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의 글로벌 시장 전략

전 세계 바다, 안테나로 접수하다
틈새 뚫어 10년 만에 ‘글로벌 1위’로 우뚝

289호 (2020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해상용 안테나 VSAT(Very Small Aperture Terminal, 초소형 지구국) 시장 세계 1위 기업인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의 글로벌 시장 공략법은 다음과 같다.

1. 해상 장비 관련 기술 노하우와 시장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기성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진입 장벽이 높은 VSAT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2.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해상 장비 메인 시장인 미국에 진출, 마케팅 확대, 유통 채널 확보, 글로벌 조직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3. 소수 기업이 장악한 VSAT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재빠르게 파악, 선제적으로 제품을 개발해 경쟁사와의 차별성을 높여 나갔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조수경(한양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근 배 안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고, 영화를 다운로드받아 보며, 지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유롭게 연락을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외부 상황이나 선박 내부 탑승객과의 통신이 원활해지면서 선박 내 업무 생산성도 올라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는커녕 전화 수신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애먹었던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이와 비교했을 때 크루즈선, 쇄빙선 등 장기간 배에서 생활하는 여행객들이나 연구원은 물론 유조선, 화물선과 같은 상선을 타는 선원들의 바다 생활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위성통신망을 이용하며 소형 해상용 안테나로 쓰이는 VSAT(Very Small Aperture Terminal, 초소형 지구국)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과거 해상 통신 서비스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빠른 속도의 통신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위성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배 안에 통신 신호를 보내고 받을 수 있는 VSAT 설치가 필수적이다. 전 세계 VSAT 1위 기업이 바로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이하 인텔리안)이다.글로벌 시장 점유율 27.1%로 연 매출은 약 1200억 원 규모다. 이 중 해외 매출 비중이 약 95%에 달한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선박 내 VSAT 장착률이 20%에 채 못 미치는 상황이라 향후 성장 가능성도 크다.

2004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인텔리안은 IT 전문가인 성상엽 대표와 해상 장비에는 문외한에 가까웠던 안테나 연구진 4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창업 멤버들은 창업 첫날부터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단계별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틈새시장인 위성 TV 안테나(TVRO, TV Recieve Only)로 접근해 업력을 쌓은 뒤 점차 더 큰 기회가 있는 위성통신 안테나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해 세계 VSAT 시장 1위에 올랐다.

해양 장비 시장은 자동차 부품 시장만큼이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 동안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전통 기업들의 텃새 때문에 신생 기업이 제대로 실력 발휘도 해보지 못하고 물러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인텔리안은 시중의 VSAT 안테나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제품과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개발해 시장을 개척했다. 또한 보수적이고 정체된 VSAT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해 협력사들이 원하는 니즈를 정확히 파악, 집중적으로 파고든 덕에 시장 영향력을 확대했다.

해상을 정복한 인텔리안은 이제 육지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9년 5월부터 ‘원웹(One Web)’ 프로젝트에 파트너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원웹 프로젝트는 지형적 특성, 경제적 제약 때문에 통신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 ‘인터넷 사각지대’에 간단히 소형 안테나만 설치해도 LTE급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한다. 4조 원에 이르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에는 소프트뱅크, 에어버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포진했다. 인텔리안은 원웹의 통신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안테나를 독점으로 공급한다. 2019년 12월, 이미 261억 원어치의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회사가 보유한 핵심 기술과 제품이 최근 기술 트렌드 및 시장 수요와 맞물리면서 계속해서 시장을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텔리안은 어떻게 VSAT 불모지인 한국에서 시작해 불과 10여 년 만에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DBR이 인텔리안의 글로벌 시장 전략을 취재, 분석했다.




IT 컨설팅 회사 대표가 설립한 선박 안테나 제조업체

성상엽 인텔리안 대표는 원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꽤 오랜 기간 IT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 2001년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첫 아이템은 3Com이 개발한 PDA에 들어가는 게임 프로그램. 불행인지 다행인지 핵심 개발자가 회사를 나가면서 이 사업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좌절됐다. 사업은 자연스럽게 그의 주특기인 IT 컨설팅 서비스로 흘러갔다. 시스템 통합, 글로벌 공급망 관리 등과 관련한 IT 프로젝트를 주로 맡았다. 사업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3년 동안 회사가 크게 확장되면서 꽤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성 대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세상에 영향을 주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느꼈던 한계와 아쉬운 점을 해소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물색했다. 우선 IT 컨설팅 사업은 국내 시장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 사업 확장성이 작았다. 또한 사람과 회사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보니 매일 밤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며 영업하는 일이 잦았는데, 마냥 즐겁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밤낮으로 일하는데도 들이는 노력과 자원에 비해 수익성이 좋지 않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조금 힘들더라도 세계 시장을 겨냥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성 대표의 고등학교 동창인 차승현 전무가 그를 찾아왔다. 그가 꺼내든 아이템은 바로 선박용 안테나였다. 차 전무는 다른 동료 3명과 함께 국내 안테나 제조회사에서 지상용 통신 기지국 전용 안테나 연구개발을 하다가 우연치 않게 선박용 안테나 시장에 대해서 알게 됐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고, 각종 통신 서비스가 고도화하면서 안테나 시장도 포화단계에 이르고 있던 시절이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성장 속도도 더뎌졌다. 그런데 해상 선박용 안테나 시장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교역, 여행, 레저 등 다양한 해상 운송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선박용 안테나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었다. 지상용 안테나와 비교했을 때 개발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보급이 늘고 있는 TVRO 안테나는 비교적 구조가 간단해 현재 보유한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했다.

