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재설계, 기회가 왔다 위기를 낭비 말고 권위주의 청산을…

213호 (2016년 11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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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현대사회는 특정 개인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카리스마로 움직여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관료제다. 제대로 된 관료제에선 법치주의, 전문가주의, 권위주의의 세 원리가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이 세 요소 중 권위주위가 법치주의와 전문가주의를 압도하며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기업과 대학 사회도 마찬가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다음을 제안한다.
- 인터넷, 모바일 기술을 이용해 직접민주주의를 최대한 구현
- 권력자가 전문가 관료에 대해 인사권을 부당하게 행사할 수 없도록 시민감시기구 구축
- 결선투표제, 국민소환제 도입


영어에 ‘심각한 위기를 절대 그냥 허비하지 말라(Never let a serious crisis go to waste)’는 경구가 있다. 심각한 위기상황에는 평상시에 꿈도 못 꿀 정도로 불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상황에 당황하고 좌절해서 넋 놓고 있지 말고 다시는 같은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조직이나 사회의 DNA 자체를 바꾸는 수준의 근본적 변혁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전대미문, 미증유, 초유의 국가적 위기

전대미문, 미증유, 초유 등은 이전까지 발생한 적이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할 때 쓰는 표현들이다. 현 상황이 이 모든 수사들을 다 합쳐도 모자랄 정도의 국가적 위기라는 데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국정이 완전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내 정치와 경제 분야는 물론 심지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할 국방과 외교마저 소위 비선실세에 의해 왜곡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는 한꺼번에 온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엄청난 경제위기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북핵 위기,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 급속히 진행되는 저출산과 고령화 등 역대급의 출중한 역량을 가진 리더와 정부가 있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대통령 부재상태를 맞게 된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국민들과 기업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힘겹게 쌓아온 국가 브랜드는 크게 훼손됐고 이전 상태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사회 발전 단계에 대한 인식은 미신이 횡행하던 전근대적 봉건사회 수준으로 퇴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의 사회심리적 공황상태와 신뢰의 붕괴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사태로 발생할 경제적 손실도 천문학적 수준에 달할 것이다. 그야말로 초유와 미증유,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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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의 극복은 전면적이고, 다각적이며,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히 정치와 사법적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정신과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에 철저히 부응하는 단호한 조치가 이뤄져야만 국민들이 납득할 것이다. 그러면 국가경영의 관점에서는 이번 위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경영 마인드는 미래지향적이며 실천적 사고를 강조한다. 따라서 경영 관점에서는 이번 위기의 원인과 본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임시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위기를 해결해 다시는 같은 위기가 반복하지 않도록 할 것을 요구한다. 이 글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는 평상시에 불가능했던 특단의 조치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동안 다양한 요인들 때문에 실행하기 어려웠던 사회 체제의 근본적 변혁이 가능해진다. 이번과 같은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어야 불행한 사건이지만 결코 그냥 허비돼서는 안 된다.


국가 실패가 아닌 리더십 실패: 성공의 덫과 리더의 몰락

이번 위기의 원인을 우리 사회 전체와 국민들의 실패 때문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매일매일을 살아왔다. 문제는 리더십 실패다. 국가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해온 소수 집단들이 그에 상응하는 역량과 도덕성을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면에서 필자는 소수 지도층의 잘못으로 발생한 실패를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는 관행을 가장 경계하고 강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면, CEO나 오너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려서 초래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런 의사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도 않은 대다수 구성원들을 다운사이징하는 현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기업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다운사이징을 하더라도 최우선적으로 그런 의사결정을 내린 리더 자신부터 즉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일말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가적 위기는 100% 극소수 권력층들의 리더십 실패로 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적 기대와 지지를 한몸에 받으며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왜 불과 4년도 채 안 돼 참담한 리더십 위기를 맞게 됐을까? 필자는 그 원인이 리더십에서의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있다고 본다. 즉 박 대통령이 소수파로서 절대적 충성심을 가진 소수 가신들, 즉 ‘인그룹(in-group)’의 강력한 응집력을 기반으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후보가 되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게 만든 그 성공방정식을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성공의 덫이 리더십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1

