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막걸리 인식 바꾼 ‘지평주조’의 성장 전략

동네에서 전국구로
막걸리의 지평을 넓히다

290호 (2020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도 수십 년 동안 동네 양조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지평주조가 최근 10년 사이 메이저 막걸리 업체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외부에서는 지평주조의 약진을 ‘마케팅의 성공’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정작 내부의 평가는 다르다. 김기환 대표이사는 지평주조의 성공을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지평주조는 ‘맛의 표준화’를 목표로 소규모 양조장으로는 드물게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고 좋은 맛을 내는 미생물을 연구해 지평막걸리의 맛을 업그레이드한다. 또 영업에서도 대리점과의 상생 등 기본 원칙들을 지켜나간다. 이 과정에서 지평막걸리만의 깔끔한 맛에 반한 젊은 소비자들이 지평막걸리를 나서서 SNS에 홍보하고 대리점들과의 관계도 좋아지면서 업계 최초로 전국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평주조 측은 이는 결과일 뿐 비결은 ‘원칙을 지키는 것’에 있다고 강조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미라(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허름한 뒷골목 선술집에서 싼 맛에 먹는 중장년층을 위한 술.’

우리가 막걸리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이런 막걸리가 와인이나 맥주를 누르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시기가 있었다. 2010년을 전후해 막걸리가 일본에서 ‘맛코리(マッコリ)’란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사케(약 14∼16%)보다 낮은 알코올 도수(약 5∼6%)로 술이 약한 사람도 즐길 수 있고 피부와 건강에 좋은 발효 식품이라는 인식이 일본에 널리 퍼진 덕분이다. 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맥주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는 바람에 일본 맥주 공급에 차질이 생겼는데 그 반사이익을 막걸리가 얻기도 했다. 여기에 당시 일본 내 불었던 한류 열풍도 일본 내 막걸리 인기에 한몫했다. 덕분에 막걸리 수출량이 큰 폭으로 늘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막걸리 수출 물량은 2009년 7405t에서 2011년 4만3082t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이 일본발(發) 막걸리 훈풍은 현해탄을 건너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막걸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주점이 홍대·강남 등 번화가에 줄줄이 생겨났다. 막걸리 인기에 출고량도 크게 늘었다. 막걸리 출고량은 2009년 17만6000㎘에서 2010년 26만1000㎘로 1년 새 47.8%나 증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막걸리의 봄은 짧았다. 인기는 금세 사그라들었고 막걸리 시장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2011년 5079억 원(출고액 기준)이던 막걸리 시장 규모는 2017년 4469억 원으로 감소했다. 막걸리 수출액도 2011년 5273만 달러(약 620억 원)로 고점을 찍은 뒤 2018년 1241만 달러(약 146억 원)로 빠르게 감소했다. 한일 관계 냉각화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영세한 국내 막걸리 양조장들의 전략 부재와 마케팅 역량 부족이 큰 원인 이었다. 특히 막걸리의 품질과 맛에 집중해 고급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막걸리 열풍에 편승하고자 가격 경쟁에만 매몰되면서 질 낮은 재료를 사용한 싼 막걸리들이 시장에 많이 나왔고 이는 소비자들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막걸리 시장은 반짝 인기 후 장기 침체기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막걸리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모든 막걸리 제조업체가 다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 회사가 있다. 지평주조가 그 주인공이다. 지평주조는 막걸리 붐이 한창이던 2010년 당시 매출 2억 원을 올리는 동네 양조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 김기환 현 대표이사가 회사를 맡은 후 불과 9년 만에 매출액 230억 원(2019년 추정 매출액)을 올리는 막걸리 업계 강자 중 한 곳으로 성장했다. 특히 이 회사의 성장세에서 놀라운 점은 기존 막걸리의 주요 고객인 50대 이상 장년층이 아닌 2030 젊은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기존 막걸리 업계 강자인 서울탁주나 부산생탁도 못한 전국 유통망을 경기도 작은 마을의 양조장이 구축했다는 점도 이 회사가 최근 주류 업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지평주조가 짧은 기간에 막걸리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떠 오른 비결을 DBR이 분석했다.



연 매출 2억 원에 직원 3명인 동네 양조장을 물려받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에 위치한 지평주조 양조장은 1925년에 생겼으며, 현재 막걸리를 생산 및 유통하는 양조장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특히 이 양조장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사령부로 쓰이기도 했고 치열했던 지평리전투에서도 유일하게 포탄의 피해를 입지 않고 보존된 건물이다. 그래서 2014년에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역사적 가치만큼이나 스토리도 있는 양조장이다.

하지만 2010년 전까진 지평주조는 그저 그런 지역 양조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역사적 가치와 스토리를 품고 있었고 맛이 좋은 막걸리를 만들고 있었지만 김동교 전 대표(김기환 현 대표의 아버지)는 막걸리 사업을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김동교 전 대표는 막걸리 사업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가 일어난 건 김기환 대표가 지평주조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면서부터다. 2010년 김기환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을 당시 지평주조의 연 매출은 2억 원, 직원 수는 3명에 불과했다.