차 전무 회사의 연구진은 당시 다니던 회사 내부에 TVRO 안테나 연구개발을 제안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제품 개발이 80∼90% 완성될 무렵이었다. 갑자기 이 회사 경영진이 선박용 안테나 사업에 대한 의구심을 품었다. 이미 기존 사업이 잘 유지되고 있는데 굳이 신시장 개척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결국 연구개발을 위한 지원이 끊겼다. 하지만 차 전무를 비롯한 연구진은 고지를 눈앞에 두고 개발을 멈출 수 없었다. 이때 차 전무는 사업에 성공한 고향 친구인 성 대표가 생각이 났고, 그를 무작정 찾아가 동업을 하자고 설득했다.



성 대표는 이 제안을 듣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안테나 기술 자체를 접해본 적이 없을뿐더러 제조업에 대한 경험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선박용 안테나 사업을 시도한 사례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사업만큼 매력적인 게 없었다. 첫째,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펼친다는 점 때문이었다. 안테나는 선박의 필수 부품이기 때문에 바다를 항해하는 전 세계의 모든 선박이 고객이 될 수 있었다. 제품만 확실하면 어떤 국가든, 어떤 회사든 시장의 제한 없이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지상 통신 서비스와 달리 해상용 통신 서비스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었다. 통신 속도나 용량 면에서 지상 서비스에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운송은 물론 여행, 레저 등 해상 활동이 늘어나게 되면 점차 해상 통신의 발전도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 세계에서 선박용 통신 안테나를 제조하는 회사도 몇 개 되지 않았다. 메이저 회사로 꼽히는 영국 방위산업업체인 콥햄(Cobham)과 미국 위성통신업체인 KVH라는 회사 정도였다. 선제적으로 이 시장에 진입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한다면 가능성이 없는 도전도 아니었다.

셋째, 인텔리안만이 도전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는 점에서다. VSAT는 하이테크 기반의 제품이다. 안테나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로봇기술, 안테나의 송수신을 지원하는 네트워크 기술은 물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다양한 기술 보유가 필수적이다. 그만큼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고 기술 개발에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도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차 전무 팀에는 이미 안테나 핵심 기술을 보유한, 국내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4명이나 모여 있었다. TVRO 안테나 개발도 완성 단계에 있었다.

게다가 기술력 확보에 유리한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란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VSAT 시장 자체가 대기업이 진출하기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2004년 2월, 성 대표는 글로벌 마케팅 인력으로 합류한 강현욱 상무와 차 전무가 이끈 안테나 전문가들과 함께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를 창업했다.


DBR mini box I: VSAT 시장은…

해상용 VSAT(Very Small Aperture Terminal, 초소형 지구국)은 직경 0.6∼2.4m 크기의 소형 안테나를 일컫는다. 쉽게 말해 해상에서 전화도 걸고, 인터넷도 하고, TV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해상용 통신 서비스 전반의 하드웨어 산업을 일컫는다. 최근 해상에서의 원활한 통신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VSAT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한 연구 조사 기관에 따르면 해양 통신 사업자, 통신 장비 등을 포함한 2017년 글로벌 해상용 VSAT 시장 규모는 19억9000만 달러(약 2조3100억 원)였고, 2025년에는 그 규모가 51억5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다.





‘레트로 핏’ 중심으로 요트 전자장비 시장 공략

창업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추운 겨울. 창업 멤버는 모두 미국 마이애미로 향했다. 매해 2월 중순에 열리는 ‘마이애미 국제 보트 쇼’에 참가해 시장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 행사는 주로 레저용 요트 전자장비와 부품, 건조업체 등이 참여해 제품과 선박을 전시하고 서로 거래를 성사시킨다. 쉽게 말하자면 요트 업계의 ‘CES(세계가전전시회)’ 같은 곳이었다.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유통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 등을 알아보는 게 과제였다.

인텔리안의 첫 타깃을 요트 시장으로 잡았다. 레저용으로 쓰이는 요트에 TV를 다는 선주가 많아지면서 TVRO 안테나 수요가 덩달아 증가했다. 생각보다 수요층도 두터웠다.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저가에서 초호화 요트까지 100만여 대에 달했다. 100만 원대인 제품 가격을 생각하면 약 수천억 원에 달하는 시장 규모가 나온다.

하지만 보수적인 선박업계 관계자들은 인텔리안의 안테나에 냉담했다. 제품 설명조차 제대로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요트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높지 않은 한국 출신이라고 하니, 미팅조차 제대로 잡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업계 사람을 만났다. 무작정 말도 걸어보고, 함께 맥주도 마시면서 업계 관계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단서들을 포착했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우선, 인텔리안 홀로 시장에 진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요트는 ‘사치재’이다. 그만큼 요트 소유자들이 가격에 민감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튼튼하고 질 좋은 제품을 선호한다. 요트에서 브랜드 이름이 외부에서 드러나는 부품은 안테나가 유일하다. 남들이 잘 알고, 평가가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달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텔리안처럼 브랜드 인지도도 없는 신생 브랜드의 안테나를 구매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요트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회사를 물색해 인텔리안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이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기존 요트 선주들의 교체 수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도 얻었다. 앞서 설명했듯 선박 시장은 자동차 업계만큼 보수적이다. 부품업체와 제조업체가 오랜 기간 협업해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구조도 유사하다. 즉, 요트 건조에 들어가는 부품사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텔리안이 이 공고한 질서를 뚫고 시장에 진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대신 주목한 것은 부품 교체 시장이었다. 요트는 한번 사면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탄다. 그만큼 배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게 중요하다. 안테나와 같은 전자부품도 약 8∼10년 주기로 갈아줘야 한다. 이렇게 편집숍에서 선주가 직접 해양 장비를 구매해 기존 장비를 교체하는 시장을 ‘레트로 핏(Retro-Fit)’시장이라고 하는데, 이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성 대표는 “유명 요트 건조업체의 밸류체인 일부로 들어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어려운 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공략이 가능한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전략을 택했다. 레트로 핏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향후 위성통신 시장으로 진출할 때에도 핵심 전략으로 쓰였다”고 말했다.

