 지나서 알게 된다. 그것도 자체 첩보망을 통해서라고 전해진다. 독일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군과 육군이 거의 따로 놀아 히틀러는 전쟁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연합국의 일원인 영국군조차도 미군에 비해 병종 및 병과 간의 협동이 취약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 나라 군대는 자율보다는 규율과 군기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작은 단위의 조직 내부 논리와 규칙을 지나치게 따르는 배타적 측면을 지니게 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조직의 힘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게 된다. 평상시에 엄격한 규율에 맞춰 열심히 맡은 바 임무에만 전념하는 모습은 리더와 조직의 상층부의 입장에서는 매우 흐뭇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행동으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안정적 모습이 유지되는 것은 그야말로 ‘평상시’다.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는 평상시 모습에서 엄격한 규율과 통제된 모습으로 개미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조직은 문제가 없다’는 정신적 위안이자 못된 마취제를 스스로에게 투여하는 것은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앞으로 더 위험해 진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지금보다 미래에 변화의 폭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조직은 평상시보다는 변화의 격랑을 만났을 때 더 강한 적응력과 탄력성을 지닌다.

자율적 조직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여기서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자율적인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무리 잘 알아도 ‘자율적으로 하라’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을 자율적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들을 살펴보자. 하나하나가 수많은 관련 분야 연구자의 세밀한 실험들과 관찰을 통해 증명된 것들이다.

1. 조언을 구하지 않으면 권한 위임이 불가능하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명제의 이유를 최근 싱가포르경영대학(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의 마이클 셰러(Michael Schaerer) 교수 연구진이 잘 밝혀냈다. 2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어떤 주제와 관련해 타인에게 설명하게 했다. 그런데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조언하는 방식’으로,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대화하는 방식’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양쪽 모두 자신들의 설명이 끝난 후 전혀 무관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얼마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 ‘조언’과 ‘대화’ 그룹의 차이는 분명했다. 조언한 사람들이 자신을 훨씬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더욱 놀라운,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그다음 실험에서 나타났다. 이번에는 조언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참가자들에게만 해당된다. 이 중 절반에게는 자신의 조언을 상대방이 들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그들의 조언을 상대방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후 양쪽 모두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내 권한을 좀 더 많이 가져 책임을 지는 역할을 하고 싶다’라는 질문을 받았다. 결과의 차이는 이번에도 확연했다. 전자에서 훨씬 더 높은 의향이 나왔다. 종합해보자. 사람들은 상대방이나 조직이 자신이 조언 가능한 대상이라고 인식할 때 스스로 권한을 가져보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건 그 조언과 그 이후의 일이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에라도 말이다. 게다가 자신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책임지고 해보겠다’라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걱정과 우려도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탈레스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시금 그 지인은 ‘그럼,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탈레스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건 남에게 충고하는 것일세.’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본다는 말이 있다. 그런 어리석음을 꼬집는 말이다.

이 말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 보시라.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낮은 위치의 부하라도 뛰어난 리더의 티를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조언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의견 있으면 말해 보라’는 고압적인 자세를 버리고 ‘조언해 달라’는 낮은 자세의 분위기를 만들어보라는 뜻이다. 그럼 그들은 어렵지 않게 조언해 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임된 권한을 통해 자신들의 자율성과 내적 동기를 스스로 더 강화해 나가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나라의 리더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부하들에게 사전에 조언을 구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이 다 벌어지고 난 뒤 책임지라는 말은 그리 쉽게들 하면서도 말이다.




2. 동기는 적절한 방향으로 자극돼야 한다.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을 취하는 자동차를 자율주행 자동차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스스로 판단하는 움직임’을 위해서는 인지심리학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충족돼야 가능하다. 첫째, 필요한 양만큼 충분한 양의 생각이 이뤄져야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에게 충분한 양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 생각이 옳은 방향을 취하고 있어야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려고 하는 시점에서 정지해야 안전한지, 혹은 조금 더 속도를 내서 통과해야 다른 차들과의 흐름 속에서 더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가 대부분 첫 번째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를 동기의 양과 방향의 측면에서 한번 살펴보자.