사실 김동교 전 대표는 아들에게 막걸리 사업이 아닌 미곡종합처리장(RPC) 사업을 맡기고 싶었다. 사업 규모나 수익 면에서 월등했기 때문. 그러나 김기환 대표는 무슨 이유인지 꼭 막걸리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양조장 사업에 욕심을 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양조장 막걸리가 맛 하나만큼은 좋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2009년 전후로 막걸리 붐이 불면서 전국에 시음 행사가 많이 열렸고 아버지도 우리 제품을 들고 참가하셨는데 가는 곳마다 맛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젊은 층의 호응이 좋았다. 그래서 젊은 층을 타깃으로 막걸리를 팔면 되겠다 싶었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젊은 소비자들을 공략하겠다는 아들의 뜻에 아버지는 “망해도 좋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라며 양조장 운영을 맡긴다. 하지만 회사를 물려받았을 당시 김 대표의 나이는 29세. 사회생활 경험이라고는 서울에서 홍보대행사에 잠깐 다닌 것이 전부였다. 막걸리는 먹을 줄만 알았지 만드는 법도, 파는 법도 잘 몰랐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막걸리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김 대표는 일단 막걸리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전문 교육기관에서 양조 교육을 받았다. 또 경험 많은 양조장 직원들과 함께 새벽에는 직접 밀 입국(粒麴, 곰팡이 배양) 온도를 맞춰가며 밤잠을 설쳤다. 이즈음 김 대표는 결혼을 하게 됐는데 신혼살림도 양조장 한편에 차렸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막걸리 배우기에 임했다.

동시에 김 대표는 자신의 홍보대행사 경험을 살려 먼저 양조장 일부를 개조해 지평주조 홍보관을 만들었다. 양평에 놀러 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양조장으로 끌어오려는 시도였다. 양조장 자체가 문화유산인 데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지휘소로 쓰인 역사가 있어 역사적인 가치와 스토리를 막걸리에 입혀 매력적인 관광명소를 만들고자 했다. 또 종전 60주년을 기념한 특별 막걸리 ‘자유를 위하여’도 출시했다. 막걸리 업계에선 신선한 시도라고 받아들여졌고 실제 양평에 놀러 왔다 지평주조 홍보관을 들러 막걸리를 사가는 외지 손님들이 생겼다. 하지만 김 대표의 초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 전통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겉 포장만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김 대표는 포장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은 내실을 다져야 했다.


원칙을 지키며 판로를 개척하다

직원 3명이 전부인 동네 양조장이 내실을 다지기 위해선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판로 개척’이었다. 지평주조는 앞서 말한 대로 2010년 당시 양평 일대에 막걸리를 공급하는 동네 양조장이었다. 달리 유통망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당시 막걸리 시장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서울의 장수막걸리, 부산의 부산생탁, 인천의 소성주, 대구의 불로막걸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과 비교하면 지평막걸리는 지역 특산 막걸리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판로 개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류 시장은 수없이 많은 도매상과 소매상이 존재한다. 판매 채널도 식당과 술집부터 대형마트, 소형 슈퍼마켓, 편의점 등 다양하다. 지평주조는 일단 양평군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수도권 동쪽 상권에 도매상들을 접촉해 지평막걸리를 유통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매상 입장에서 이미 잘 거래하고 있는 곳들이 있는데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막걸리 브랜드를 취급할 이유가 없었다. 김 대표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결국 김 대표는 직접 막걸리를 차에 싣고 지평막걸리를 소개하고 다녔다. 원래 법적으로 주류 제조사가 직접 술을 판매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전통주는 예외다. 전통주 양조장들이 워낙 영세해 정부에서 예외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밤에는 막걸리를 만들고 낮에는 막걸리 배달을 다녔다. 매출액 2억 원짜리 소규모 양조장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김 대표는 이때부터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철저히 지킨다.


1.제대로 만들어 제값 받고 팔겠다.

첫 번째는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원칙이다. 지평주조의 지평막걸리는 2010년 막걸리 붐 당시 서울시내 막걸리 바에서 병당 7000∼9000원에 팔렸다. 이는 일반 대중 막걸리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다. 소매가 역시 장수막걸리 등 대형 막걸리 업체의 제품보다 비쌌다. 수도권 진입을 노리는 입장에서 막걸리 가격을 높게 가져가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다. 막걸리는 대표적으로 가격에 민감한 술이기 때문이다. 2010년 당시 막걸리 붐을 타고 고급 막걸리 바(Bar)도 생기고 프리미엄 막걸리들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막걸리는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허름한 식당에서 마시거나 동네 슈퍼에서 구입해 집에서 마시는 술이었다. 전대일 지평주조 경영전략본부장은 “이런 소비자 가운데는 막걸리 가격이 100원만 싸도 1㎞ 이상 먼 슈퍼마켓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처음부터 장년층 소비자들은 지평주조의 주요 타깃 소비층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초기부터 맛, 스토리, 브랜드에 만족하면 기꺼이 조금 비싼 가격도 지불할 수 있는 젊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고 이를 꾸준히 밀어붙였다. 사실 당시만 해도 전체 막걸리 시장에서 지평주조와 같은 가격으로 시장에 포지셔닝한 브랜드들은 많지 않았다. 이들이 전체 막걸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에 불과했다. 당시로써는 매우 니치한 시장이었지만 지평주조는 꾸준히 준프리미엄 전략을 이어간다. 다행히 ‘저도주’ 열풍이 불고 ‘레트로 트렌드’가 인기를 얻으면서 지평주조가 타깃으로 했던 니치 마켓은 ‘리치 마켓(Rich market)’이 된다. 그리고 현재도 지평막걸리는 시장에서 준프리미엄 제품으로 구분돼 팔리고 있다. 일반 막걸리들과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맛과 품질을 높여 제 가격을 받고 팔겠다는 김 대표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DBR Mini Box Ⅰ ‘막걸리 시장에서 지평주조가 갖는 브랜드적 위치는?’ 참고.)


