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vation Insight

규제 이겨내려면, 규제보다 앞서가라

258호 (2018년 10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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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규제가 꼭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 규제가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기술 표준을 통해 남들보다 기술을 선점해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민간 기업이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업해 신기술이나 서비스로 인해 충돌하는 규제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규제는 필요악인가?
얼마 전 카풀(car-pool) 중개 플랫폼 스타트업인 ‘풀러스’는 기존 대표가 사퇴하고 직원의 70%가 해고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풀러스는 2016년 창업해서 약 1년 만에 회원 수 75만 명을 확보하고, 누적 이용 건수도 약 370만 건에 이르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후에도 네이버 등에서 총 220억 원을 투자받아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하지만 풀러스는 결국 택시업계의 반발과 정부 규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전도유망했던 풀러스의 위기는 스타트업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풀러스뿐만 아니라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새로운 형태의 스타트업들 비즈니스 모델이 기존 법 제도와 상충하는 문제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규제는 기업의 위협요인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규제의 사회적 영향은 항상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더욱이 규제와 기술 혁신의 관계는 단편적이지도, 일방적이지도 않다. 통상 규제가 새로운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고 알려져 왔지만 규제가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경우도 있다. 환경에 대한 규제가 탄소포집 기술이나 대체에너지 같은 친환경 기술의 개발을 촉진했다. 식중독을 유발하는 살모넬라균에 대한 영국과 EU의 규제가 연속형 잉크젯(continuous ink-jet) 기술의 발전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유발하기도 했다(DBR Mini Box ‘규제가 기술 혁신을 촉진한 사례’ 참고). 이처럼 규제와 기술 혁신은 서로 영향을 주는 복잡한 관계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규제를 없애야 하는 필요악으로 인식하기보다 슬기롭게 대응함으로써 규제를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접근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규제에 대한 새로운 대응 방향
그동안 주된 규제 개혁은 정부 주도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꼭 기업이 수동적 역할만 할 필요는 없다. 기업은 표준화를 통해 규제 형성을 주도할 수 있다. 또한 규제를 효율적으로 준수하고 대응하기 위해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레그텍(RegTech)’을 활용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는 다양한 기업이 정부기관과 함께 여러 복잡한 이슈를 함께 해결하는 자율 규제 개혁 플랫폼 시도하고 있다.

1. 기업이 주도하는 자발적 규제: 기술 표준
표준화(standardization)는 특정 기술에 대한 기준이나 규격을 만들어서 호환성을 높이는 행위다. 표준인증기관에 따라 국제 표준과 국내 표준, 민간 표준과 정부 표준 등으로 구분된다. 과거 기업들의 혁신 역량이 부족했을 때는 질 낮은 제품이나 서비스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달성했다는 것을 인증하는 국가표준마크를 부여했다. 대표적인 예가 공산품 규격인 KS 인증이다.

반면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 출현할 때는 민간기업들이 주도한다. 기술이나 시스템에 대한 규범이나 요구사항을 표준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기술 표준은 규모의 경제를 더 강화시키고 가격을 떨어뜨리는 등 소비자 편익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예를 들어 과거 IBM은 PC 표준을 주도해 PC 제조업체가 IBM과 호환 가능한 부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PC가 가정마다 보급되는 데 기여했다. VHS 비디오테이프나 블루레이, 4G 경우처럼 민간 기업들이 함께 컨소시엄을 만들어 표준 기술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표준화의 순기능은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적 불확실성이 높을 때 효과가 더 크다. 독일 베를린공대의 블린트(Blind) 교수의 최근 연구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클 경우 정부규제가 기업의 기술 혁신 효율성을 낮추는 반면 표준화는 이를 높일 수 있음을 보였다.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처럼 새로운 기술의 시장성이 아직 확실치 않을 경우 법이나 제도는 새로운 기술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부 규제가 시장 상황을 왜곡하고 기술 혁신에 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키는 역효과가 유발된다.