실제로, 수많은 조직에서 자율적인 조직을 통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바로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동기부여’다. 그런데 사실 동기를 어떤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들고 몰입시킬 수 있는 에너지의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동기가 부족하다’는 말. 여기에서의 동기는 에너지나 자원으로서의 의미가 맞다. 생각의 양을 뜻하니 말이다. 하지만 경찰관이 피의자를 심문할 때 묻는 ‘범행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의 동기는 에너지와 같은 양적인 측면이 아니다. 범행을 위해 얼마나 힘을 썼는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서의 동기는 바로 ‘이유’다. 즉, 범행의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다. 동기의 결정적인 측면이면서도 우리가 자주 놓치고 있는 측면이 바로 이 ‘이유로서의 동기’다.

컬럼비아대의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Tory Higgins) 교수에 의하면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 욕구는 일종의 방향성을 지닌 동기의 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첫째,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구. 그 좋은 것이 음식이든, 상태든, 지위든, 장소든 혹은 사람이든 간에 말이다. 이를 필자는 대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접근(approach) 동기라고 부른다. 둘째,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피하거나 막아 내고 싶은 욕구. 물론 여기서도 그 대상은 무수히 다양하다. 이를 회피(avoidance) 동기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이 두 동기가 상황 및 일의 종류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히긴스 교수에 의하면, 첫째, 장기적인 일은 접근 동기적 메시지와 호환성이 높다. 즉, 결과나 결실을 먼 미래에 볼 수 있는 일일수록 ‘소망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하자’라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더 강하게 동기부여된다. 반면, 현재의 일, 즉 단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현안일수록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치르게 되는 대가나 처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 상황’을 강조해 줘야만 사람들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느낀다. 이렇게 각각의 동기를 각각의 일에 적절하게 맞춰 자극해 주는 것이 바로 호환성이다.

심리학자들보다 사람들을 더 잘 알고 있다는 보험회사는 이 호환성을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집단이다. 긴 세월 동안 적립을 해서 그 혜택을 먼 미래에야 보게 되는 은퇴설계 프로그램 광고는 대부분 행복한 노부부들의 원더풀 라이프를 보여주는 것으로 구성한다. 반대로, 오늘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오늘부터 몇백 원씩 매일 적립해서 막아보시라는 실손 및 실비보험 광고들은 예외 없이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거나 피하고 싶어 하는 장면들로 구성해서 제작한다. 두 경우 모두 호환성이 잘 이뤄진 상태다. 그렇다면 이 호환성이 깨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기적인 관점으로 해야 하는 일에 회피 동기를, 당면한 시급한 일에 접근 동기를 자극해 사람들을 움직이려는 시도들이다. 이 경우에는 메시지의 강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오히려 부작용이 심각하게 일어난다.

당면한 시급한 일에 이른바 ‘당근’을 사용해 사람들을 움직이려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당근만을 요구하면서 기존의 방식과 일을 고집하게 된다. 새로운 일에 자발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반면, 장기적인 일을 회피 동기를 통해 설득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피로해진다. 그 결과 자율적으로 상황을 해석해 스스로 움직이려 하는 경향은 파괴되고 만다. 현대 심리학에서 노력과 진정성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시간적 길이에 기초한 일의 종류와 메시지가 자극하는 동기의 종류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나’와 ‘우리’라고 하는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자아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웬디 가드너(Wendi Gardner) 교수를 비롯한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두 자아가 추구하는 가치가 전혀 다르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 오고 있다. 3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성취와 행복을 원하는 자아다. 즉, 접근 동기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우리’라는 자아는 나쁜 것을 막아내서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게 느끼는 존재다. 회피 동기와 궁합이 더 맞는 자아라는 뜻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안전과 평화보다는 성취와 행복에 더 무게를 둔 대답을 한다. 왜냐하면 질문이 ‘나’에게 왔기 때문이다. 반면, ‘당신을 포함한 당신의 가족은 어떤 삶을 영위하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대부분 안전과 평화와 관련된 대답을 주로 한다. 이 질문은 ‘우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은 ‘나’로서 성취와 행복을 지향하는 일을 할 때 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취한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뜻이다. 반면, 우리의 모습으로는 무언가 나쁜 것을 막아내려는 행위를 할 때 더 강한 동기부여가 되며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아와 동기의 호환성이 깨지는 경우 역시 현실 세계에서 무수히 관찰될 것이다. 우리의 가치를 나에게, 나의 가치를 우리에게 계속해서 어긋나게 주입하는 행태들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자율성과 능동적인 움직임은 망가지게 된다.