DBR mini box I: 지평주조의 브랜드적 위치

현재 막걸리 시장은 4개 카테고리로 구분돼 있다. 첫 번째는 대규모 시설을 갖춘 막걸리 업체다. 수도권의 장수막걸리, 인천의 소성주, 대구의 불로막걸리, 부산의 생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업체는 가장 대중적인 시장에 맞춰 막걸리를 만드는 업체로 최선의 가성비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 막걸리 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지역 막걸리다. 대표적으로 부산의 금정산성막걸리, 당진의 신평양조장, 고양시의 배다리막걸리, 그리고 지평주조다. 10년 전 막걸리의 다양성을 알리며 붐을 일으켰던 곳으로 지역의 맛과 멋, 무엇보다 다양한 스토리를 품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산 쌀로 술을 빚으며 한식 주점 등에서 일반 막걸리의 2배 전후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 마시는 막걸리다. 대규모 양조장의 경우 유통망이 촘촘해 관리가 편하지만 이러한 막걸리는 소량으로 유통이 안 되고 무엇보다 재고가 남는 경우 처리가 곤란했다. 서울에서 막걸리 몇 병 남았다고 재고가 필요한 부산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희소성 및 지역의 가치를 인정하는 트렌드세터들은 다소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했다. 일반적인 막걸리가 1000원대라면 이 막걸리의 소매가는 2000원이 넘는 경우가 많았으며 외식 업체에서는 주로 5000∼9000원에 판매됐다.

세 번째는 트렌드라는 옷을 입은 ‘크래프트 막걸리’ 등이다. 젊은 감성으로 무장한 크래프트 막걸리는 기존의 막걸리가 가진 전통적 권위를 버리고 새로운 디자인에 맛과 멋으로 무장한 제품이다. 디자인만 보면 막걸리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만드는 방식은 오히려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수제품으로 막걸리 자체의 가치에 중점을 둔다. 대표적으로는 단양의 도깨비 술, 서울의 나루생막걸리, 여주의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시뻘건 막걸리로 유명한 술 취한 원숭이, 복순도가 막걸리 등이 있다. 소비자 가격은 6000∼1만 5000원으로 외식업체에서는 1만∼3만 원가량에 팔리고 있다.

네 번째는 문화적, 기술적 가치를 뽐내고 싶은 고가 프리미엄 막걸리 라인이다. 병당 1만∼5만 원대의 막걸리로 원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숙성 기간도 길게 가져간 제품이다. 지역의 햅쌀만을 고집하며 만드는 방식조차 전통적 문헌에 근거한 제품들이 많다. 트럼프 만찬주로 유명한 풍정사계 춘, 아세안 정상회의 건배주인 천비향, 아름다운 정원의 해창막걸리, 송도의 삼양춘, 안동의 별바당 등이다. 소비자 가격은 1만5000원이 넘으며 외식 업체에서는 2만∼7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이렇게 고급 막걸리가 시장이 있나”라는 의문이 있지만 의외로 많이 팔린다. 와인은 와인 바에서 5만 원이면 저가에 속하지만 막걸리는 같은 가격이면 최상급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막걸리들을 판매하는 곳조차도 와인 바 이상의 좋은 인테리어를 갖춘 강남, 홍대 등의 핫 스폿에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지평막걸리는 두 번째 카테고리인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역의 소규모 양조장이었다. 그리고 이 시장은 원래 전체 막걸리 시장의 1% 정도의 틈새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계 1위를 위협할 정도의 기세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뜻은 막걸리 시장 자체가 더이상은 가성비가 아닌 가치를 따지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2.유통업계 관행을 바꾼 고마진 정책

또한 김 대표는 대리점과의 상생을 회사의 원칙으로 삼고 꾸준히 실천한다. 지평주조는 초기 대리점 대상 영업을 시작하면서 경쟁사 막걸리보다 높은 마진을 약속했다. 이런 고마진 정책이 가능한 이유는 크게 2가지 이유 덕분이다. 일단 앞서 언급한 대로 지평주조가 준프리미엄 제품으로 고객들에게 인식돼서 조금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막걸리 유통업계는 병당 100원, 50원 떼기의 초저가 이윤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다른 어떤 가치보다 낮은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김 대표는 처음부터 무리한 가격 경쟁 대신 지평막걸리를 준프리미엄급 막걸리로 포지셔닝하면서 대리점주들에게 돌아갈 몫을 늘렸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지평주조가 대리점에 판촉비 등을 전가하지 않고 공급 가격을 최대한 낮춰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도매상은 물건을 상대적으로 싸게 매입하게 되고 마진을 더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됐다.

그렇게 2010년부터 준프리미엄 가격 전략과 대리점 고마진 정책을 유지하자 대리점주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얼마 남지도 않는 막걸리를 뭐 하러 거래선을 바꾸냐?”고 퉁명스럽던 대리점 사장들이 “지평막걸리 팔면 돈이 많이 남는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서서히 지평막걸리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처음엔 다른 막걸리 제품과 병행해서 취급을 하던 대리점들이 같은 양을 팔면 지평막걸리가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지평막걸리만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체계도 없고, 네트워크도 없었지만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며 꾸준히 발품을 판 덕분에 지평주조의 매출액은 2억 원에서 2014년 28억 원, 2015년 45억 원까지 늘었다. 이렇게 5년 사이 조금씩 시장을 늘려나간 지평주조는 2014년경에는 용인, 수원, 여주, 이천 등 수도권 동남부와 송파 등에 대리점을 갖게 됐다.



막걸리는 손맛? 막걸리는 과학이다!