강력한 인그룹의 응집력에 기반한 리더십은 자신보다 크고 강한 경쟁자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나 승리한 이후 그 경쟁자들 포함한 다양한 집단들을 포용하는 더 큰 리더십에는 치명적 장애요인이 된다. 인그룹과 아웃그룹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태도는 결국 당파주의를 만들어 통합적 리더십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인그룹에 대한 강한 의존도는 인그룹 중에서도 핵심과 비핵심을 나누게 되고 결국은 극소수의 진성 인그룹과만 일하고 나머지는 겉도는 방식의 파행적 리더십을 낳게 돼 궁극적으로는 리더가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지게 만든다. 이번 사태를 전후해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소위 비선실세나 십상시, 문고리 권력 등은 바로 박 대통령에게 인그룹 중의 인그룹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취임 즈음에 필자는 DBR에 새 대통령에게 보내는 제언을 기고했다.2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의존해온 소수 인그룹과 나머지 아웃그룹으로 진영을 나누고 아웃그룹을 적대시하는 접근은 불리한 전투상황을 돌파하는 데는 성공방정식이 될 수 있으나 통합에는 결정적 장애이므로 대통령이 된 이상 반드시 개방성과 포용성을 중심으로 심지어 직접 경쟁자와도 협력하는 코피티션(coopetition) 관계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론으로 심지어 상대방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와도 협력해 문 후보의 대선 공약들 중 바람직한 것들을 적극 수용하라고 제언했다. 일단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후보로서 활용하고 의지했던 성공방정식을 완전히 버리고 자신을 지지한 세력과 충성도 높은 인그룹뿐만 아니라 상대방 후보까지를 포함한 국민 모두의 리더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대통령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도 리더들이 자신이 평생 꿈꾸던 위치를 획득한 후 그 위치에 도달하는 기반이 된 과거의 성공방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답습하다 성공의 덫에 빠져 처참하게 실패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보여준 행동 경향과 개인적 배경을 볼 때 새로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기보다는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자신의 소신과 고집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유형이라서 후보 시절의 성공방정식을 맹신하다 성공의 덫에 빠질 우려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 제언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내심 틀리기를 바랐던 필자의 예측이 그대로 맞아버린 데 대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리더 실패와 국가 실패 간 연결고리:카리스마적 리더십

그런데 박 대통령 주변에서 비선실세와 소수 인그룹에 의한 국정교란 의혹이 몇 차례 표면화됐음에도 그가 강력한 정국 장악력을 가질 수 있었던 리더십의 기반은 무엇일까? 실은 박 대통령에게 제기된 다양한 의혹과 문제점들이 다른 리더들에게서 나왔다면 이미 오래 전에 리더십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 기반은 바로 박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다. 분야를 막론하고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친 리더들을 다 살펴봐도 박 대통령처럼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과 영향력, 즉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다. 하우스(R. House) 교수나 콩거(J. Conger) 교수 등이 주로 연구해온 카리스마적 리더십 이론은 똑같은 행동도 수행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내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특수한 리더십 현상에 주목한다.

카리스마라는 표현은 그리스어의 ‘카리스(Charis)’에서 유래했다. 이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호머의 ‘오딧세이’였다. 트로이 목마라는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10년간의 트로이전쟁을 끝낸 지혜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그 과정에서 트로이의 수호신 포세이돈의 신전을 짓밟았다가 저주를 받아 10년간 귀향하지 못하고 지중해를 유랑했다. 이 지혜의 영웅의 수호신이자 자신 또한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신비로운 선물을 준다. 오디세우스의 부재를 틈타 왕권을 노리고 텔레마코스를 살해하려는 정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텔레마코스에게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불어넣어서 자꾸 쳐다보고 싶고 좋아하게 만들어서 도저히 죽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런 묘한 매력을 호머는 카리스라고 부른다. 신이 준 특별한 선물이라는 뜻이다. 카리스는 신이 선물로 준 특별한 능력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설명하거나 분석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 은혜는 인간의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신이 값없이 준 선물을 뜻하는데 그 은혜의 그리스어 표현이 바로 카리스이며 여기에서 은혜의 영어 표현인 그레이스(grace)가 나왔다.

