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5. 창의 산업의 글로벌 전략

현지화 전략을 통한 ‘캐치 업’보다
한국적인 것의 글로벌화에 승부 걸어라

289호 (2020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창의 산업이란 창의성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문화 예술적 창의성을 기초로 하고, 이를 극대화함으로써 꽃 피운 산업을 말한다. 한국은 그동안 창의 산업의 후발주자로서 선진국 기업들을 빠르게 벤치마킹하는 캐치 업(Catch up)에 집중했다. 주로 현지화 전략을 쓰면서 동남아,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했고, 기획사 주도로 팬덤을 조성하고 매스컴을 활용했으며, OSMU(원 소스 멀티 유즈) 접근을 통해 IP 확장을 꾀했다. 그러나 한류 열풍으로 한국 창의 산업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기업들의 전략적 초점이 캐치 업에서 리딩(Leading)으로 이동하고 있다. 현지화보다는 한국적인 것의 글로벌화, OSMU보다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 매스컴보다는 SNS 1인 미디어를 통한 팬덤의 자발적 조직화가 유효한 전략으로 부상했다.




“얼음이 녹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인문학적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흔히 창의성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새로운 착상(着想), 의견을 생각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학문적으로 창의성에 관한 연구는 18세기 후반부터 진행됐는데 정신분석이론을 개척한 프로이트의 연구도 그중 하나다. 현대에 들어 창의성의 대표적인 이론가는 길포드다. 길포드(Guilford)는 창의성을 두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거나 적절한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나아가 이러한 능력을 기초로 하는 사고’로 정의했다. 또 다른 학자인 오즈번(Osborn)은 창의성을 ‘일상생활에서 당면하는 문제를 새롭고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좌뇌형 인간은 논리적인 사고로, 우뇌형 인간은 상상력 있는 사고로 창의성을 구현한다. 흔히 시간이 되면 밥을 먹는 사람, 주위의 다른 것을 둘러보지 않고 똑바로 길을 걷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는 데보다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 등을 좌뇌형 인간이라 한다. 반대로 시간과 상관없이 배고플 때 밥을 먹는 사람, 주위의 호기심 있는 것을 기웃거리면서 길을 걷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는 데 좀 더 관심 있는 사람 등은 우뇌형 인간이라 한다.

이를 창의성과 연결 짓는다면 좌뇌형 인간은 과학적 창의성, 우뇌형 인간은 예술적 창의성을 가진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과학적 창의성은 수렴적 사고가 중심이 되고, 예술적 창의성은 확산적 사고가 주를 이룬다. 수렴적 사고는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접근을 추구하고, 합리적인 대안들만을 고려하며 의식, 논리, 질서를 강조한다. 반면 확산적 사고는 가능한 많은 대안을 창안하려 노력하며 합리성을 반드시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연의 개입을 환영하고 무의식, 비약, 무질서를 강조한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라는 사고는 이러한 확산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고흐의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고흐는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방식으로 그린 화가가 아무도 없다는 게 놀라워. 사이프러스는 그 선이나 비례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큼이나 아름다워, 그 녹색에 아름다운 특질이 있고, 햇볕이 내리쬐는 풍경에 검정을 뿌려놓은 것 같아.’ 이처럼 고흐는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관찰했다.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적 안목으로 창의성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술적 창의성의 결과로서 ‘창의 산업’

창의 산업(creative industry)1 의 의미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창조성과 문화적 가치를 그 기반에 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창의성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문화 예술적 창의성이 근간이 되는 산업으로 정의 내려진다. 여기에서도 예술적 창의성의 결과물로서 창의 산업을 바라보고자 한다.