3. 조직 내 전문가들에게는 추상적인, 반면에 비전문가들에게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메시지가 전달돼야 한다.
무슨 엉뚱한 이야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전문가는 추상적인 메시지를 들어야 기존과는 다른 생각을 해볼 여지를 만들어낸다. 반면 비전문가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메시지를 부여받을 때 오히려 더 강한 동기로 자율적인 측면을 지닌다. 엄연한 사실이다. 왜 그럴까?

전문가는 구체적이고 영역 특정적인 지식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이들은 구체적인 메시지를 들으면 거기에 딱 들어맞는 정답에 가까운 하나의 아이디어, 하나의 방법, 하나의 솔루션을 재빠르게 머릿속에서 꺼내고 거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수많은 예가 있지만 하나만 들어보자. 산업혁명의 시초이자 인류사를 바꾼 발명 중 하나인 증기기관을 가지고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초창기의 증기기관차는 마차의 구조를 본뜬 모습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기관사가 매연과 뜨거운 열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불상사를 초래했다. 왜 그 당시 전문가들은 증기기관이라는 엄청난 발명품들을 가지고 이런 바보 같은 형태의 설계를 했을까?




재미있는 점은 위와 같은 초창기 기차의 모습을 어린아이들에게 주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금세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대학생보다는 고등학생, 중학생보다는 초등학생들에게 위의 사진을 보여주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바로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학이나 추진력 혹은 속도와 같은 복잡한 설계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개념들보다는 운전하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하고 어떤 마음을 가질까 하는 지극히 1인칭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디바이스가 사용자 편의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한다.

만약 그때 당시 전문가들이 ‘증기기관으로 사람들과 화물을 훨씬 더 많이 나를 수 있는 운송수단을 만들라’라는 구체적 지시보다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것도 만들어 보자’라고 하는 훨씬 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생각을 했다면 마차라는 기존 개념이 생각을 굳게 만들어 버리는 일은 훨씬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 분야의 문제를 다른 분야의 전문가나 심지어 비전문가들이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꺼내 해결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은 전투기의 비행과 항속거리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점을 롤스로이스의 자동차 엔진 전문가들을 통해 해결했다. 심지어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대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어 놓아 탄생한 결과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에 포함되는 지식과 기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 생각이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에게 최대한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주문과 메시지가 들어가야 한다.

이를 실증하는 다양한 연구 중 예를 하나만 들어보겠다. 미국 드렉셀(Drexel)대의 데이비드 로젠(David Rosen) 박사 등이 최근에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다. 4 로젠 박사 연구진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에게 창의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라는 지시를 했다. 피아니스트들은 매우 숙련된 전문가에서부터 이제 막 초보티를 벗어난 수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어떤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새롭고 참신한 코드를 만들어 보라’ ‘기존에 없던 리듬 패턴을 생각하라’ ‘기승전결에 있어서 형식의 틀을 깨보라’ 등 매우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지침들을 주문에 포함했다. 반면 다른 절반의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단순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보라’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짧고 추상적인 주문을 했다. 결과의 차이는 매우 흥미롭게 나타났다. 비전문가 그룹은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지시들을 받을수록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 그룹이 보인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들은 구체적인 지시를 받을수록 창의적인 것을 내놓는 경향이 떨어졌다. 이 실험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인 지시를 받는 과정에서 이들은 당연히 중간중간 자신의 연주나 작곡을 실험자에게 보고하고 검토받아야만 했다. 이 경우 전문가 그룹은 오히려 더 창의적인 결과를 못 내놓더라는 것이다. 이는 음악 분야에서만 한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자주, 그리고 쉽게 발견된다.