사회이론의 거장 베버(M. Weber)는 이미 100여 년 전에 카리스마를 특정 리더가 보통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특별하고 신비로운 자질을 가졌다는 구성원들의 믿음에서 나오는 특수한 리더십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카리스마적인 리더가 이끄는 집단이나 조직은 리더가 전지전능한 신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에 그 리더의 명령이나 결정은 맹목적으로 따른다. 따라서 카리스마적 리더가 이끄는 조직이나 사회는 예외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집단이나 조직, 사회에는 두 가지 치명적 약점이 있다.

첫째는 카리스마적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은 리더가 잘못된 결정을 하더라도 이를 무조건 지지하며 열정적으로 실행한다. 즉 카리스마적 리더가 바람직한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그 조직이나 사회가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반면에 잘못된 결정을 하면 단숨에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카리스마의 예는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독재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 예가 바로 카리스마의 화신으로 불렸던 히틀러였다. 당시 세계에서 지적 수준과 교육 수준이 가장 높았던 독일 국민들이 인종말살과 같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실제로 한 이유는 히틀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설적 다큐멘터리 감독 리펜스탈(L. Riefenstahl)이 1935년에 제작한 나치 선전 필름인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를 보면 히틀러의 카리스마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히틀러의 막강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일시적으로는 독일을 1차 대전의 패배로부터 급속히 회복시켜 단숨에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시켰지만 결국은 독일의 패망과 전 세계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인 2차 대전으로 연결됐다. 이런 관점에서 정신분석학자 라이히(W. Reich)는 역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카리스마적 리더가 개인적으로는 탁월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라는 가부장적인 카리스마적 리더에 동일시하면서 개인성이 제거돼 리더의 명령에 따라 마치 좀비처럼 자신의 개별 의지와 상관없이 선악 여부를 아예 따지지도 않고 일사불란하게 집단적으로 움직이게 된 원리를 설명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또 다른 한계는 리더십 계승 문제다. 신이 극소수에게만 준 특별한 선물이라는 뜻의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 극도로 희소하기 때문에 그 리더가 어떤 이유로든 사라지면 적절한 후계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 체제 자체가 급붕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사를 보면 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가 이끌었던 체제가 그 리더의 퇴진과 함께 단숨에 무너진 사례가 허다하다. 가까이 중국만 보더라도 500여 년간의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기를 평정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우며 과거의 3황5제를 합친 것보다 자신이 더 위대하다며 황제의 칭호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진시황의 진나라는 건국 후 불과 16년 만에 진시황이 죽자마자 그대로 멸망해버렸다. 10년간 중국 천지를 뒤흔들었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체제도 마오쩌둥 사후 1년 만에 급속히 막을 내려버렸다. 박근혜라는 막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가 퇴진한 후 그를 중심으로 유지돼왔던 여권의 앞날이 불확실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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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이런 두 가지 한계 때문에 베버는 특정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사회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마치 왕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전체 국운이 좌우되던 전근대적 사회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면에서 베버는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 사회는 특정 개인이 아닌 사회 시스템과 제도가 카리스마를 가지는 사회라고 강조하며 이를 ‘카리스마의 제도화(routinization of Charisma)’라고 불렀다.

그런데 상당수의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리더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따라서 이승만 시대부터 시작해서 권위주의적 개발주의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는 기간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에 대한 동경이었다. 실제로 독립투사 출신의 이승만, 군 출신의 박정희와 전두환, 민주화운동 출신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막론하고 한국의 대통령들은 일반인들은 그 위세에 눌려 감히 오래 쳐다보기도 힘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에 보기 드문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이다.