실제로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창의 산업은 크게 문화유산, 예술, 미디어, 실용 창작의 4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즉, 공연예술이나 축제 등 전통적인 지식과 문화유산에 뿌리를 둔 활동부터 시청각 기재와 뉴미디어와 같은 기술과 서비스까지 망라하는 것이다. (그림 1) 가장 많이 통용되는 영국의 DCMS(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 분류에 따르더라도 창의 산업은 방송, 음악, 영화, 게임, 공연, 출판, 광고 등의 문화콘텐츠산업과 미술, 패션, 공예, 디자인, 건축, 소프트웨어 등을 모두 포괄한다. (그림 2)

가치사슬을 따져 봐도 상상력과 창의성은 창의 산업의 근간이 된다. 제작 부문에서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제품과 서비스에 체화돼 있고, 경영 부문에서는 창의적 비즈니스 경영능력 등이 필수적인 자질이다. 또 창의 산업은 남들과 다른 생각, 융합적인 사고, 유연하고 독창적인 사고, 보유 자원의 활용력, 새로운 콘텐츠 창출력 등 역량을 가진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즉, 창의 산업이란 창의적 인재, 창의적 아이디어, 창의적 감각 등 창의성 투입의 산출물이자 이를 토대로 고도의 기획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창의 산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래 유망 산업이라는 점이다. 창의 산업은 미래 성장성이 크고,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기술 발달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창의 산업은 상당 기간 고속 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특히 창의 산업은 상품 하나만 잘 만들어도 오랜 기간 흥행이 보장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디즈니가 만든 캐릭터 미키마우스는 무려 100여 년간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을 잘 만들면 장기간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 지식재산권(IP) 확장이 가능하다. 한 번 저작권이 확보되면 이 IP가 기타 부문에 활용돼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는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프랜차이즈(franchise)나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의 개념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미생’은 처음에 웹툰으로 만들어졌으나 드라마로 제작돼 더 많은 수익을 발생시켰다. 해리포터 역시 처음에는 소설로 쓰였다가 영화화되면서 흥행을 이어갔고, 현재까지도 캐릭터 상품, 테마파크 등으로 변형돼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셋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이다. 위험이 큰 대신 흥행에 성공하면 수익성도 높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소수의 히트 작품이 수익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미국 영화 산업의 경우 흥행 상위 10% 작품이 영화 산업 전체 수익의 50%를 차지한다. 따라서 창의 산업에 투자할 때에는 수익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넷째, 창의 산업의 교역에서는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이 발생한다. 언어, 관습, 문화, 정서, 선호 장르 등의 차이로 인해 다른 문화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차이를 문화적 장벽이라고 하고, 그 크기를 할인율로 나타낸다. 문화적 장벽이 높으면 문화적 할인율이 높고 문화적 장벽이 낮으면 문화적 할인율이 낮다. 가령, 게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의 장르는 지역별 문화적 수용의 차이가 작아 할인율이 낮은 편이다. 반면, 드라마, 가요, 영화 등은 문화적 차이가 커 문화적 할인율이 높다.

다섯째, 창의성과 상상력이라는 유전인자를 다른 산업, 크게는 국민 경제로 확산시킬 수 있다. 창의 산업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현하는 역량을 기초로 한다. 따라서 창의 산업에서 축적된 이런 역량이나 자원을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에 접목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부가가치를 향상할 수 있다. 나아가 창의 산업에 배태된 창의적 역량을 확산시키면 국가 전체에 창의적 DNA를 심어 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여섯째, IP와 관련된 산업이다. IP는 물질문화에 부여되는 산업재산권, 정신문화에 부여되는 저작권, 그리고 신지식 재산권2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권리는 창의 산업 상품들과 직결돼 있다. 사실상 창의 산업 상품의 거래는 IP의 거래인데, 기술 발달로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면서 불법 복제로 인해 심각한 침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곱째, 인적경쟁력이 중요한 산업이다. 창의성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므로 창의성을 가진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 창의 산업에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국내에 축적된 문화 예술적 창의성 덕분에 해외에서 한류가 성행하고 있다. 또 디자인, 패션 분야는 물론이고 순수 문화예술 분야의 해외 경연대회나 시상식에서도 한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캐치업에서 리딩으로... 경영 전략의 변화
1. 과거: 캐치업(catch up) 전략
한국은 그동안 창의 산업의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을 추격하면서 성장해왔다.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서 과감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조기에 달성하면서 선진국을 따라잡았다. 선발주자인 외국 기업들을 벤치마킹하거나 그들의 경영기법과 도구를 부지런히 받아들인 결과 창의 산업에서 한국 기업의 역량도 꾸준히 강화됐다. 특히 국내 창의 산업은 발전 초기 단계에 선진국 대비 열악한 산업 환경과 내수 시장 규모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해외에서 한류가 형성되면서 일본의 대중문화를 대체해버렸다. 즉, 과거 해외에서 유행하던 J-DRAMA와 J-POP의 자리를 K-DRAMA, K-POP이 꿰찬 것이다. 이전까지는 선진국을 뒤따라가는 데 급급했으나 이제는 선진국이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처지가 됐다.