열심히 발품을 팔며 지평막걸리를 알린 덕분에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2014년경,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일단 늘어나는 주문을 감당하기에는 기존 양조장은 너무 작았다. 지평주조 양조장은 1920년대에 지어진 목조 건물이었다. 이 건물에서 막걸리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밀 입국을 만들고 고두밥을 지어 이를 항아리에 넣고 발효시켜 술을 담그는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막걸리 맛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들은 대부분 수십 년 동안 막걸리를 담가 온 소위 ‘장인’들의 손맛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 문제는 사람의 손맛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 특히 막걸리는 같은 원재료와 물을 써도 온도 등 외부 변수에 의해 맛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막걸리 맛이 그때그때 다른 것이 막걸리의 매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구 막걸리를 목표로 하는 막걸리 전문 제조업체가 소비자에게 “우리 막걸리는 그때그때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이를 이해해 줄 소비자가 있을까? 소규모 양조장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전국적으로 막걸리를 팔려면 맛의 표준화는 꼭 필요했다.

결국 맛을 좌우하는 변수들을 차단하려면 ‘자동화’가 답이었다. 지평막걸리가 가장 지평막걸리스러운 맛을 내는 원재료의 상태, 온도, 습도 등을 찾고, 100% 자동화는 어렵더라도 변수를 최대한 통제하려면 투자를 통해 생산 설비를 자동화해야 했다. 하지만 지역 양조장에 이런 시설투자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당시 지평주조는 매출액 40억 원을 갓 넘긴 상황이었다.

결국, 지평주조는 2015년 기존 양조장 옆 부지를 활용해 생산 공장을 짓기 시작한다. 수도권 진출을 노리는 회사 입장에서 서울과 더 가까운 남양주 인근에 생산 공장을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특히 생산지를 옮기면 술맛이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원래 양조장 옆 부지를 선택한 이유였다. 막걸리는 발효주기 때문에 물이 변하거나 누룩곰팡이가 변하면 술맛도 변한다. 그래서 술을 빚는 장소가 중요하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자동화를 시도하다 보니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완전 자동화보다는 제한된 자동화를 시도했다. 이렇게 1공장을 지으며 제조 과정을 자동화하고 공장 내부에 온도 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펼쳤고 이를 통해 막걸리 맛의 균일화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2016년부터 지평주조는 지평면 제1공장에서 막걸리 생산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생산 시설은 태생부터 한계가 있었다. 지평 양조장이 위치한 곳은 공장 지대가 아니라 근린 생활 지대였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근린 생활 지역에는 생산 시설을 500㎡ 이상 지을 수 없다. 지평주조의 새 공장도 결국 기존 목조 건물 양조장에 인접하게 협소한 공간에 지어졌다.

이런 한계 때문에 지평주조의 제1공장은 가동 1년여 만에 생산을 중단했다. 제1공장 완공 당시 이 공장의 생산 능력은 월 150만 병 수준에 불과했는데, 이후 지평막걸리를 찾는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2017년에 이미 수요가 생산 능력을 초과하게 됐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지평면이 상수원 보호 대상 구역이다 보니 막걸리를 만들면서 발생한 오폐수 처리가 문제였다. 전 본부장은 “상수도 보호 구역에서는 특정 기간 내 내보낼 수 있는 오폐수의 양에 제한이 있어서 막걸리 생산을 늘리고 싶어도 지평면 주민들이 내보내는 생활 오폐수들을 줄이지 않는 한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구조였다”라며 “결국 생산 거점을 옮기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공장을 옮기면 맛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막걸리는 물이 중요한 술이다. 지평막걸리가 뛰어난 맛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지평 양조장 내 우물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활용해 술을 빚었기 때문이다. 공장 부지를 옮기면 물맛이 변할 테고, 물이 변하면 술맛도 변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효묘균이었다. 막걸리는 누룩을 만들 때 따로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양조장 내부 누룩방에 누룩을 놓으면 그 공간에 오랜 기간 살고 있는 곰팡이들이 누룩에 달라붙어서 누룩을 발효시키며 막걸리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곳이 다르면 그 공간에 사는 곰팡이가 다르기 때문에 술맛이 달라진다.

결국 물맛과 효모균을 유지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물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평과 같은 수원(水原)인 북한강을 끼고 있는 곳에 공장을 세워야 했다. 김 대표는 적당한 신공장 부지를 찾기 위해 무려 6개월 이상 북한강 지류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인근에 적당한 부지를 찾아낸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북한강을 수원으로 쓴다고 해도 춘천의 물은 지평면의 물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평 양조장의 물은 양조장 내 우물에서 나오는 지하수였다. 그러나 춘천에 공장을 짓는다 해도 지하수를 끌어다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상수를 써야 하는데, 상수는 지하수와는 성분이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소독과 정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결국 공장 내 상수를 재정수해서 지하수와 비슷하게 만드는 설비를 설치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지평주조 춘천 공장은 수돗물을 재정수해 지하수 물과 비슷한 성질의 물로 바꾸어 사용한다.