DBR mini boxII: 인텔리안 기술 개발 과정

인텔리안은 연구개발(R&D)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하는 회사다.매해 전체 매출의 약 10% 규모를 R&D 프로젝트에 투입한다. 연구 인력은 135명으로 전체 인력(400명)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그 결과 새로운 시장 진입을 위한 우수한 제품을 선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낼 수 있었다.




레이마린과의 파트너십… 잘 끼운 첫 단추

결국 관건은 인텔리안의 안테나를 사 줄 좋은 파트너 회사를 구하는 것. 하지만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터줏대감 회사들의 높은 콧대는 예상대로였다. 이미 TVRO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메이저 플레이어인 KVH가 있는데 어떻게 이 시장을 뚫을 수 있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성 대표와 창업 멤버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아이디어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만약에 안테나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유력 해양 전자장비 회사에 접근해 시장을 함께 넓히자고 제안한다면 어떨까.

이때 마이애미 요트 전시회에서 만난 레이마린(Raymarine)의 사업개발 담당자가 이들의 손을 잡아줬다. 레이마린은 1923년 설립한 미국 군수업체인 레이테온(Raytheon)에서 해양 관련 군수장비를 만들던 사업부가 2001년 독립한 회사다. 기술력과 제조 능력은 막강해 레저 선박 해양 장비 시장에서는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이 정체되고 경쟁사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던 터였다. 그중 하나가 TVRO 안테나였다. 하지만 KVH라는 회사가 이미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독식하고 있어 시장 진출을 망설이고 있었다.

인텔리안은 이 점을 오히려 설득 포인트로 파고들었다. 레이마린 관계자들을 만나 ‘요트와 같은 레저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마케팅 효과는 요트에서 유일하게 브랜드가 노출되는 안테나 제품이다’는 점을 들어 설득했다. 또한 인텔리안 외에 안테나 개발 엔지니어를 보유한 기업을 찾기 어렵단 점도 인텔리안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해당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은 대부분 이미 자사 브랜드로 안테나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강 상무는 “당시만 해도 소비자들이 TVRO 안테나를 KVH로 부를 때였다. 마치 휴지를 ‘크리넥스’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레이마린에 결국 안테나 시장을 공략해야 간접적인 브랜드 마케팅의 기회가 생겨, 이에 대한 가치가 크다는 점을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략이 먹히면서 레이마린은 인텔리안의 첫 파트너가 됐다. 인텔리안은 결코 ‘을’의 자세로 이들을 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안테나 기술력과 전문성을 믿고 동등한 파트너십을 맺기 위한 조건을 당당히 내세웠다. 인텔리안의 안테나를 실제 제품으로 내놓기까지 연구개발을 함께 진행하고, 필요한 기술이나 노하우는 레이마린에서 적극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 판매권은 레이마린이 독점하되 매해 인텔리안으로부터 구매해야 하는 물량도 약속받았다. 아직 시장이 작은 아시아 쪽은 인텔리안이 담당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두 회사의 협업은 시작됐다. 계약 성사 이후 레이마린 해양 장비 전문가들이 한국으로 건너왔다. 차 전무와 함께 제품을 개발했던 엄광식 전무는 자신 있게 이들 앞에 안테나를 내놨다. 그런데 상대측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잠시 살피더니 이대론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해양 장비로서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해양 장비는 지상용 장비보다 만들기가 훨씬 까다롭다. 거친 파도는 물론 강한 햇빛, 바닷물의 염분을 모두 견뎌낼 만큼의 내구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텔리안 개발자들이 만든 제품은 지상용 안테나 요건을 토대로 제작했기에 안테나 자체 기능에 충실했을 뿐 해상 환경에서 필요한 요소를 놓치고 있었다. 엄 전무는 “우리가 개발한 안테나를 가지고 진동에 견디는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안테나의 쇳덩이가 엿가락처럼 휘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고 말했다.

레이마린 측은 제품을 출시하려면 자사 제품 통과 기준의 내구성을 갖춰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제품에 난 미세한 흠집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품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레이마린 측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회사 내 축적된 노하우도 망설임 없이 제공했다.

2005년 8월, 드디어 인텔리안의 제품을 최종 테스트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엄 전무는 홀로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지는 햄프셔의 한 항구. 그곳엔 이미 레이마린 측 사람들이 요트를 정박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요트의 오른쪽에는 경쟁사인 KVH의 안테나가, 왼쪽에는 레이마린 상표가 달린 인텔리안의 안테나가 설치돼 있었다. 각 안테나를 요트 내부에 설치한 TV 2대와 연결했다. 어느 쪽 신호가 더 안정적으로 오래가는지 체크하는 게 이번 테스트의 주목적이었다.

엄 전무와 레이마린 관계자를 태운 배가 슬슬 바다를 향해 움직였다. 대서양의 바다는 거칠었다. 출렁이는 파도를 견딘 지 수 시간. 한쪽 TV 수신호가 끊겼다. 모두가 긴장하며 어느 회사 제품인지 확인했다. KVH 제품이었다. 고통스러운 뱃멀미가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인텔리안은 이 테스트를 끝으로 드디어 시중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두 회사의 협업은 성공적이었다. 다행히 출시하자마자 시장 내 반응이 좋았다.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텔리안은 2006년 수출 100만 달러를 달성하더니 이듬해 그의 5배인 500만 달러를 넘겼다.