대부분 조직에서 일반적으로 업무를 어떻게 추진하는가? 촘촘한 중간보고와 구체적인 기안, 명시적인 지시가 수반된다. 당연히 자율과는 반대되는 상황이다. 이런 일은 기존의 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더욱 꼼꼼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실수 없이 일을 해내는 데 적격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전문가들을 오히려 더 좁은 생각의 틀에 갇히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이러저러한 기존 지식을 모두 알고 있으니 심사숙고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폭넓은 생각으로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확장시켜 적용해 기존에 없는 문제 해결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비일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이기에 오히려 생각의 지점을 멀리까지 보낼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반면, 비전문가들에게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메시지로 훨씬 더 쉽게 심사숙고하게 만들어 줌으로 인해 동기부여를 도모하고 무의미한 실수들을 하지 않게끔 해줘야 한다. 비전문가들은 어떤 일이든 심사숙고하기보다는 얼마 되지 않는 기존 지식을 사용해 무작정 덤벼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쉽게 좌절하고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메시지와 지시를 받으면서 자신의 진도를 확인해 나가고 중간중간 적절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비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유능함을 확인하면서 점진적으로 능동적인 모습(즉 자율)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하다. 조직 내의 전문가들에게는 기존보다 좀 더 긴 시간을 부여하고 일정 시간 동안 참을성을 가지고 믿어보는 것이다. 처음에 말을 너무 많이 하게 하거나 구체적인 보고를 자주 하게 하는 일을 줄여줘야 한다. 그럼 그들은 이제 의외의 결과를 조직 앞에 가져올 것이다. 반면, 비전문가들에게 전달되는 구체적이고 자세한 메시지와 지시들은 당연히 그에 따른 명시적이고도 정밀한 ‘단계별’ 피드백을 수반하게 된다. 우버나 카카오택시 사용자들을 보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스마트폰상의 공유 차량이나 택시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다. 왜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을까? 어느 순간 갑자기 ‘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고 기사가 불쑥 전화를 하는 콜택시보다 스마트폰 택시 앱을 왜 우리는 선호할까? 훨씬 더 촘촘하고 단계적인 진행의 양상(즉 피드백)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무언가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그것에 몰입하게 만들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4. 질문은 무지나 저항의 신호가 아니라 자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재미있는 것은 개인이든, 조직이든 사람들은 좋은 질문과 그에 걸맞은 좋은 대답을 하면서 스스로 통찰력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더 강한 자율성으로 지혜로워진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선 인간에게는 AI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메타인지(metacognition)이라는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수도 이름을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1초도 안 돼 “예”라고 대답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떤가? “푸에르토리코에서 12번째로 큰 도시 이름을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재미있게도 마찬가지로 1초 만에 “아니요”라고 대답을 한다. 두 대답의 속도가 같은 것이다. 컴퓨터로서는 흉내 내기 힘든 측면이다. 왜냐하면 어떤 시스템이라도 그런 정보나 파일이 시스템 내에 없다는 출력(즉, 모른다)을 하기 위해서는 저장의 영역을 모조리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컴퓨터의 ‘모른다’는 ‘안다’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왜 거의 같은 속도로 두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탐색의 결과가 아닌 친숙함의 판단에 근거해 모른다 혹은 못 한다는 결정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 12번째로 큰 도시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1초 만에 모른다는 대답을 한 이유는 푸에르토리코가 전혀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타인지는 바로 그런 판단을 하는 인간 고유의 생각기제다. 굳이 학문적 정의를 내리자면 ‘앎과 모름에 대한 판단을 하는 별도의 생각 부품’인 셈이다.