또한 막걸리 맛을 내는 효모균이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지평주조는 기존 지평 양조장 기둥과 서까래 등에서 서식하는 효모균을 일일이 채취해 사용하고 있다. 또 춘천 공장 내 미생물 연구실에서 이를 그대로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지평주조는 중소 규모 양조장으로는 드물게 자체 미생물 연구실을 만들고 미생물을 전공한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이들은 지평막걸리의 맛을 유지하게 하는 효모균을 연구하고 배양하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지평주조는 2018년 6월부터 춘천 공장 시대를 연다. 대지 8580㎡(약 2600평), 건물 면적 3300㎡(약 1000평)에 달하는 부지에 최첨단 자동화 설비와 품질관리 설비를 갖춘 신축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면서 지평주조는 월 500만 병 제조 능력을 갖춘 시설을 완비하게 된다. 이러한 생산량은 기존 양평 공장 생산량 대비 3배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덕분에 2018년부터 지평주조는 그동안 지평막걸리를 팔고 싶다고 지속적으로 접촉을 해 왔지만 물량이 부족해 공급할 수 없었던 편의점과 SSM(Super supermarket, 기업형 슈퍼마켓) 등에 막걸리를 납품할 수 있게 된다.



업계 최초 전국 유통망 구축

이렇게 생산 기반이 보강되면서 지평주조는 성장세에 날개를 단다. 일단 막걸리 제조 공정 자동화에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지평 생막걸리’ 도수를 5도로 리뉴얼해 출시했다. 이 막걸리가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맛이 부드럽고 머리가 아프지 않은 막걸리’로 자리매김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매출은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 대표는 부족함을 느꼈다.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며 막걸리 만드는 방법은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특히 회계, 인사, 세일즈, 마케팅 등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이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유능한 인재 영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특히 세일즈 전문가가 절실했다. 차에 막걸리를 싣고 돌아다니며 도매상을 찾는 발품식 방식으론 한계가 분명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배상면주가에서 영업본부장을 지낸 전대일 현 지평주조 경영전략본부장과 연이 닿게 된다. 전 본부장은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지만 커리어의 대부분을 주류 영업 분야에서 보낸 주류 유통 전문가다. 배상면주가 영업본부장 이전에는 웅진식품에서 음료 영업을 했다. 국내 주류 시장의 트렌드와 주요 대리점과의 네트워크 면에서 업계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2016년 당시 전 본부장은 퇴사 후 개인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때 김 대표가 전 본부장에게 영입 제의를 했고 지평주조의 오랜 역사와 제품력, 젊은 사장의 열정에 끌려 결국 지평주조에 합류한다. 전 본부장은 “깨끗한 지하수와 신선한 쌀을 전통 주조법으로 빚어내는 지평주조의 제품력이 마음에 들었고 특히 옛 양조장에서 옛 전통 주조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기본기가 탄탄한’ 제품이라 생각해 마음이 끌렸다”고 설명했다.

전 본부장이 지평주조에 오면서 지평주조의 대리점 수도 빠르게 늘었다. 특히 이전까지 서울과 수도권 동남부에 치우쳐 있던 대리점을 서울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한다. 비결은 예상외로 간단했다. 전 본부장이 수년간 닦아온 네트워크가 비결이었다. 전 본부장은 “대리점 리스트를 쭉 살펴보고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 지평주조를 취급하지 않는 대리점에 전화를 돌렸다”며 “수년간 주류 업계에서 닦아온 네트워크에 지평막걸리에 대한 우호적인 소문들이 더해져 손쉽게 유통망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지평주조의 빠른 성장이 2030세대를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김 대표와 전 본부장은 이런 지적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보다는 앞서 설명한 맛과 품질에 대한 투자와 도매상과의 상생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 지평주조 측의 자체 분석이다.

실제 전대일 본부장 합류 후 2016년 수도권 영업망을 확대한 지평주조는 2017년부터 수도권을 넘어 강원, 부산, 경남, 충청, 전북 등 전국 유통망 확대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2010년 이후 줄기차게 지켜온 원칙이 힘을 발휘했다. 도매상과의 상생이 그것이다.



지평주조는 앞서 설명한 대로 도매상의 마진을 높여주기 위해 판매촉진비 등을 포기하고 그만큼 지평주조의 마진을 양보했다. 다른 막걸리 제조사들이 제조사 마진을 높게 가져가는 대신 판매촉진비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대리점들을 관리하던 관행을 깬 것. 판매촉진비 대신 제조사의 공급 가격을 낮춰주고 대리점주들이 낮아진 매입 가격 아래서 자유롭게 판매 가격 정책 및 프로모션 전략을 운영할 수 있게 하면서 대리점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자 힘썼다. 또한 대리점을 현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조사의 파트너이자 현장 전문가로 인정하고 이들이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시간이 지나 효과를 발휘하면서 대리점들은 자체적으로 판매촉진비를 투입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는 효과가 생겼고 입소문이 나면서 지평주조의 막걸리를 취급하려는 대리점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지평주조는 2019년 2월에 지평막걸리를 취급하는 75개 도매상을 구축, 전국 유통망을 완성했다. 현재는(2019년 말 기준) 도매상 수가 91개까지 늘었다. 이들 대리점은 대부분 지평막걸리만 취급하는 독점 도매상들이다. 이는 막걸리 업계 1위 업체인 서울탁주도 못한 일이다. 전 본부장은 “단일 브랜드로 지평막걸리처럼 전국적인 유통이 이뤄지고 높은 매출을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대리점을 파트너로 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가격 전략을 짠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입소문의 영향으로 2016년부터는 대형마트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대형마트들은 각각 자체적으로 지정한 벤더사가 있고 이 벤더사를 통해 주류를 공급받는데 2016년부터 이들 벤더사에서 지평막걸리를 대형마트에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 이어 2018년부터는 편의점 업체들이 ‘저도주 열풍’을 타고 지평막걸리 납품을 요청하면서 지평막걸리는 명실상부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전국구 막걸리’가 된다. 전 본부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회사의 성장세를 이어갈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전국 유통망 확보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지역색이 뚜렷한 막걸리 시장에서 지방을 뚫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막걸리가 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지평주조의 성장 비결