DBR mini box: 규제가 기술 혁신을 촉진한 사례

1990년대 말 달걀에 대한 식품 규제는 연속형 잉크젯(continuous ink-jet) 기술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1998년 영국 정부는 영국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달걀이 살모넬라균에 감염돼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달걀 소비가 한때 60% 가까이 감소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영국 정부는 소비자들이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지 않은 계란을 쉽게 식별하도록 하기 위해 양계 농가에 Lion Quality Code of Practice를 도입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은 이 조치를 전 회원국에 확대 적용해 모든 회원국이 모든 달걀의 상태를 표면에 표시하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모든 양계 업체는 달걀 생산 방법, 원산지, 양계장 식별코드, 유통기한(best by date)을 의무적으로 달걀 표면에 표시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규제는 산업용 잉크젯 프린터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반면, 기업이 주도하는 표준화의 경우 빠른 기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함으로써 시장의 니즈를 적기에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들은 연구개발(R&D)과 제품/서비스 개발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플랫폼 성격을 띠면서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융합되는 경우도 많다. 민간이 주도하는 표준화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

많은 기업이 참여함으로써 기술 개발에 필요한 위험 비용을 분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공급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기업들이 참여하는 자율주행시스템 기술포럼이 대표적인 예다. 민간 기업의 기술 전문가들이 주도하면서 새로운 기술 표준을 제정하고 이와 관련된 규제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기업의 역할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2. 디지털화를 통한 규제에 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 레그텍(RegTech)
RegTech이란 규제를 의미하는 ‘Regulation’과 기술을 의미하는 ‘Technology’의 합성어다. 규제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개선해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는 새로운 규제 대응 전략을 일컫는 말이다. 국제금융협회(IIF, 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는 레그텍을 빅데이터·클라우드·머신러닝 등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기업의 금융 관련 법규 준수 및 규제에 대응을 쉽게 해주는 규제의 디지털화로 정의하고 있다.

사실, 레그텍은 핀테크의 발달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강화된 금융 관련 법률규제로 생긴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기존 금융 거래의 취약점을 관리하고 점점 지능화되는 금융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신기술이다.

한 예로,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Fraud Detection System)은 고객의 평소 거래패턴을 분석해 전자금융 사기로 판단되는 거래를 사전에 걸러내어 차단하는 기술이다. 빅데이터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탐지율이 98%를 넘어섰다고 한다. 유사한 사례로 자금세탁방지시스템이 있는데 가상화폐, 크라우드 펀딩의 활성화로 인해 용이해진 불법 자금 흐름을 빅데이터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사전에 탐지할 수 있다.

특히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게 이뤄지는 분야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처럼 기존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기가 곤란한 경우 레그텍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Bigdata) 분석 등을 통해 규제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수많은 해외 지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기업들도 레그텍을 활용할 수 있다. 해당 국가의 규제 변화를 빅데이터로 분석, 학습해 선제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또한 웹 기반의 자동화된 진단 툴을 활용해 규제 준수에 필요한 비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파악해 낼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레그텍의 활용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딜로이트는 유럽과 미주 지역을 선도하는 레그텍 서비스 업체 트렌드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컨설팅 방법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KMPG도 SAS그룹과 함께 내부 인력만으로 대응하기 힘든 빠른 규제 변화에 대한 디지털 기반 대응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통해 규제 변화에 스마트하게 대응하는 레그텍의 적극적 도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늘어나는 안전 관련 규제 규정과 법령을 빅데이터,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이 학습하도록 함으로써 안전 규제 준수 여부를 저비용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데이터 흐름 추적과 예측을 통해 예상되는 새로운 규제 형태나 내용에 대해 예측함으로써 사전에 규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심사·인증업무를 AI 기반 레그텍이 대신함으로써 기업이 적기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심사·인증업무에 드는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디지털 경제의 자율적 규제 개혁: Innovation Deal
‘풀러스’나 ‘에어비앤비’ 사례처럼 현행 규제는 택시회사나 숙박업체 같은 기존 이해관계자집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기술 혁신에 기반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혜택을 받는 이익집단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경우나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기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규제 이슈는 이해관계자 집단 간 갈등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유럽연합은 규제 도입 과정에서 이러한 갈등 조정의 중요성에 주목해 ‘Innovation Deal’이라고 하는 실험적 자율적 규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Innovation Deal은 네덜란드가 녹색성장 정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여러 이해관계자 집단의 의견을 조율하는 ‘Green Deal Program’의 성공에 자극받아 EU 차원의 시범 프로그램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현재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재활용’과 ‘혐기성 박막기술을 활용한 폐수처리’ 등 2가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재활용’ 프로젝트의 경우 전기자동차가 보편화되는 가까운 미래에는 배터리 재활용이 큰 이슈가 될 수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규제가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전기자동차에 활용되는 배터리의 경우 리튬 등의 중금속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폐기물 처리 또는 재활용에 대한 새로운 기술 개발과 이에 적합한 규제의 발전적 개선이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에는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네덜란드의 IT 및 재생에너지 기업인 LomboXnet, 에너지 회사인 Bouygues, 프랑스 환경부와 산업부, 네덜란드 환경부와 경제부, 네덜란드 Utrecht 주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규제 프레임과 배터리 재사용에 관한 규제 프레임을 함께 검토함으로써 자동차 배터리 재활용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개혁하겠다는 취지다.