엄 전무는 “레이마린의 테스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때마다 좌절감도 들었다.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기존 경쟁사의 제품보다 월등히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야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이때 레이마린으로부터 배운 해양 장비 관련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고, 이는 우리 회사 성장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인텔리안’ 브랜드로 글로벌 전략 본격화

인텔리안은 회사 설립 첫날부터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시장을 확보하고, 글로벌 인재들이 함께 일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꿈꿨다. 인텔리안은 브랜드 및 유통채널 구축, 해외 인력 및 인프라 확보 등 10여 년간 차근차근 노력한 끝에 한국의 중소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건 2007년 9월이었다. 미국 어바인시에 건물 주인이 기부한 책상 달랑 하나, 전화기 한 대가 전부인 초라한 사무실에 미국 현지 회사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주변에선 비판적인 시선을 보냈다. “웬만큼 성장한 중소기업도 자력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이제 겨우 자리 잡은 회시가 어떻게 성공하겠냐”는 핀잔도 들었다.

성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글로벌화는 곧 회사의 존립과도 같은 것이었다. 레이마린이라는 업체에만 의존하게 되면 회사의 명운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컸다.현재 레저용 선박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선박 시장 진출 가능성이 제한된 점도 마음에 걸렸다. 이러다 연 매출 100억∼150억 원에 그치는 중소기업에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고객과의 접점이 없다는 점도 못내 아쉬웠다. 고객이 인텔리안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품 개선 사항은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텔리안만의 브랜드 구축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결국 현재의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 첫 작업은 레이마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2009년 레이마린 측이 아시아 시장에도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독점 계약을 풀자고 제안한 것이다. 여러 신생 업체의 등장으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 영역을 확장하려고 한 것이었다.

성 대표는 속으로 ‘기회는 이때다’는 생각을 했다. 레이마린의 제안을 받아들이되 인텔리안의 독자 브랜드로 안테나를 팔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제껏 맺었던 물량 개런티 계약 조건도 없애겠다고 제안했다. 안정적인 매출을 포기한다는 이유로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레이마린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두 회사는 파트너사이자 경쟁사로 관계 설정이 바뀌게 됐다. 대신 인텔리안은 요트 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레이마린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상선 시장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인텔리안만의 브랜드를 알리고 유통 채널을 형성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회사를 알리기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국제 보트 쇼에 참가하는 것. 매해 10월 말 미국 플로리다에서 나흘간 열리는 ‘Fort Lauderdale International Boat Show’에 부스를 3년간 6억 원을 주고 임대했다. 고객들에게 선물할 프로모션용 가방 5만 개를 만들고, 도시 곳곳에 광고 포스터도 올렸다.




그뿐만 아니다. 유통구조를 면밀히 분석해 자사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상선에 들어가는 해양 전자장비 유통 구조 역시 자동차 판매와 유사하다. 제조사들이 자동차를 만들어 지역 총판에 넘기면 총판에 소속된 딜러들이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인텔리안은 별도의 총판과 계약을 하는 대신 스스로 총판이 돼서 직접 딜러들을 만나 이들을 공략했다. 수개월 동안 딜러들을 만나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시간과 돈을 집중했다. 미국 전역에 250여 지점에 달하는 딜러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텔리안 제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제품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대신 딜러들에게 경쟁사보다 더 높은 마진율을 약속했다.

딜러들이 제품 설치와 간단한 수리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도 도맡았다. 경쟁사가 제품을 공급하고 끝내는 것과 달리 인텔리안 직원들은 딜러들을 직접 만나 제품을 상세히 설명하고, 제품에 문제가 있을 만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교육했다. 제품에 대한 지식과 관리 능력이 늘어나니 딜러들도 차츰 인텔리안 제품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텔리안 제품을 많이 판매하면 고객도 만족하고, 딜러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인텔리안의 매출은 확대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이 왔다. 인텔리안이 레이마린의 안테나를 만들었다는 것이 주요 ‘셀링 포인트’가 됐다. 이미 요트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이기에 딜러들이 고객을 설득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KVH가 시장을 독점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불만을 갖던 딜러들도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자발적으로 인텔리안의 제품을 소개하고 적극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고객들도 경쟁사보다 AS가 좋고, 어디서든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고객 응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상선 시장 진출 3년 만에 시장점유율 50%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강 상무는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파트너들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고, 이들에게 제품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시키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무작정 전화도 걸고, 찾아가보기도 하면서 관계를 하나하나 구축해나갔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을 위한 조직 인프라 구축

인텔리안이 글로벌 시장 공략 초기부터 가장 공들였던 작업이 있다. 제대로 된 글로벌 조직을 갖추는 것이다. 꼭 필요한 인재들을 영입해 서로가 어디에 있든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며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의 토대를 만들고 싶었다.

선박 시장의 특성상 철저한 현지화와 관련 전문 인력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배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의 항구를 기점으로 돌아다닌다. 배가 어디에 정박해 있든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현지 사무소와 전문 인력을 상시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안테나 기술과 선박 지식을 겸비한 인력풀이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국적보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했다.

막상 부딪혀 보니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외국인에 대한 차별, 현지 기업들의 텃세, 현지 비즈니스 규제로 인한 혼란 등 다양한 문제가 상존했다. 성 대표는 단기 결과에 급급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봤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점차 글로벌 회사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첫째, 완벽하진 않지만 현지에서 독립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구성요소를 초기부터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케팅, 영업 인력, 회계 등 비즈니스에 필요한 인력을 현지에서 확보해 나갔다. 제품 수리 및 관리 서비스를 위한 엔지니어도 찾아 나섰다. 처음엔 탐탁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 회사 인력이 자주 교체됐다. 이름도 없고 업력도 짧은 회사에 능력 있는 현지 인재가 찾아올 리 만무했다. 마음에 맞는 한국 인력을 고용해 현지 인력을 관리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묵묵히 이 과정을 버텨냈다.