지평주조의 성장 스토리를 살펴보다 보면 치밀한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는 느낌보다는 몇 가지 원칙을 정해두고 이를 철저히 지키면서 작은 회사답게 그때그때 그 원칙 아래서 유연성을 잘 발휘해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원칙의 대부분은 과거로부터 지켜온 전통과 관련이 깊었다.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막걸리 제조 방식을 활용해 고유의 맛을 지키고 양조장의 역사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라벨 디자인을 바꾸고 마케팅을 진행했다. 역사와 전통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런 노력이 최근의 레트로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지평주조를 트렌디한 막걸리 브랜드로 만들어줬다. 덕분에 지평주조는 다른 막걸리 업체들은 잡지 못한 2030세대 취향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1. 맛과 품질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

지평주조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지평주조는 막걸리의 도수를 낮추며 ‘저도주’ 경쟁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다. 2015년에 막걸리 업계에서는 최초로 5도짜리 지평 생 쌀막걸리를 내놓는다. 당시로써는 막걸리의 도수를 내린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시장 점유율 1등인 장수막걸리가 6도인 상황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지평주조가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기 때문. 알코올 도수 6도는 기존 막걸리 시장의 주요 소비자층인 고령층이 오랜 기간 마셔온 익숙한 맛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도수를 내릴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젊은 층과 여성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막걸리 도수를 낮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평주조가 5도짜리 지평 생 쌀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자 경쟁사들은 “젊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도수를 낮춘 것”이라든지 “물을 더 타서 생산 원가를 절감하려는 시도”라는 소문들이 넓게 퍼졌다. 그러나 지평주조가 막걸리의 도수를 내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평 생막걸리는 5도일 때 가장 맛있다는 것을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것. 전 본부장은 “가장 지평다운 맛을 살리고 품질을 균질하게 가져가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다 도수가 5도일 때 최적의 맛이 난다는 결과가 나와 이를 제품에 반영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물을 탔다는 루머도 사실이 아니었다. 쌀 함량을 늘리고 쌀 자체의 단맛을 살리는 지평주조만의 방법을 개발했고 이 방식으로 도수를 낮출 수 있었다. 원재료의 단맛 덕분에 막걸리 특유의 누룩 냄새와 텁텁한 맛이 줄면서 젊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깔끔한 맛의 막걸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됐다.

의도와 상관없이 지평주조의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이후 ‘저도주’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 덕분에 막걸리는 물론이고 소주 시장에서도 저도주들이 줄줄이 출시된다. 특히 업계 1위 장수막걸리도 5도짜리 막걸리 시장이 커지는 것을 보고 지난해 ‘인생막걸리’를 내놓으며 저도주 경쟁에 불을 지핀다. 지평주조는 지평 생막걸리가 가장 맛있는 도수를 찾아 맛을 지키자는 원칙에 충실했지만 본의 아니게 주류 시장에 저도주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지평주조는 또 맛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경쟁사들은 잘 쓰지 않는 ‘밀 입국’을 여전히 사용한다. 1990년대 쌀 막걸리 허용 이후 대부분의 막걸리 업체들이 쌀로 만든 누룩을 쓰고 있다. 그러나 지평주조는 쌀 막걸리에도 여전히 밀 누룩을 활용한 전통적인 주조법을 고수하고 있다. 밀 입국은 밀 자체에 단백질 함량이 높아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나는 특징이 있고 옛날 막걸리 맛에 가깝다. 또 옛날 막걸리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중장년층을 위해 지평 생 쌀막걸리 외 밀로 만든 ‘지평 생 옛막걸리’를 여전히 생산 중이다. 전 본부장은 “전체 매출에서 밀 막걸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되지 않지만 옛날 막걸리의 깊은 맛을 찾는 소비자들을 위해 꾸준히 밀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평주조는 최근 첫 제조공법을 살린 막걸리 신제품 ‘지평 일구이오’를 출시하기도 했다. 지평 일구이오는 1925년부터 막걸리를 빚어 온 지평주조의 오리지널 레서피로 재탄생한 제품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지평막걸리만의 깊은 맛과 향을 되살린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7도이며 지평막걸리만의 부드러운 풍미를 그대로 살려내 기존 제품보다 높아진 도수에도 깔끔한 목 넘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변화하는 막걸리 시장에서도 지평주조만이 가진 고유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하는 것이 지평 일구이오의 목적이다.