물론 판단의 정확함과 친숙함은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숙함이라는 측면만 가지고 인간이 판단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에게는 정확한 판단보다 빠른 판단을 통해 그다음에 할 행동을 되도록 빨리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생존과 적응에 필요했다. 그렇게 다음 행동을 빨리 취할 수 있음으로 인해 오는 장점이 정확한 판단을 장고 끝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세상에 적응해 가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타인지에는 함정이 있다.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판단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거의 아는 바가 없거나 할 수 없는 경우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무 생각 없이 교과서나 참고서에 밑줄만 계속해서 그어대도 학생들은 내용에 친숙해져서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이 만들어진다. 정작 시험문제로 그 내용이 출제되면 제목은 친숙한데 아는 것은 없는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한다. 어른들이라고 예외일까? FTA, 비트코인, 주식공매도, 수소자동차, 초미세먼지, 한중 통화 스와프 등등 이 중에서 절반이라도 자신 있게 정의 내리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이슈들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는 생각(대부분 착각) 속에서 열변을 토하고 수많은 댓글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 자세히 들어보거나 들여다보면 핵심 사항은 거의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모 CEO포럼에서 필자의 강연을 들은 뒤 한 기업의 사장님이 이런 말을 하셨겠는가? “회의 시간에 갑자기 참석한 부하직원들 중 누군가의 군기를 잡고 싶으면 그 회의에서 가장 많이 나온 용어나 약어 중 아무거나 하나를 자세히 설명해 보라고 다그치면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메타인지에 스스로 속고 또 당황하는 민망한 경험들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아예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미 답은 앞서 나온 것과 다름이 없다. 평상시에 많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서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들 사이의 경계선을 보다 정확히 하는 사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 상관, 교사, 교수, 정치인들이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뿌리 깊은 습관 하나를 바꿔야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이분들은 자신의 설명이나 의견 피력을 마치고 난 뒤 이해가 되느냐, 알아들었느냐, 분명하냐 혹은 동의하느냐는 식으로 이해와 소통의 책임을 청자에게 떠넘기는 말을 한다. 이러면 더 낮은 위치에 있는 상대방은 질문을 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이 상황에서 질문을 하면 못 알아듣고 이해하지 못한 무능한 사람으로 비춰지거나 동의하지 않고 반항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채우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같이 상하관계가 강하고 위계적인 측면이 아직도 많이 유지되고 있는 문화에서 질문은 저항이나 무지의 신호로 대부분 간주돼 온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설명이나 발언을 마치자마자 이해의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려주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임원이 회의 후반부에 “내 설명과 의견이 완벽하지는 않았을 테니 어디가 명확하지 않았는지 좀 알려주게나”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실제로 필자의 이 간단한 조언을 귀찮더라도 잊지 않고 실천해 본 꽤 많은 임원과 교수들께서 기대 이상의 효과와 반응이 있었다는 후일담을 들려주신다.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가” 대신 “내가 제대로 설명했는가”로 물으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리더와 교수에게 스스럼없이 던지더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앞서 설명했듯이 사람들은 이른바 ‘조언’의 형태로 의견을 말하게 할 때 가장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어딘가에 당연히 있을 나의 부족함을 채우거나 확인해 달라는 말을 하게 되면 나보다 더 낮은 지위에 있거나 어린 사람들도 매우 강한 적극성을 띠면서 입을 열 수 있게 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작은 행동의 결과가 축적되면 엄청난 차이를 조직의 자율성에 만들어 낸다.

결론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Paul Bourget, 1852∼1935)의 『정오의 악마』라는 소설에 이런 문구가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판단하고 가치를 만들어 그것에 의해 행동하는, 즉 자율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사람 간의 결정적 차이는 어떤 말로 요약될 수 있을까? 사는 이유, 즉 목표로 귀결된다. 현대심리학의 수많은 실험 연구와 관찰된 사례들을 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별다른 목표의식이 없는 상황이나 실험적으로 목표를 분명히 알려주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연구에서 일어난 상황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결과가 관찰됐다.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보자. 목표의식이 없는 학생들은 억울하게 친구들에게 의심을 사거나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상황에서조차도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모습이다. 반면, 목표의식을 가진 경우에는 오히려 현재의 상태를 바꿔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보완적 행동의 경향이 대부분 강하게 관찰된다. 실제로, 목표의식이 분명한 학생들은 자신의 목표와 전혀 무관한 다툼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나는 그런 결코 사람이 아니다’라며 지적한 사항을 개선하고 보완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본 지면에서 다뤄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5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는 조직. 그리고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적절한 메시지와 지시를 주고받고, 동기가 잘 부여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질문과 현명한 대답이 오가는 조직. 이 모두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보다는 개선하고 보완하며, 또 발전시키려는 모습들이다. 즉, 목표의식이 있는 조직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조직이 아니라 생각대로 사는 조직 말이다. 그것이 바로 자율적인 조직을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애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필자소개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kyungilkim@ajou.ac.kr
필자는 고려대에서 심리학 학사 및 석사를 취득했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지심리학자다. 현재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간의 판단, 추론, 의사결정 및 창의성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현재 동기와 인간 행동, 메타인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71호 HR Analytics 2019년 4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