이 같은 캐치업이 성공한 배경에는 창의 산업에 특화된 맞춤형 전략이 있었다. 창의 산업에서는 교과서적 경영 전략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나 기업 역량 등에 맞는 전략을 추진해야만 효율적인 사업 운영이 가능하다. 국내 기업이 선진국을 캐치업하기 위해 펼쳤던 구체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지화 전략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시장잠재력이 무한한 중국 진출을 겨냥해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멤버 12명 중 4명을 중국인 멤버로 구성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국가별로 문화적인 장벽이 존재하므로 해당 문화권에 정통한 현지인을 기용하거나 시장 수요에 최적화된 현지화 전략을 추진한 것이다.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지 문화나 언어, 기호를 면밀하게 검토해 적합한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했다.

둘째, 변방에서 시작해 본토에 진입하는 지역적 우회 전략이다. 후발국인 한국 기업 입장에서 북미 등 선진국 시장에 곧바로 진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문화적 장벽이 높을 뿐 아니라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국보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 직접 맞붙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기업은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는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후발국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진출을 시도했다. 이들 지역을 초기 거점시장으로 보고 먼저 중국, 동남아 지역에 진입한 뒤 점차 유럽, 미국으로 무대를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초기 한류의 근거지가 된 곳도 동남아와 중국, 일본이었다.

셋째, 팬덤 형성을 위한 전략이다. 한국 아이돌이 인터넷상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미디어 콘텐츠의 디지털화로 국내의 열성 팬들이 동영상을 반복해서 조회하고, 이로 인해 특정 스타의 영상이 메인에 노출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오프라인에서의 팬클럽 결성을 지원하고, 온라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팬들을 관리하며 국경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환경을 조성했다. 이 같은 반복적인 노출의 과정을 통해 세계 각국에 마니아층이 생겨났고, 팬들의 활동은 국제화되고 동시성을 갖게 됐다. 아울러 팬덤 확산의 속도도 더 빨라졌다.

넷째,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이다. OSMU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변형한다는 의미로 창의 산업의 특징 중 IP 확장성을 반영한 전략이다. 웹툰으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영화, 드라마 등으로 재생산돼 웹툰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OSMU를 바탕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전략을 활용해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다섯째, 매스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홍보 전략이다. 그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작품을 홍보하기 위한 지배적인 수단으로 대중미디어를 활용했다. 가수가 음반을 새로 낼 때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홍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해외에 진출할 때에는 현지 공중파 방송에 나오기 위해 현지 유력 에이전시와 계약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2. 현재: 리딩(leading) 전략
한국의 창의 산업이 캐치업 전략을 통해 발전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고, 그 결실로서 한류는 이제 글로벌 문화 조류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한국 문화가 지금과 같은 글로벌 파급력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 창의 산업의 위상이 달라지고 글로벌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기존 전략이 더는 먹히지 않게 됐다. 과거처럼 선발주자를 쫓아가는 전략은 이제 유효하지 않고, 리더의 위치에서 앞서나가는 리딩 전략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신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 현지화 전략이 글로벌 전략으로 바뀌었다. 과거 한국이 후발주자였을 때는 현지화 전략이 요구됐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창의 산업이 전 세계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한국의 고유성을 부각해도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글로벌 보편성을 가지고 해외에 진출해야만 세계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통념과 달리 이제는 한국적 특수성이 녹아든 작품 그대로 해외에 나가도 세계에서 통(通)한다는 게 입증됐다. 즉,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의 변경은 현지화 전략이 부작용을 드러내면서 가속화됐다. 앞서 언급한 EXO의 경우 중국 시장을 겨냥해 한국인 멤버 8명, 중국인 4명의 12인조로 데뷔했으나 중국인 멤버의 대거 이탈로 곤혹을 치렀다. 2014년 크리스, 루한이 탈퇴한 데 이어 2015년 타오까지 탈퇴하는 등 3명이나 팀을 떠난 것이다. 중국인 멤버들은 인기가 상승하자 중국 현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는 등 여러 유혹에 노출됐다. 일부는 한국에서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인기리에 활동하며 글로벌 한류 열풍을 본국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멤버 간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아이돌 팬덤은 큰 타격을 입었고, 데뷔 전부터 촘촘히 짜놨던 개인 및 그룹 차원의 세계관에도 공백이 생겼다. 이에 최근 들어서는 K팝 아이돌 그룹에 외국인이 끼어 있으면 잠재적 리스크가 되고, 해당 국가에서의 인기도 오히려 떨어진다는 인식이 커졌다. 현지인들도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즐기려고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것이지 자국 가수를 보기 위해 굳이 한국 대중음악을 소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방탄소년단(BTS)은 한국적인 것을 고수해 성공한 사례다. BTS는 오직 한국인 멤버로만 구성됐고 이들의 음악도 한국어 가사로 쓰였다. 대표곡 중 하나인 IDOL에는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 등 국악의 추임새와 전통 가락까지 삽입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해외 진출을 위해 이 곡들을 현지 언어로 개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외국인 팬들이 오히려 한국어 가사를 더 좋아하고 따라 부른다. 국내 팬들이 자발적 마케터로서 이들 가사를 번역해 유튜브 등 SNS에 부지런히 퍼 나른 결과다. BTS 해외 콘서트에서 한국어 ‘떼창’은 이제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한류의 글로벌화 덕분에 한국 문화에 호기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국내 화장품 기업들도 한국적인 것을 본격적인 셀링포인트로 삼고 있다. 문화적인 장벽을 초월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앞세운 마케팅으로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코리아마케팅이 효과를 거두는 시대가 됐다.