일부 직원은 회사와 함께 성장했고, 회사가 성장한 다음엔 좋은 현지 인력이 스스로 인텔리안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현지 규제 대응, 회계 처리, 인력 운용 등 현지 비즈니스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완전한 현지 회사로 발전해 나갔다. 이 노하우를 토대로 네덜란드, 영국, 싱가포르, 중국 등지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비즈니스를 확대해 나갔다. 현재 7개국 14개 도시에서 인텔리안 법인과 사무소의 전문가들이 고객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어느 국적이든 상관없이 가장 뛰어나고 전문성 높은 사람이 업무 총괄을 맡고 진행하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인마샛, 오빗 등 글로벌 위성통신 서비스 회사나 해양 장비 회사의 전문가들도 인텔리안의 가능성을 믿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인텔리안의 인력 중 25%(약 100여 명)가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둘째, 정확하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IT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인텔리안은 창립 초기부터 각 지역의 법인이나 사무소 간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면 보고나 회의에 집착하지 않고, 직원 모두가 편하고 빠르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IT 도구와 시스템을 갖췄다. 새롭게 포착할 수 있는 기회, 내부 프로세스상의 개선사항 등 어젠다를 중심으로 의사소통하는 조직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단축 번호만 누르면 전 세계 모든 사무실의 직원과 연락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처음엔 한국 본사 직원들이 영어로 대화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것에 압박감도 있었고, 서로 서툰 영어로 대화하다 보니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한 해 두 해가 지나가니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성 대표는 “회사 조직 규모가 작을 때부터 ERP, SAP, 세일즈포스닷컴 등 글로벌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IT 시스템 도입에 많은 투자를 했다. 업무 특성상 24시간 전 세계에서 업무가 돌아가고, 서로 간 효율적인 정보 교환을 해야 하는 비즈니스에 최적화한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다”고 말했다.


공고한 ‘카르텔’의 빈틈을 공략해 얻은 기회

2009년, 어느 정도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무렵이었다. 인텔리안은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TV 수신용 안테나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향후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그러던 중 해상용 위성통신 서비스가 눈에 들어왔다. 선박의 통신을 책임지는 핵심 전자 장비인 안테나는 TV 수신 안테나보다 부가가치도 높고 시장 규모도 훨씬 컸다. 회사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임이 분명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위성통신 안테나는 실제 선주를 대상으로 판매하지 않는다. 위성통신 사업자가 자사가 채택한 안테나 제조회사의 제품을 통신 서비스와 함께 판매한다. 기업 간 거래(B2B) 비즈니스가 주를 이루는 것이다. 이미 쟁쟁한 통신 안테나 제조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장 진입은 그만큼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또한 안테나를 구매하는 위성통신 사업자 입장에서도 너무 다양한 회사의 안테나를 동시에 가져오면 제품 부품, 서비스 인력, 유지 보수 비용 등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많아야
2∼3개 파트너사 정도로 계약을 맺고 서로 견제하는 구조가 공고하게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인텔리안은 여기서 ‘역발상’ 전략을 생각해냈다. 잠재 고객을 만나 독점 관계가 오래될수록 제품이나 서비스에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들은 수십 년 함께 해오면서 서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경쟁사가 없다 보니 위성통신 사업자의 가격 협상력도 현저히 낮아졌고, 제품 개선사항도 빠르게 반영되지 않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새로운 물이 흘러야 서비스와 제품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위성통신 사업자를 설득해보기로 했다.

제품 개발이 우선이었다. 사실 위성통신 안테나는 TVRO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안테나였다. 들어가는 부품만 300∼400여 개(TVRO 부품의 3∼4배)가 넘는다. 송수신이 서로 방해받지 않고 깨끗하게 전달될 수 있는 기술력도 확보해야 했다. 인텔리안은 연구개발 핵심 인력 2명을 독립된 연구 공간으로 파견해 위성통신 안테나 개발에만 몰두하게 했다. 당시 연구 인력이 10명에 불과하던 시절, 회사로서는 파격적인 투자를 한 것이다. 약 1년의 우여곡절 끝에 Ku밴드 위성통신 안테나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첫 타깃은 Ku밴드1 대역의 위성통신 사업을 하는 노르웨이의 마링크였다. 인텔리안은 자사 제품의 성능과 TVRO 시장에서의 업력을 내세워 고객사를 설득했다. 마침 마링크도 기존 파트너사인 시텔(Seatel)을 견제할 수 있는 두 번째 파트너사를 물색하고 있었다. 다른 기존 업체들도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였다. 까다롭고 꼼꼼하기로 유명한 마링크는 인텔리안에 가혹한 계약조건을 내걸었다. 파도가 수 미터에 달하는 북극해에서 항해하는 배에서 1년 동안 안테나가 버텨내야 한다는 것. 고객사를 확보해 업계 레퍼런스를 쌓는 게 급선무였던 인텔리안은 이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테스트를 통과해 마링크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이 계약 체결이 뜻밖의 효과로 이어졌다. Ku밴드의 다른 위성통신 사업자들이 인텔리안과 계약을 맺은 것이다. 마링크와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현재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시텔에 대한 견제였다. 부품 개조, 수리, 제품 개발 등 자사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는 현재 파트너십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인텔리안은 위성통신 안테나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넓혀갈 수 있었다.

