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비즈니스

“선택-집중에만 취했다” 아사히맥주의 위기

312호 (2021년 01월 Issue 1)

편집자주
주류 칼럼리스트인 명욱 숙명여자대학교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교수가 ‘술과 비즈니스’를 연재합니다. 한국 전통주를 비롯해 맥주, 사케, 소주, 와인 등 다양한 주종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와 다양한 주류 기업들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할 예정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도 벌써 1년이 돼간다. 그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리는 해외여행보다는 국내 여행을 선택하게 됐고, 사람이 모이는 메가 상권보다는 동네 소매점을 이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외식보다는 집에서 밥을 해 먹거나 시켜 먹는 일이 많아졌고 외부 술자리보다는 홈술과 혼술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소비 패턴도 오프라인 매장 중심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비대면 구매를 선호하게 됐다. 이런 변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소비 반경의 축소’라 할 수 있다. 소비를 하러 일부러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닌,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이런 변화의 영향으로 수십 년간 지켜온 주류 업계의 순위가 바뀌는 일이 생겼다. 이웃 나라 일본 맥주 업계의 이야기다. 거의 20년간 일본 맥주 판매량 1위를 수성한 아사히맥주가 물러나고, 늘 만년 2위에 머물렀던 기린맥주가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아사히맥주가 부진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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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맛으로 히트를 친
80년대 아사히 슈퍼드라이

아사히맥주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엄청난 마케팅 성공 사례로 불렸다. 80년대까지 일본 맥주 업계에서 ‘듣보잡’ 취급을 받던 아사히가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아사히라는 단어는 원래 ‘뜨는 해’라는 의미인데 80년대에는 반대인 ‘지는 해’라는 비아냥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비자 조사를 통해 1986년, 기존의 일본 맥주가 너무 맛이 진하다는 데 착안한 아사히맥주는 반대 성향의 제품을 내놓는데 이것이 바로 ‘아사히 슈퍼드라이’다. 기존의 일본 맥주가 맥아 100%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아사히맥주는 쌀, 옥수수 등을 첨가해 가볍지만 알코올 도수는 높은(5%) 제품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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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경쟁사들의 제품이 일본 전통식을 추구하는 디자인이었다면, 반대로 아사히는 메탈릭한 디자인과 폰트, 그리고 은색을 강조한 쿨한 이미지의 제품을 선보여 새로운 맥주, 달라진 맛이라는 느낌을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완전히 탈바꿈한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일본 맥주 시장의 판도를 바꾼다. 한때는 수요가 너무 많아 모든 공장이 이 슈퍼드라이를 생산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나중에는 공급이 못 따라가서 신문에 사과문을 발표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과문은 오히려 아사히의 인기에 더욱 불을 붙인다. 잘 팔려서 품절이 된 상황을 우회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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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다 보니 당시 기린맥주, 산토리맥주, 삿포로맥주까지 모두 ‘드라이 맥주’라는 유사 제품을 만들었고, 한국에서도 오비 슈퍼드라이, 크라운 슈퍼드라이 등이 탄생하며 아사히의 인기는 바다 건너 맥주 회사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일본에서는 ‘드라이 전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유사 제품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경쟁사도 따라 하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로 해당 브랜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업계 4위의 아사히맥주는 80년대 후반 2위를 달성하고, 1998년에는 당당히 일본 맥주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일본 맥주 시장은 아사히가 앞서나가는 가운데 간간히 기린이 추격하는 모양새로 전개된다. 순전히 슈퍼드라이라는 제품력 하나로 승부를 봐서 성공한, 일본 마케팅에 있어서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소품종 대량 생산 마케팅의 견본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시장을 바꿨다. 길게 보면 20여 년, 짧게 보면 11년 만에 기린이 다시 1위로 올라서고 아사히는 2위로 전락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가져온 아사히맥주의 패착

아사히맥주의 전략 중 하나는 요식업 시장의 장악이었다. 고가 맥주의 매출 50%가 요식업 매장에서 발생했던 것. 이것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한 가지의 제품이 너무 많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아사히를 이끈 ‘슈퍼드라이’였다. 타사의 경우, 요식업 시장이 맥주 매출의 30% 정도만 차지하고 있었지만, 아사히만 유독 매출처가 요식업 시장에 집중돼 있었으며 주력 제품 역시 ‘슈퍼드라이’ 하나였다.