우리 국민들은 부드러운 인상의 호감형 인물은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카리스마는 그 이익 이상으로 심각한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전근대적 요소이다. 즉 우리 국민들이 극복해야 할 한 가지 사회심리적 과제는 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과 갈구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은 좋은 롤모델이다. 오바마는 단 한순간도 위엄을 잃지 않는 근엄한 표정의 우리 대통령들과 달리 항상 웃는 얼굴이며 각료회의가 길어지면 직접 맥도날드 가게에서 시민들과 함께 줄을 서서 각료들을 위해 햄버거를 배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바마는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그의 연설과 정책의 내용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막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21세기형 리더이다.



권위주의적 지배: 관료조직의 권위주의적 장악과 전문주의와 법치주의의 실종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의 개인적 카리스마가 강하더라도 거대한 국가조직을 좌지우지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전문 관료 집단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해답은 바로 국가를 움직이는 정부공공부문의 조직 메커니즘인 관료제에 있다. 관료제는 공공 부문과 사기업을 막론하고 지난 100여 년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경영을 지탱해온 핵심 조직 형태이다. 현재와 같은 관료제 조직의 형태가 형성된 것은 100여 년 전인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였다. 관료제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리한 베버는 이 시기에 범세계적으로 관료제가 확산된 역사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세기 중후반 시장경제의 성숙과 과학혁명, 시민사회의 대두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직 시스템이 요구됐다. 그러나 왕이나 귀족, 소유주 등 신분이 상속되는 소수 개인과 그 일족이나 파당들이 임의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던 전통적 조직 시스템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새로운 대안적 조직형태로서 관료제가 발생했다. 이 새로운 조직형태가 바로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는 게 베버의 논리다. 즉 관료제는 특정 개인의 임의적이고 사적인 지배로부터 사회를 해방시켜 합리적인 현대사회를 만든 핵심 하부구조였던 것이다.

베버는 관료제의 핵심 원리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가 모든 사람이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을 개인적 선호나 판단에 따라 임의적으로 하지 않고 반드시 미리 명문화된 규정과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는 절차적 법치주의다. 관료제를 뜻하는 영어인 ‘뷰로크러시(bureaucracy)’는 그리스에서 규칙을 정리한 문서를 뜻하는 뷰로(bureau)와 지배를 뜻하는 크러시(cracy)가 결합된 표현이다. 즉 관료제는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라도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철저하게 준수해야지 개인적 선호와 판단에 따라 임의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관료제의 둘째 원리는 전문가주의이다. 즉 이런 규칙과 절차를 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며 그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신분이 상속되는 왕이나 귀족, 소유주와 같은 소수 특권층을 뜻하는 ‘아리스토크랫(aristocrats)’이 아니라 그 분야에 관련된 전문적 지식과 역량을 충분히 가진 전문가(experts)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왕위와 왕족처럼 직위와 그 직위 수행자 간 관계가 영구적이던 전통적 조직과 달리 관료제에서는 특정 직위와 그 직위를 수행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그 개인이 그 직위가 요구하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계약에 의해 유지된다. 즉 관료제에서 모든 직위는 그 수행자의 소유물이 아니며 전체 사회가 그 사람의 전문성에 기반해서 일시적으로 위임한 것이다.