두 번째 고객사인 인마샛과의 파트너십은 조금 더 극적으로 이뤄졌다.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 1위 위성통신 사업자인 인마샛은 원래 L밴드 대역의 위성통신 사업을 하고 있었다. L밴드는 속도가 느리지만 넓은 지역에서 안정적인 통신 서비스다. 그런데 더 빠른 속도의 통신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었다. 인마샛은 고주파 위성을 쏘아 올려 빠른 속도를 지원하는 Ka밴드 대역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서비스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Ku밴드 대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위성을 임대해 경쟁사들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인마샛은 자사의 Ku밴드와 송수신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큰 비용 부담 없이 Ka밴드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는 안테나 개발이 필요했다. 이때만 해도 인마샛과 사업을 할 파트너는 정해져 있었다. 자사의 L밴드 안테나를 만들어온 콥햄, 시텔, 세일러 3사였다. 여러 파트너를 두지 않는 업계 관행이 있는 만큼 추가 사업자를 들일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콥햄과 시텔이 합병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인텔리안은 인마샛에 수 개월간 러브콜을 보낸 끝에 간신히 빈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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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인마샛과의 계약 체결이 단순한 ‘우연’과 ‘운’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인텔리안의 전략적인 판단과 실행력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성 대표와 인텔리안 연구진은 인마샛의 Ka밴드 프로젝트 발표와 동시에 제품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계약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우선 제품부터 확보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앞으로 Ka밴드 사업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마샛과 계약을 맺지 못하더라도 다른 경쟁사들도 Ka밴드 통신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었고, 곧 시장에 도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빠르게 제품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주효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인텔리안은 인마샛과 계약한 다른 경쟁사들보다 6개월이나 더 빠르게 Ku-Ka 변환 안테나를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인텔리안은 인마샛의 주요 협력사로 신분 상승하게 됐다.

이는 인텔리안에도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변환 가능한 안테나가 시중에 처음 풀리자 고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무엇보다 현행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같은 안테나로 추후에 Ka 안테나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제품 하나로 인텔리안은 2015년 회사 창업 11년 만에 위성통신 안테나 시장을 선도하는 1등 기업으로 거듭났다.

성 대표는 “인마샛 프로젝트의 경우 시장 기회가 크다고 판단했고, 이를 잡기 위해선 앞뒤 계산하지 않고 제품부터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우리 노력이 고객을 감동시켰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끈끈한 관계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계약 이후 회사가 급성장해 2016년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텔리안은 이제 시장 1등 자리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2019년 다(多)주파수에서 송수신이 가능한 초대형 멀티밴드 안테나 v240MT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해상 업계의 하이엔드 시장인 크루즈 시장을 선도하게 됐다. 또한 원웹(OneWeb)이라는 저궤도 위성통신 프로젝트에 참여해 VSAT 산업 내에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단계별로 실행해 나가고 있다. (DBR Mini Box Ⅲ ‘원웹 프로젝트는…’ 참고.)


DBR mini box III: 원웹(OneWeb) 프로젝트는…


VSAT 안테나 기술력을 인정받은 인텔리안은 이제 그 비즈니스 기회를 육지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구축 프로젝트인 원웹(OneWeb)에 통신 안테나 독점 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소프트뱅크, 퀄컴, 에어버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총투자 금액만 3조94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저궤도 위성통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에(고도 160∼2000㎞)i 위성을 띄워 지상의 안테나와 송수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궤도보다 위성당 지상 통신 커버리지가 작기 때문에 여러 대를 띄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지상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의 통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그 속도는 고궤도 위성과 비교해 약 20배 정도 빠르다. 기술 발전에 따라 위성이 소형화됐고, 위성 발사 비용도 줄어들어 사업성이 어느 정도 현실화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원웹 프로젝트는 통신 인프라가 열악하거나 인터넷 사각지대에 있는 지역에서도 초고속 통신 서비스가 가능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시작됐다. 2018년 기준 글로벌 인터넷 보급률이 51.2%에 불과하며, 저개발국가의 경우 보급률은 45.3%로 떨어진다. 여전히 5명 중 1명은 통신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대륙이 넓어 지형적으로 통신 인프라 구축이 어렵거나 저개발국가처럼 비용 문제로 통신 인프라 투자가 어려운 경우 저궤도위성과 안테나를 이용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웹은 지난 7월 영상 스트리밍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통신 지연율 40㎳ 미만, 통신 속도 400bps를 기록해 비교적 안정적인 통신 서비스 품질을 달성했다.

원웹은 2020년 통신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인 북극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때 첫 서비스 대상은 북극을 오가는 선박이 될 것이며, 이 해상 통신 서비스를 위한 안테나 제작을 인텔리안이 도맡는다. 저궤도 위성통신은 향후 비행기와 같이 인터넷 보급률이 아직 저조한 항공 시장까지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성 대표는 “통신 인프라 확대는 거부할 수 없는 시장의 흐름이다.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가 성공한다면 인텔리안은 항공 산업, 군수 산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저개발 국가 통신 인프라 사업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ii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DBR minibox IV: 성공 요인 및 시사점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성공 공식

볼보, 도요타, 삼성 등의 공통점은 창업 후 본국에서 충분한 규모의 경제와 성공을 이룬 후 점차적으로 해외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해 세계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들이라는 데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해외 시장으로 성공의 무대를 차례대로 확대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등장한 아마존, 이베이, 페이스북 등의 성장 과정은 이들과 크게 다르다. 이들은 소위 ‘태생적 글로벌(Born Global) 기업’으로서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거나 아니면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창업을 시작해 짧은 시간 내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해외 매출은 전체 매출에서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100%에 이른다. 이들은 태생적 해외 신시장 확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그리고 경영 관리 방식의 변화라는 기회를 적극 활용해 성장을 더욱 가속화했다.

