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배려하는 따뜻한 기술의 위력

34호 (2009년 6월 Issue 1)

“죄송합니다. 파일 첨부를 깜빡 잊었네요. 다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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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사용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냈을 법한 메시지다. 이처럼 e메일을 사용하다 보면 파일을 첨부해 보내주겠다고 써놓고, 깜빡 잊고 그냥 발신 버튼을 누르는 일이 종종 생긴다. 구글이나 야후, 한메일 같은 e메일 서비스 회사에서 본문 내용 중에 ‘파일 첨부’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파일을 덧붙이지 않았을 때 “혹시 첨부해야 할 파일은 없습니까?”라는 메시지를 띄워주면 어떨까?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것도 아주 자주. ‘실수하는 동물’ 인간을 위해 사용자들이 오류를 범할 것을 예상하고 제품이나 서비스가 알아서 최대한 ‘기술적 배려’를 해준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아마도 미래에는 고객의 실수를 예상하고(이런 것을 ‘오류 예상’이라고 부른다), 실수를 줄여주는 스마트 제품들이 세상을 독차지하게 될 것이다.
 
오류를 예상하고 방지하는 디자인이 특별히 새롭진 않다. 예를 들어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경고음을 울려주거나, 연료가 떨어지면 ‘경고 표시’가 뜨는 자동차도 여기에 속한다. 렉서스는 사고 방지를 위해 주행 중에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입력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주행을 멈추면 헤드라이트가 자동으로 꺼지는 차도 있다. 밤새 헤드라이트를 켜둬 배터리가 방전되는 낭패를 막기 위한 배려다.(심지어 엔진오일 교환 시기까지 알려주는 신차도 있다!)
 
연료 공급 노즐의 차별화도 ‘오류 방지 디자인’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디젤 연료를 공급하는 노즐은 너무 커서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주입구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휘발유 자동차에 디젤 연료를 넣는 실수를 하지 않게 도와준다. 이런 문제는 병원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특정 약물에 사용되는 호스가 엉뚱한 포트에 연결돼 환자에게 엉뚱한 약물을 주입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노즐과 연결 관을 약물마다 다르게 설계한 것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오류 방지 디자인’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리처드 탈러 교수에 따르면 ‘넛지(nudge)’라고 볼 수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장치’라는 얘기다. 자동차들이 우측통행을 하는 우리나라나 미국에 사는 사람이 좌측통행의 나라 영국이나 일본에 가면, 길을 건널 때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로를 건널 때 평생 자동차가 왼쪽에서 올 거라고 예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대뇌는 으레 왼쪽을 보며 길을 건너도록 습관화돼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그랬다가는 갑자기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은 종종 발생했다. 이에 따라 영국 런던 시는 적절한 설계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모퉁이에는 보도에 ‘오른쪽을 보시오!’라고 써놓았다.
 
그러나 탈러 교수에 따르면, 오류 방지 디자인은 그 채택 속도가 놀랍도록 느리다. 예를 들어 주유구 뚜껑이 자동차 차체와 연결돼 있지 않은 차들이 아직도 많다. 주유구 뚜껑과 차체를 플라스틱이나 철 재질의 끈으로 연결해놓으면, 주유를 끝낸 후 뚜껑을 놔두고 그냥 가는 일이 절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1000원도 채 하지 않는 이 플라스틱 끈을 달지 않은 차들이 아직도 많다.
 
사람들은 왜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완성 후 오류(postcompletion fallacy)’라고 부른다. 주유구 뚜껑을 잊어버리고 가는 것은 전형적인 ‘완성 후 오류’에 해당하는 실수다. 사람들은 주요 임무를 끝내고 나면 그 이전 단계들에 관련된 사항들을 잊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완성 후 오류의 전형적인 예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한 후 카드를 그대로 꽂아두고 가거나, 복사를 끝마친 후 복사기에 원본을 남겨두는 것을 들 수 있다. <디자인과 인간 심리(The Design of Everyday Things)>(1990)의 저자 돈 노먼에 따르면, ‘기능 강제(forcing function)’ 방식을 활용해 이런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다. 기능 강제란 원하는 것을 얻기 전에 먼저 다른 무언가를 반드시 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미 많은 제품들이 이런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 개발된 ATM은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즉시 카드를 돌려줌으로써 카드를 놓고 가는 실수를 막아주고 있다. 카드를 먼저 뽑아야만 현금을 인출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를 잊고 가는 일이 없어진다.
 
인간이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방법 중 하나로 빠른 시간 안에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도 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카메라는 오류 방지 디자인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사용자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필름 카메라에 비해 다양한 피드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방금 전에 찍은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필름 시대에 흔히 일어나던 오류들, 이를테면 필름을 제대로 끼우지 않고 사진을 찍으려 한다거나, 렌즈 뚜껑을 여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진을 찍어 ‘까만 사진’만 얻게 된다거나, 인물에 포커스가 맞지 않은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오류들이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피드백을 주고 있다.
 
그러나 탈러 교수에 따르면, 디지털 카메라는 처음 나왔을 때 아주 중요한 피드백 하나를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고 한다. 바로 찍을 때 나는 ‘찰칵!’ 하는 소리다. 이 기계적 소음은 디지털 카메라에는 없다. 하지만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으니 사진을 찍을 때 영상이 잡혔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사라져버려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래서 요즘 사진을 찍을 때는 일부러 ‘찰칵!’ 소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매우 만족스러운 느낌을 얻게 된다.
 
이처럼 사용자를 배려하는 ‘오류 방지 디자인’을 근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오류를 예상하는 실험이 필수적이다. 실험 공간에 제품을 갖다놓고, 사용자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행동 관찰을 해야만 정확한 ‘오류 예상’을 할 수 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의 작은 실수까지도 놓치지 않고 배려하려는 과학적인 접근이 각별히 필요하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5호 AI on the Rise 2019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