2. 옛 양조장의 가치를 살린 마케팅, 레트로 트렌드

김 대표는 지평주조 합류 전 홍보 전문 회사에서 일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지평주조의 브랜딩에 노력을 기울였다. 초기부터 양조장 한편에 지평주조 홍보관을 만들고 지평주조의 모습을 형상화한 로고와 영업 브로슈어를 제작하는 등 당시 회사의 상황이나 규모와는 맞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또 라벨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지평주조는 2010년 이후 수차례 라벨 디자인을 수정한다. 특히 초기에는 오히려 현재 라벨 디자인보다 색깔도 화려하고 젊은 느낌이 드는 라벨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평 진선미 막걸리’가 대표적 예다. 그러나 이후 지평주조는 전략을 수정해 지평주조의 오랜 역사를 라벨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일단 서체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꾼다. 옛날 방식인 세로쓰기에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는 우종서(右縱書) 형태로 라벨을 바꾼다. 여기에 글씨체는 옛날 양조장 현판 글씨체를 사용했다. 또 ‘지평 생막걸리’라는 상표명 옆에는 지평 양조장 그림을 넣어 고전미를 더했다. 젊은 세대 소비자를 잡는다면서 디자인은 예스럽게 바꾼 것. 그런데 마침 레트로 열풍과 함께 ‘예스러운 것이 멋스러운 것’이라는 트렌드가 생겼고 지평막걸리의 병 디자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예쁜 막걸리’로 인기를 끌었다. 전 본부장은 “지평막걸리 라벨 디자인은 공모전을 통해 인연을 맺은 대학생 작품”이라며 “고전적이면서도 젊은 감성이 담긴 라벨 덕분에 소비자들이 지평막걸리를 더 사랑해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평주조는 최근에는 역사적 건물인 옛 양조장 건물을 체험형 공간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지평리의 양조장을 문화 체험 공간으로 변경, 지평주조의 100년 역사와 문화를 전파할 예정이다. 더불어 이 양조장에서 기존에 없었던 프리미엄 제품을 제조 및 판매할 예정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해 소비자에게 막걸리가 가진 다양성과 부가가치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러한 갤러리가 완공되면 주변 양평 관광지와 연결해 관광 문화 상품으로서의 부가가치를 키워나갈 예정이다.



3. SNS 마케팅 선도

지평주조는 막걸리 회사로는 드물게 젊은 소비자를 공략한 SNS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세월을 이어가는 맛과 향’이라는 슬로건하에 운영 중인 지평주조 공식 SNS 채널은 1925년부터 막걸리를 빚어온 역사와 전통을 알리고 지평막걸리를 보다 다양하게 경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홈술·혼술이나 가심비, 소확행과 같이 적당히 맛있게 마시고 싶어 하는 2030세대의 주류 소비 트렌드에 맞춰 지평막걸리와 어울리는 이색 안주 조합이나 와인 잔, 칵테일 잔 등을 이용해 색다른 분위기 연출을 제안하는 등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다소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막걸리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함이다.

브랜드 고유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위해 고정 코너도 운영 중이다. 지평막걸리를 판매하는 맛집을 소개하는 코너 ‘지평미식회’는 지평막걸리와 어울리는 메뉴 소개는 물론 지평막걸리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을 발견하는 재미를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지평주조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지평을 여는 사람들’ 코너는 지평주조의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1월 말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지평막걸리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약 3만7000건의 피드를 확인할 수 있다. 업계 1위인 장수막걸리 피드가 3만3000여 개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지평막걸리의 SNS 마케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민희 지평주조 마케팅팀장은 “인스타그램에서 지평막걸리가 가장 피드가 많은 이유는 SNS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지평막걸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콘텐츠가 많은 편이라서 공식 SNS 채널은 조금 느리더라도 지평이 가진 고유한 색깔을 확고히 하는 쪽으로 운영 방향을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 지평주조는 젊은 소비자층에게 주력 제품인 ‘지평 생 쌀막걸리’를 알리기 위해 유튜브 크리에이터 ‘팀브라더스’와 협업을 진행, ‘다양한 음식의 모든 것’이라는 콘셉트로, 요리와 먹방, 제품 리뷰 등의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한국의 기네스 꿈꾸는 지평주조

지난 10년간 무려 120배 가까운 성장을 한 지평주조. 그런 지평주조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전대인 본부장은 “우리는 한국의 기네스를 꿈꾸고 있다”라고 자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실제 기네스 맥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평주조의 스토리와 닮은 점이 눈에 띈다. 일단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네스는 1759년 더블린에서 출발해 2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또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대에 발맞춰 제품을 혁신해 왔다. 기네스는 1893년 수학자와 과학자를 채용해 기네스 흑맥주가 최고의 맛을 내는 홉의 비율을 찾아냈다. 1959년에는 맥주에 질소를 넣어 기네스 특유의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기네스 캔맥주의 상징적 소리를 만들어 내는 ‘위젯(질소 가스가 담긴 공)’도 오랜 기간 연구한 혁신의 결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평조주는 기네스 맥주가 갖는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 본부장은 “아일랜드를 찾은 여행객이라면 으레 더블린 시내에 있는 기네스 양조장을 방문해 그 역사를 배우고 오래되고 독특한 흑맥주 맛을 음미한다”며 “기네스는 흑맥주 하나로 아일랜드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평주조가 한국 막걸리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으면 하는 희망을 내비쳤다.

“지평양조장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데다 독특한 건축 양식을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돼 있다. 이런 문화유산들을 그냥 허비할 순 없지 않나? 우리는 이곳을 기반으로 지평주조만의 콘텐츠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지평양조장 건물을 활용해 양조장 견학, 술 빚기 체험, 시음, 문화 연계 행사, 지평 브랜드 행사 등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면 막걸리에 관심 있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지평주조도 기네스 맥주처럼 한국과 양평을 대표하는 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DBR mini box II :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 인터뷰
“제조에서 문화로 외연 넓힐 것”


회사가 성장하고 조직이 빠르게 커지면서 겪게 되는 여러 어려움 중 최근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인재 양성이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과거에는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업무가 과도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너무 업무에 치이게 되면 열정도 사라지고 역량 강화도 소홀히 하게 되지 않나.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더 나은 인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 및 제도 개선, 직원 교육 등을 고민하고 있다.


지평주조가 약진을 거듭하면서 경쟁사들의 견제도 심해지는 듯하다. 이에 대한 생각과 향후 대응 방안은?