태생적 글로벌 기업이란 축적된 내재적 역량과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 진입 초기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우선적으로 공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중소기업을 지칭한다. 관련 연구를 종합해 보면 이들은 대체로 타깃시장을 세분화해 자신만의 브랜드로 차별화된 가격정책, 홍보전략, 현지화 전략을 공격적으로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화된 그들만의 입지를 통해 초기부터 빠른 침투(Speed-to-Market)를 가능케 한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 태생적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고 일부는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하면서 자연히 이들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이 기업들이 기존의 기업들과 어떻게 다르며 조기에 진출한 해외 시장에서 어떻게 성공적으로 정착했는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신생 기업(Start-up)의 국제화 전략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말 스웨덴 웁살라(Uppsala)대 연구진이 제시한, 이른바 웁살라 국제화 모델(Uppsala International Model)의 핵심을 이뤘다. 이 모델은 문화적 차이가 크고 경험적 기반이 약한 해외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신시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우선적으로 간접 수출을 통해 인접 시장에 진출하면서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이후 경험을 축적하고 점진적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을 제시한다.

진출 수위도 간접적, 우회적 방식에서 직접적, 공격적 방식으로 전환해 순차적, 단계적, 점증적 4단계의 해외 시장 진출과 공략법을 제시했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점진적 진출을 통해 시장 지식과 운영 노하우를 다음 시장에도 확장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지로 이 모델은 스웨덴 및 북유럽의 중소 제조기업들을 오랜 기간 실증적으로 관찰한 결과 타당성이 입증돼 많은 학계와 실무자들에게 인용되고 전파됐다.

그러나 이 모델이 지닌 한계점 또한 적지 않았다. 해외 시장 진출 방식의 다양성, 의사결정자에 대한 고려, 기술 발달, 서비스업에 적용 여부, 제도 변화 등 요소들이 미처 고려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딱히 진출할 만한 인접 시장이 희박하고 경험도 매우 열악한 신흥국 기업들에 이 모델의 설명력이 떨어졌다. 예를 들면, 인도 IT 기업의 경우 신생 기업일수록 창업 시작부터 적극적으로 서구 시장에 진출하려 했던 이유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했다.


글로벌 리더십과 네트워크
2000년 이후 웁살라 모델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개척하는 신생 기업들이 크게 증가했다. 이들은 자국 시장에서의 뚜렷한 경쟁 우위나 해외 경험도 갖지 못한 채 문화적, 제도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해외 시장 어느 곳이든 활발히 진출했다. 심지어 산업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해외 진출을 서둘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국가 간 통합 가속화, 세계 수요 시장의 동질화 등 산업 구조적인 요소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일부 학자는 태생적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발견되는 기업가적 특징(예를 들면, 경영자적 특성, 경험, 의지 등)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생적 글로벌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성과가 나은지는 연구마다 차이를 보이나 대체로 긍정적인 결론에 이른다. 핵심은 과연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지 핵심 성공 요소를 도출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텔리안 사례는 이를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성공적인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전제 조건으로 대략 4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태생적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발견된 공통 요소로서 창업자의 글로벌 마인드(Global Mind)를 꼽을 수 있다. 글로벌 마인드란 국경을 넘어 매우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뜻한다. 글로벌 및 지역 차원의 다양한 문화적, 전략적 상황에서도 분산된 운영을 관리할 수 있으며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해외 시장에서 사업적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개인적인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사업 초기부터 매우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한다. 또한 리스크를 기꺼이 감내하려는 의지도 남다르다. 위험감수(Risk-Taking)란 결과가 불확실하거나 이미 입증된 방법이 아닐지라도 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려는 욕구를 지칭한다. 이런 위험 감수와 진취성은 해외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해외 활동량을 늘리는 동기부여 요소로 작용한다.

성상엽 대표는 태생적 글로벌 기업에서 묘사하고 있는 리더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상 장비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성 대표는 이 분야에 역시나 문외한이었던 안테나 연구진 4명과 의기투합해 창업 첫날부터 글로벌 기업이 되고자 포부를 다졌다. 국내에 전혀 생소한 해상 장비에 시장성을 감지한 그의 식견이나 그의 전문 분야였던 안테나 사업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해외 마켓을 타깃으로 공략해 보겠다는 그의 의지는 학계에서 발표되는 성공적인 태생적 글로벌 기업 리더의 창업 초기 에피소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글로벌 마인드를 묘사함에 있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는 크게 간과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은 국내 시장에 비해 수십 배의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따르므로 이를 감내하려는 의지 역시 글로벌 마인드의 중요한 측면이다. 성 대표와 최고경영진은 자신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며 경험도 없는 제조 기반의 생소한 산업에 시장의 성장 가능성만 믿고 과감히 도전한 것 또한 태생적 글로벌 기업 창업자의 전형적 모습이다. 순간순간 직면하는 도전과제를 문제해결식으로 타개해 나가는 것 또한 이에 부합한다.

둘째, 태생적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전략적 선택은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요구되는 기술집약적이며 세분화된 산업 환경에서 더 효과적이다. 기술집약적 산업(예를 들면, IT, Network, Communication systems 등) 기술생명 주기가 매우 짧아지고 있어 기술역량 강화와 함께 시장 확보에 더 발 빠른 움직임이 요구된다. 동시에 자신의 기술을 특정 시장에 맞춘 커스터마이제이션과 지식에 기반한 가치창출모델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면서 기술생명주기를 연장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빠르고 공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이 이에 따라 당연히 요구된다.