관료제의 세 번째 원리는 권위주의다. 각자 전문성에 기반해 미리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과업과 수행할 때 이들을 전체 조직의 관점에서 통합 조정하는 데 필요한 상명하복의 질서를 뜻한다. 앞의 두 가지 원리는 필연적으로 상하 간 계층적 위계질서를 필요로 한다. 즉 모든 상황에 대비한 세밀한 규칙과 규정, 절차를 사전에 모두 미리 명문화해서 정해놓는 것은 제한된 합리성 때문에 불가능하므로 기존 규칙, 규정, 절차에 명시돼 있지 않은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때는 누군가 합리적 선택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서 지시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상급자의 권위라는 것이다. 또한 관료제의 각 구성원들이 자기 업무에 요구되는 전문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 미리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철저하게 준수하는지를 누군가 감시하고 평가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상급자의 역할이다. 따라서 관료제가 작동하려면 세 번째 원리인 권위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세 번째 원리인 권위주의가 앞의 두 가지 원리인 절차적 법치주의와 전문가주의와 충돌할 때 관료제 조직의 실패가 발생한다. 즉 권위를 가진 상급자가 각자의 전문성과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어긋나는 요구를 할 때 권위주의라는 또 다른 원리가 지배하는 관료제 조직에서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 상급자가 하급자들의 안위를 결정할 인사권이나 예산권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행사하는 권위주의 원리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급자가 마침 막강한 개인적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라면 더더욱 관료제 조직의 하급자들이 그 명령이 부당하더라도 거부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인류역사상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관료제는 카리스마를 가진 권위주의적 리더의 전횡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그 리더의 가장 좋은 지배수단이 되는 수가 많다. 1970년대 남미의 군부독재체제를 연구한 정치경제학자 오도넬(G. A. O’Donnell)은 이를 ‘관료적 권위주의(Bureaucratic Authoritarianism)’라고 불렀는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군부출신의 권위주의적 리더와 이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도구적 기술 자격인 전문 관료들이 결합돼 국가를 이끌어가는 체제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박정희-전두환 시대도 이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의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권위주의가 나머지 두 원리를 압도하는 관료적 권위주의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일단 카리스마를 가진 권위주의적 리더의 대부분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인간사회의 공통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리더가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법치주의와 전문가주의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소신대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전체 조직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해야 할 나머지 관료들이 그 리더의 하수인으로서 오히려 전횡에 결과적으로 협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베버는 이런 위험을 경고하면서 권위주의적 관료제를 ‘쇠우리(iron cage)’라고 불렀다. 자신의 소신이나 진정한 전문성과 절차적 정의는 버리고 권위주의적 리더가 지시하는 대로 형식적인 규정과 절차만 지키며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봉사하는 도구적 기술자인 ‘영혼 없는 전문가들(specialists without spirit)’로 가득 찬 지배도구라는 의미에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이론가 프롬(E. Fromm)은 이런 권위주의적 관료제에서 생활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권위주의적 리더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납작 엎드려 순종하는 피학적인 마조키스트가 되고 반대로 아래 사람에게는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가학적인 사디스트적 기질을 보이는 모순적인 성격인 사디스트-마조키스트 성격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류의 인간형은 우리 주변의 거대 관료제 조직에서 거의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람들이다.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알려졌듯이 관료제의 원래 원리에 기반해 전문가적 소신을 지키고자 노력한 상당수의 진정한 전문 관료들이 권위주의와의 충돌과정에서 강제적으로 퇴출당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료회의 구성원인 장관급을 보자.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대통령의 요구에 반해 자신의 전문가적 소신을 지키려다 직간접적으로 퇴출당했다고 전해진다. 한때 검찰 최고의 엘리트였다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법대로 했더니 자신이 오히려 표적이 되더라고 했다. 이들은 전문가주의를 지키려다 권위주의적 지배에 희생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극소수를 제외하는 나머지 대다수 각료들은 권위주의에 순응했다고 볼 수 있다. 전문 관료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위직의 직분자들은 마땅히 가져야 할 전문가적 프라이드를 버리고 권위주의에 봉사함으로써 카리스마적 대통령의 개인적 리더십 실패로 끝날 수 있는 일을 국가적 실패로 비화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다. 만일 노대래, 신제윤, 유진룡, 진영 같은 전문가주의적 각료들이 몇 명만 더 있었더라면 설사 대통령의 개인적 파행이 있었더라도 나라가 이 정도로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위주의의 청산을 위해: 21세기 시대정신과 ‘대한민국 재설계’ 프로젝트