둘째, 우회 전략이 ‘직진 전략’으로 바뀌었다. 과거 중국, 동남아를 중심으로 시장을 개척하던 국내 기업이 이제는 막대한 미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선발주자가 소홀히 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필요 없이 매력적인 유망 지역이나 시장 규모가 큰 지역에서 승부를 거는 직진 전략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한국 기업인 스마트스터디가 만든 대표 캐릭터 핑크퐁과 ‘아기 상어(베이비샤크, baby shark)’ 노래는 처음부터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가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미국 프로야구팀 워싱턴 내셔널스의 응원가로 사용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은 것이다. 한국의 창의적인 콘텐츠가 이제는 미국 시장에 바로 진출해도 될 정도로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아기 상어 노래는 빌보드 메인 차트에 오르고, 유튜브 누적 조회 수 230억 뷰를 기록했으며, 핑크퐁 제품은 아마존 사이트에서 높은 판매고를 달성했다. 스마트스터디는 이 같은 미국 내 아기 상어 인기에 힘입어 북미 100개 도시에서 라이브 순회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셋째, 팬덤 형성 전략에서 자발적 팬덤 활용 전략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던 기획사들이 이제는 SNS를 통한 팬들의 자발적 조직화를 독려하고 있다. 팬들이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고 홍보 마케팅의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엔터테인먼트사가 주도해서 마케팅을 펼쳤다면 이제는 SNS 네트워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글로벌 팬덤이 확산되고, 팬들이 스스로 마케터를 자처하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3

BTS의 아미(ARMY) 팬 활동을 봐도 이 같은 자발적 조직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일단 BTS의 팬으로 ‘입덕(열렬한 팬이 되다)’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소문을 내고 다른 팬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조직의 규모를 더욱 키운다. 더욱이 이들이 스스로 제작한 BTS 관련 콘텐츠가 SNS 등에 유포돼 다시 인기를 끌고 커뮤니티를 공고히 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이처럼 열광적인 팬덤은 음반 혹은 디지털 음원 구매, 콘서트 관람, 스타 상품, CF 상품 등 다양한 형태로 구매력을 행사, 연예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수용자가 능동적 참여와 생산 주체가 되고, 이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양상이 쌍방향으로 진화하면서 팬덤 활용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