인텔리안이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던 것은 어찌 보면 이 해상용 안테나 산업 구조상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대상으로 한 기술집약적 첨단 산업군의 경우 국내 시장의 역량을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고전적인 방식은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 시장이 특정 지역에 한정돼 있지 않고 전 세계 지역에 걸쳐 흩어져 있으며 성숙되지도 않아 직접 현장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시장 상황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특정 시장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 이들에게 특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사업적으로 승산이 없다. 기술집약적인 산업 시장은 날이 갈수록 지역적으로 세분화되고 특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 시장과 근접한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인텔리안이 집중했던 해상용 안테나 시장이 비교적 잘 형성돼 있던 미국 시장에 진출해 현지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던 것은 해당 산업구조를 감안했을 때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셋째, 성공적인 태생적 글로벌 기업들은 대체로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적 제휴나 합작투자 등 현지 기업과 연계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인다. 연구자료들에 따르면 태생적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기업가들의 네트워킹 역량이 꼽힌다. 자신의 부족한 인적자원, 재무자원, 공급 역량 등을 채워줄 가치사슬상 핵심 파트너와 과감히 연계하고 형성된 관계망을 확대해나가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글로벌 네트워킹은 특정 틈새시장에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기술벤처기업에 사업 연장의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다.

최근 북유럽 및 영국의 태생적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한 연구에 따르면 창업 초기부터 산업생태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디에 포지셔닝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누구와 협력과 연계해야 하는가가 성공의 최우선 요건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일부 학자는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 성공 여부는 해외 경험과 지식 확대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네트워크 구축에 있다고 주장한다. 소규모의 벤처기업이 직면하게 될 많은 해외 시장에서의 어려움(Liailities of foreignness)을 해결할 방법은 많지 않다. 관계 특화된 사회적 자본(Relation-specific social capital)은 이런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태생적 글로벌 기업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은 후발 진출 기업에 비해 관계 특화된 사회적 자본을 좀 더 일찍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 태생적 글로벌 기업이 최우선에 두었던 전략적 가치는 빠른 해외 시장 진출보다 현지 경쟁력 있는 기업과의 긴밀한 관계 형성, 유지, 발전에 있다. 이 때문에 리더 역시 다양한 공식적, 비공식적 활동을 확대할 수 있는 탁월한 역량을 보여야 한다. 풍부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더 많은 기회를 포착하고 운영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확보하게 한다. 협력, 제휴, 네트워킹의 토대가 되는 기업 간 신뢰 구축 노력 또한 당연히 수반돼야 한다.

인텔리안이 미국에 첫 진출한 후 취한 행보는 여느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소한 사업을 직접 익히고 시장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관련 해외박람회에 참석하며 기존 경쟁 업체, 유통구조, 수요층, 진출 시 필요한 사항을 섭렵했다. 이를 통해 진입 가능한 틈새시장이 어디에 존재하며 어떤 방식으로 진출할지를 빠르게 파악했다. 보수적인 선박 시장에 신규 진입하기보다는 기존 업체의 2차 부품사로서 레이마린이라는 기성 업체와 협력해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인텔리안의 묘수가 아닐 수 없다. 인텔리안은 레이마린의 까다로운 기술적 요구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고 양사가 보유한 기술적 노하우도 아낌없이 공유했다. 양사의 신뢰는 추후 상선을 타깃으로 한 전자장비시장에 인텔리안이 독자 브랜드를 구축해 도약하는 데도 큰 발판이 됐다. 레이마린과의 좋은 협업 관계가 많은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야기했다.




넷째, 태생적 글로벌 기업은 해외 현지 시장에서 빠른 정착을 통해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내재화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 해외 진출 기업이 겪는 어려움 대부분은 현지화와 본사-해외 지사 간 지식, 경험 공유 과정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원활한 현지화를 위해 현지 국(Polycentric) 중심의 경영을 통해 현지화를 추진해야 한다. 즉, 본국 또는 본사 중심의 인력이 아닌 현지인을 선발하고 경영 기능 전반의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해 현지 적응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지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직접 고용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런 인사 체계는 본사와 현지 지사 간 소통과 업무 공유를 원활히 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는 단점이 있다. 학계에서는 이런 상황일수록 해외 각지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유지되고, 전달돼 조직 역량이 강화되도록 기업을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으로써 변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사와 해외 지사 간 융통적 조직구조와 원활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본사와 해외 지사 간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안이자 현지인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부여해 몰입도를 높이는 전략이기도 하다.

인텔리안은 과감히 현지인을 고용하고 이들이 전문성을 쌓고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현지 인력 중심의 현지화 전략은 해외 7개국 14개 도시에 위치한 현지 사무소를 빠르게 정착시켰다. 본사와 현지 사무소 간의 원활한 소통과 지식 공유는 첨단 기업답게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첨단 IT 인프라를 통해 해결했다. 초국가전략(Transnational Strategy)의 핵심인 국적에 관계없이 전문성이 있는 인력에게 업무 총괄을 맡기는 문화가 전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최적의 전문 인력이 업무를 총괄해 24시간 수시로 소통하는 방식이 자연스레 기업 문화로 정착되면서 국적,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누구나 편하고 빠르게 소통하고 스스로 문제 해결할 수 있는 학습조직의 모습을 확립했다. 태생적 글로벌 기업이 제대로 해외 시장에서 정착할 수 있는 든든한 하부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마치며
국내 시장이 몇 해째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많은 성공 사례는 이들 기업에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창업과 함께 추진한 해외 사업을 어떻게 잘 정착시켜 나갔는지에 대한 사례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인텔리안의 사례는 발 빠른 국제화 전략에 필요한 조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핵심 요소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학계와 실무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필자소개 류주한 한양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jhryoo@hanyang.ac.kr
류주한 교수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 유치, 해외직접투자실무 및 IR, 정책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국내외 학술저널 등에 기술 벤처, 해외 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PMI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8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2020년 11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