Innovation Deal은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새로운 기술로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규제 이슈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조정 과정을 지향하고 있다. 기존 규제 개혁을 정부가 주도했던 것과 다르게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것도 큰 차이다. 유럽연합은 Innovation Deal의 주제를 공모를 통해 선정했는데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재활용’ 프로젝트의 경우 르노닛산과 LomboXnet이 주도해 제안서를 제출해 선정됐다. 이후 관련 국가의 중앙 및 지역 정부가 함께 참여함으로써 기업이 발굴하는 규제 이슈들의 개혁을 돕고 있다. 규제 이슈의 발굴부터 민간기업이 주도한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 규제의 발전 방향은?
규제가 기술 혁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는 항상 존재해 왔다. 최근 들어 기술발전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기술 간 융복합이 가속화하면서 규제와 기술 혁신의 충돌이 더 잦아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네거티브 입법이나 규제 샌드박스 같은 공급자 중심의 규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점차 빨라지는 기술 변화를 신속하게 법·제도에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앞으로는 기업이 규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대응하는 전략도 바뀔 필요가 있다. 적극적으로 기술 표준을 주도함으로써 빠른 기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며,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활용해 규제 대응 역량을 키우는 레그텍의 도입과 활용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민간이 주도하는 규제 논의의 장을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민원성으로 제기되는 소소한 사안들을 검토하기보다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큰 이슈들을 민간기업 주도로 발굴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민·관 협력체계의 도입과 안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소개 안준모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ahn.joonmo@gmail.com
필자는 서울대에서 화학공학 학사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기술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소기업청, 과학기술부,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개방형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조업(high value manufacturing)과 중소벤처기업의 기술 혁신 활동, 기술 창업과 사업화, 기술혁신정책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심우현, 『지능정보사회 발전을 위한 규제개선방안 논의』, 한국행정연구원, 2018.
2. 안준모, 『스마트 규제를 통한 기술혁신』, 한국개발연구원, 2018.
3. 이수일, 『규제개혁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하나』, 한국개발연구원, 2017.
4. BERR (Department for Business, Enterprise and Regulatory Reform of the UK) “Government “Regulation and Innovation: Evidence and Policy Implications”, Economics Paper No. 4, 2008, BERR:London.
5. Blind, K., Petersen, S. S., &Riillo, C. A. (2017). The impact of standards and regulation on innovation in uncertain markets. Research Policy, 46(1), 249-264.
6. EU, Innovation Deals, 2018
7. OECD, Regulation Reform and Innovation, 2010, Paris: OECD.
동아비즈니스리뷰 259호 Agile Transformation 2018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