넷째, OSMU 전략이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전략으로 바뀌었다.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이란 여러 개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하나’로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를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과거에는 하나의 상품을 변형해 다양한 분야에 사용하는 OSMU 전략이 활용됐으나 이제는 여러 형태의 상품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단일 세계관으로 통합하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리니지 등을 만든 엔씨소프트가 게임개발사로 시작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게임업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된 것은 IP에 관한 끝없는 연구와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2014년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투자한 데 이어 만화 기획·제작사 재담미디어, 웹소설 기획·제작사 RS미디어,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에 각각 투자했다. 원래부터 보유하던 IP에 안주하지 않고 투자를 통해 원천 스토리를 확보하고 신규 IP를 계속해서 발굴해 나갔다. 나아가 이런 스토리 IP들을 영상·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하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전략을 추진했다. 이처럼 웹툰과 웹소설, 영상과 게임의 스토리가 그 자체로도 완결성을 가지지만 서로 연결돼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도록 하는 게 엔씨소프트의 전략이다.


다섯째, 매스커뮤니케이션 홍보 전략이 1인 미디어 홍보 전략으로 바뀌었다. 미디어 환경의 격변 속에서 이제는 SNS가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핀터레스트, 링크트인, 인스타그램 등 다양하고 새로운 채널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콘텐츠는 SNS 플랫폼을 통해 창의성과 대중성을 인정받기만 하면 국경을 초월해 즉각적으로 배포될 수 있다. 과거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에이전시와 접촉하고,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음반 발매와 공중파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여야 했던 것과 대비된다. 기존 미디어를 뚫으려면 내부 인사이더를 통해야 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고 투자비용이나 시간 대비 성과를 거두기 힘들었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이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모바일 SNS만 있으면 단기간에 글로벌 마케팅이 가능해졌다. 싸이와 BTS가 기성 미디어의 문을 먼저 두들기지 않고 미국에 입성하게 된 것도 유튜브의 힘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SNS 전략을 보자. SM엔터테인먼트는 일찍부터 뉴미디어 관련 부서를 만들어 SNS 플랫폼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SNS를 이용한 홍보는 크게 가수의 영상 배포, 팬과의 소통, 가수 관련 굿즈 판매 등의 형태로 이뤄진다. 이 밖에도 앨범 발매나 수상 및 캐스팅 소식 등 관련 뉴스를 전달하고 해외 방문 일정을 홍보하기도 한다. 이런 서비스로 인해 전 세계 SM 팬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 이는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 활동을 할 유인이 된다. 또 데뷔하기도 전에 SNS를 통해 팬들의 반응을 먼저 살펴보고, 가수 데뷔 후의 성공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SNS가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 셈이다. 특히,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신인의 경우 글로벌 마케팅의 일환으로 데뷔 전부터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이처럼 온라인을 통한 음악 홍보가 음반 시장에서 일반화되면서 SNS는 가장 파괴력 있는 도구가 됐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은 창의 산업의 후발주자에서 선발주자로 부상했고, 과거 캐치업 전략과는 다른 리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SNS가 있다. SNS를 떠나서는 창의 산업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미디어의 변화와 더불어 앞으로 창의산업을 뒤흔들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기계의 등장이다.

지금까지 창의 산업이 인간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발전했다면 미래에는 인공지능 등 기술에 의해 번영이 촉발될지 모른다. 이 경우 새로운 이슈도 불거질 것이다. 먼저 저작권에 대한 이슈가 있다. 과거 저작권은 인간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공지능이 작품을 만든다면 저작권을 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사실상 기계에 저작권을 주기는 어렵겠지만 인공지능의 창작 범위가 포함되도록 저작자를 재정의하는 작업은 필요해질 것이다.

기업의 경영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우수한 인공지능을 개발한 회사가 창의 산업을 선도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다량의 작품을 신규 콘텐츠로 활용해 사업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인공지능이 변형, 창조한 작품을 상품화하면 충분히 이익을 거둘 여지가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그림이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에서 5억 원에 판매된 선례도 있다.(그림 3) 창의 산업에서 기술 변화는 위협이 아닌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


필자소개 고정민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 spin3002@hanmail.net
고정민 교수는 연세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받은 뒤 성균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콘텐츠진흥원 설립위원을 거쳐 현재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문화콘텐츠 산업, 한류와 경영 등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8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2020년 11월 Issue 1 목차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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