엄격한 상명하복 질서를 강조하는 권위주의, 행동의 내용보다는 규정과 절차의 형식적 준수 여부에 집착하는 관료주의가 결합된 권위주의적 관료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들은 물론 기업들과 다양한 비영리단체 등 모든 종류의 우리나라 조직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따라서 기업 경영진 회의도 하급자의 상향적 보고와 상급자의 하향적 지시만 있을 뿐 수평적인 상호 토론과 의견교환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리 정해진 자기 발언 순서 이외에는 대다수 회의 참석자가 바른 자세로 정중하게 앉아 상급자의 지시 사항을 필기할 준비를 하고 엄숙하게 대기한다.

우리 기업들 대부분도 그 크기에 상관없이 오너-CEO가 봉건시대 왕권 이상의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지배한다. 이런 권위주의적 조직 분위기에서는 오너-CEO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함부로 대안이나 반론을 제시할 엄두도 못 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해온 권위주의적 관료제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3년 차로 접어든 2015년 초 필자는 지난 60여 년을 지속해온 우리 사회의 기존 시스템이 더 이상 시대적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에 봉착했다고 판단해서 DBR에 우리나라의 사회 시스템을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자는 ‘대한민국 재설계’ 프로젝트를 기고했다. 이 취지에 공감하는 몇몇 필진이 각자의 분야에 대해 우리나라를 새 시대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방향과 기본 틀을 제시했다.3 규모, 양적 성장, 효율성, 속도, 시스템 중심, 수직적 질서, 일사불란함, 동질성, 응집력, 경쟁 등이 화두였던 20세기 산업사회에서는 권위주의적 관료제가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빠른 추격자로서 선진국을 신속하게 따라잡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품격과 수준, 질적 성장, 창조성, 인간과 공동체 중심, 수평적 소통, 다양성, 개방성, 협력 등이 핵심 시대정신인 21세기 창조사회에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로운 21세기 시대정신을 담을 21세기형 국가모델로 정치, 경제, 기업, 교육, 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대한민국을 즉시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었는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권위주의 체제가 없어지면 전쟁과 같은 국가비상시에 나라의 안위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특히 최근의 리더십 실패와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 상황의 핵심 원인인 정치 부문에서의 권위주의적 관료제 극복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권위주의의 궁극적인 대안은 완전한 민주주의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헌법에 명기된 우리나라에서 왜 끊임없이 권위주의의 유령이 휘젓고 다니는 것일까? 바로 대의 민주주의의 함정 때문이다. 과거에는 모든 국민들이 한꺼번에 국가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데 많은 제약조건들이 있었다. 일단 모든 국민들이 한꺼번에 투표를 실시하는 것부터 용이하지 않았으며 대다수 국민들은 수준 높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다수 국민들보다 지식, 정보, 역량이 우월한 소수가 국민들을 대리해 국가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와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지식사회의 도래로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에 아무런 장애요인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치 부문 재설계는 직접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바꾼다는 원칙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진정한 왕의 귀환’이 필요하다. 고대 제정일치 시대의 왕은 신이 점지해줬다. 봉건적 왕조시대의 왕은 혈통을 통해 상속되고 계승됐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왕은 다름 아닌 국민들 자신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공복’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듯이 진정한 왕인 국민들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심부름꾼들이 대의정치의 빈틈을 노려 진짜 왕인 국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해온 것이다. 이제 진정한 왕인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이자 의무인 정치를 다시 접수할 여건들이 충분히 갖춰졌으며 특히 이번의 초유의 리더십 위기는 그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행정의 특정 분야를 대다수 국민들보다 더 잘 아는 직업 관료들이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들의 빠른 수준 향상으로 그 차이가 과거에 비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과거처럼 소수 전문가와 대다수 비전문가 국민들로 나누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은 즉시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한 지식사회의 도래로 지금은 국민들이 더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전문 관료들은 왕의 대리인에 불과한 권위주의적 권력층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진짜 왕인 국민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할 것이다. 