코로나는 슈퍼드라이의 매출을 곤두박칠 치게 한다. 특히 자숙 기간이 최고조로 달하던 지난 5월에는 해당 제품의 매출은 80%나 감소하기도 했으며, 따라서 수익성도 크게 악화된다. 지난 11월5일에 발표한 실적 발표에 따르면(국제회계기준(IFRS)) 아사히맥주의 맥주를 포함한 주류 매출은 15% 감소한 5554억 엔을 기록했으나, 사업이익(매출총이익 - 판관비)은 23% 감소한 599억 엔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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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익률이 나빠진 이유는 아사히 맥주가 사업 다각화보다는 아사히 슈퍼드라이의 브랜드 강화 및 요식업 시장점유율 증대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식당에서 아사히 슈퍼드라이를 마셔보고 그 맛에 익숙해져 집에서도 아사히 슈퍼드라이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 아사히맥주의 전략이었다.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에 포커스를 맞춘 전략이었지만 예기치 않았던 코로나19를 맞아 아사히맥주의 발목을 잡게 됐다.

이에 반해 아사히맥주의 경쟁사들은 요식업 시장 외 발포성 유사 음료 등 저가 맥주로의 카테고리 확대를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그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해 식당들이 문을 닫아 요식업 시장 판로가 막힌 상황에서도 어느정도 위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업계 2위였던 기린 맥주는 코로나19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고 매출 감소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롱테일 법칙을 따른 기린맥주

기린맥주는 이와 대조적으로 10년 전부터 롱테일 법칙을 따라왔다. 선택과 집중과는 반대된 전략으로 소외된 20%의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꾸준히 사업 다각화를 진행한 것이다. 이 전략의 일환으로 기린은 공장마다 다른 이름을 지어줬다. 현재 기린맥주의 일본 내 공장은 총 9곳. 일본에서 유통되는 기린맥주는 각각 그 맥주가 생산되는 지역의 이름을 따서 제품명을 짓고 있다. 즉, 요코하마에서는 요코하마 기린맥주를 마실 수 있으며, 후쿠오카에서는 후쿠오카 기린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식이다. 맥주에 지역성을 넣어주며 차별화를 진행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로열티를 이끌어 내려고 한 것. 여기에 지역 농산물을 도입해 한국과 달리 국산 맥아를 사용한 맥주를 늘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홉(Hop)을 이용, 프리미엄 버전의 제품을 만들고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홈술, 혼술이 늘어날 것을 예측해 생맥주 렌털 서비스를 진행, 월 8250엔을 내면 단순한 라거 생맥주부터, IPA, 흑맥주 등 다양한 생맥주를 즐길 수 있게 한 것도 기린맥주만의 전략이었다.

여기에 자사에서 직접 투자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스프링 벨리’를 도쿄 다이칸야마에 열었으며, 맥주마다 맞는 안주를 기획, 맥주와 안주의 다양성을 알리려고도 했다. 국내 수제 맥주 양조장에도 관심을 가져 나가노의 야호 부루잉에 자본 업무 제휴 투자를 진행, 해당 브루어리를 일본 맥주 업계 6위까지 이끄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최악의 경기를 맞이한 일본의 코로나19 사태에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저가 제품을 꾸준히 출시했다. 고급화와 대중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것이다. 결국 아사히 맥주와 비교하면 다품종 소량 생산 전략을 추구한 것이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로 빛을 발하게 됐다. 그리고 그 덕분에 기린맥주는 오랜 기간 아사히에 내줬던 일본 맥주 시장 1위 자리를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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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가 많은 시장, 다각도 전략이 필요할 때

사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아사히와 기린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지속적으로 좁혀져 왔다. 특히 2019년의 일본 맥주 시장 마켓셰어를 보면 아사히맥주가 36.9%, 기린맥주는 그 격차가 35.2%로 1.7%로 줄어든 상황이었다. 결국 순위 역전은 시간의 문제였을 뿐인데 코로나19가 이 시간을 앞으로 당겨줬다는 분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코로나19 시대에는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다각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선택과 집중이 아닌 소외된 20%를 생각해야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외된 20%란 단순히 작고 힘없는 소비자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제품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이끄는 트렌드세터가 여기에 포함된다.


명욱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vegan_life@naver.com
필자는 일본 릿쿄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다 한국 전통주에 빠져 주류 전문가의 길을 가게 됐다. 현재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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