즉 전문 관료들은 지난 60여 년간 군림해온 권위주의의 악령에서 벗어나 대통령을 비롯한 어떤 권력층이 뭐라고 해도 원래의 직분에 충실하게 자신의 전문성과 소신에 기반한 행정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런 전문가주의적 관료들에 대해 권력층 상급자가 부당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가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진짜 왕인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전문적인 정부공공조직 감시기구를 설립해 신문고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소신을 지키다 권력층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한 공직자들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노사 간의 갈등에서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가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때 부당노동행위를 제3자인 노동쟁의조정기관에 신고해 보호를 받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선진국들에서는 시민감시기구(citizen watchdog groups)의 형태로 이미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모든 정부공공부문과 입법부, 사법부의 의사결정이 감시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나 권위주의적 권력층에 맞서서 전문가적 소신을 지키다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한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보인 검찰도 집중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인사권은 직책자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할 것이나 실은 정당성을 가진 인사권의 경우에만 적용되면 그 권한도 진정한 왕인 국민들이 위임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부당한 인사권은 반드시 국민들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공복을 뽑는 선거제도 또한 당파 간의 당리당략적 타협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의 정신에서 국민들의 뜻이 가장 잘 반영되도록 재설계돼야 할 것이다. 여야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국민들이 후보들 중 누구를 덜 싫어하는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기존 선거제도가 아니라 여야 후보들 중 모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둘 다 낙선시킬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등록 유권자의 일정 비율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면 다수 표를 얻더라도 낙선되도록 만드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선진국들에서는 결선투표제를 통해 이런 취지를 상당 부분 이미 실행하고 있다. 물론 당선 후 태도를 바꾸어 권위주의적으로 군림하려는 공직자들을 제재할 수 있는 권리를 또 다른 권위주의적 엘리트층인 사법부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도를 더욱 현실화해야 한다. 그리고 북구 등 일부 선진국들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듯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은 무보수 봉사직으로 바꾸어서 아무런 사리사욕 없이 진정한 왕인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과 공공을 위한 헌신 자체에 대한 열정과 보람을 가진 탁월한 소수만이 정치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정치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적 야심과 책략만 갖춘 자들이 정치를 하는 체제로는 21세기 창조사회는 생존할 수 없으므로 그야말로 특별한 소수만 공복으로서 정치나 행정에 참여하도록 허락돼야 한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열정이 없고 능력이 부족하면 아예 정치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정치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권위주의 체제가 없어지면 전쟁과 같은 국가비상시에 나라의 안위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만일 그런 위험이 사실이라면 중앙집권적 대통령이 아예 없이 장관들이 1년씩 돌아가면 윤번제로 상징적 대통령직을 맡는 스위스는 오랜 전에 침략을 받아 멸망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2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웠던 히틀러의 나치도 스위스의 위기대응력이 무서워 우회해야 했다. 진정한 왕인 국민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의 힘은 그 어떤 직업 정치가들도 흉내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다.

한국 헌법에 명시돼 있듯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왕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그 펀더멘털로 돌아가 그것을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구현하는 것이 ‘대한민국 재설계’의 정치 부문의 핵심 논리가 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정한 왕으로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직접 참여해서 행동하는 21세기형 국민만이 미증유의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나라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할 수 있다. 이제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억누르고 우리 국민들을 지배해왔던 권위주의의 유령을 완전히 떨쳐 버릴 때가 됐다. 만일 이번에도 이 시대적 과업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21세기 창조사회의 시대정신에서 뒤떨어져 또다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번 위기를 또다시 그냥 허비하지 말자.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yonsei.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과 인문예술 분야 세계적 학술지 ,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과 한국인사조직학회장을 역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49호 꼰대, 현자가 되다 2018년 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