같은 업계에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업체들의 행보나 새로 내놓은 제품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매출 성장이나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지평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지평주조가 갖고 있는 목표와 가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더 역량을 쏟고 있다. 앞으로도 지평의 생각과 색깔을 담은 제품을 선보이고 업계에서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제조’에서 ‘문화’로 외연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매출액에 비해 직원 수(50여 명)가 적은 것이 눈에 띄는데, 이유가 있나?

작은 동네 양조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생산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직원 수를 늘리기보단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는 기존 직원들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특히 젊은 직원들은 루틴(Routine)한 업무에 염증을 느낀다. 이런 업무를 줄일 수 있는 사무 자동화, 생산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불필요한 업무나 보고를 과감히 줄여나가면서 기존 직원이 새로운 업무를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업무 효율화에 신경 쓰고 있다. 직원 수가 많지 않아도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면 직원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만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평주조는 중소기업임에도 직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떤 혜택이 있고, 이런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는?

회사의 미래는 회사 내 조직원들에게 달려 있다. 현재 직원들에 대한 대학교 및 대학원 등록금 지원, 외부 교육비 지원, 취미 활동비 지원,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의 제도가 있다. 아직 대단한 혜택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나씩 확대하고자 한다. 올해는 사내 도서관 운영 및 복지 포인트 제공도 계획돼 있다.


막걸리는 해외 진출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수출 계획은 어떻게 되나?

현재 해외에 수출되고 있는 대부분의 막걸리는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이 주 타깃 고객이다. 이런 식의 수출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수출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평주조는 현지인을 타깃으로 한, 그들의 입맛에 맞고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진짜 수출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술뿐만 아니라 음식, 예술 등을 포함한 하나의 문화로 다가설 계획을 갖고 있다. K-Pop이나 K-Beauty가 좋은 롤모델이라고 생각한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바꿔라! 하지만 바꾸지 말아라!”


포르셰 철학과 같은 본질 집중 전략

막걸리 업계는 2010년을 전후해 일본발 막걸리 인기 덕에 외적으로 큰 성장을 한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에만 치중한 나머지 막걸리의 품격을 올려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이 아닌 수출액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결국 2년 만에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지평주조는 남들이 일본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내수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바닥을 튼실하게 다진 후에 해외 진출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수출용 살균 막걸리는 기존의 생막걸리와 맛이 달랐다. 한번 높은 온도로 멸균 처리를 한 만큼 생막걸리 특유의 신선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페트병에 넣게 되면 탄산도 사라졌다. 일부 업체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냉장으로 생막걸리를 수출하기도 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수출용 생막걸리는 맛이 변질될 리스크가 컸다. 짧게는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무리하게 진행했다가 오히려 후폭풍이 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지평주조는 수출이라는 시장 대신 주변에 가까운 시장부터 돌파구를 찾았다. 지평리 및 양평 군내는 물론 본사와 가까운 수도권의 동남부인 이천, 용인, 수원, 그리고 송파 쪽부터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처럼 단기적 이익 대신 브랜드 가치와 맛이라는 본질을 지킨 덕에 오히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포르셰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하다. ‘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 즉 ‘바꿔라, 하지만 바꾸지 말라’다. 이것은 본질에 집중하면서 진화해 나간다는 의미다. 지평주조는 막걸리 시장의 마이너 업체에서 메이저 업체로 성장하면서 이 원칙을 잘 지켜나갔다. 가장 기본인 품질 관리에 열정을 쏟았으며 수출보다는 내수에 집중했다. 맛은 바꿨지만 옛 맛은 살렸으며, 판매 대리점들과의 협업 및 상생으로 두터운 파트너십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기본을 지키는 노력 덕분에 품질과 맛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전통은 지키되 트렌드에 따라 디자인이나 알코올 도수 등에 변화를 줘 시대를 아우르는 키워드 속에 지평막걸리가 늘 함께할 수 있었다.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의 가장 큰 과제는 대량 생산을 했을 때, 균질한 맛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경험치가 부족해서고, 두 번째는 설비도 받쳐주질 않는다. 무엇보다 ‘어차피 저렴한 막걸리’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위생상의 문제가 있는 양조장이 많았다. 지평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 적극적인 품질 관리에 들어갔다. 일단 날씨 및 발효 컨디션이 안 좋아 맛이 조금이라도 변한 막걸리 원액,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모두 버렸다. 한마디로 술은 버려야 팔린다는 철학이었다. 물론 덤핑으로 팔 수 있었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평은 시장에서 하나씩 신뢰를 쌓아갔다.



고정된 룰을 깨는 과감한 혁신

지평막걸리의 가장 큰 변화는 막걸리의 도수를 낮춘 것이다. 기존의 6%인 막걸리의 도수를 5%로 낮췄다. 단순히 저도수가 대세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평막걸리가 가장 맛있는 도수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고 이를 위해 회사의 연구진도 총동원됐다. 알코올 도수를 5%로 낮춤으로써 일단 막걸리의 누룩취가 확연히 적어졌다. 하지만 단순히 물을 더 넣어서 도수를 맞춘 것이 아니라 쌀 자체의 단맛을 살려 도수를 낮췄다. 발효공학을 통해 원료 비율을 그대로 가면서 맛에만 변화를 준 것이었다. 이렇게 낮은 도수의 막걸리는 맥주에 익숙한 2030세대의 입맛에 딱이었다.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4∼5%이기 때문. 저도주로 바꾼 부분은 생각지 못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 소주 등의 도수가 계속 낮아지면서 ‘저도수’ 술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고 저도수 술로 지평막걸리가 자주 언급됐다.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홍보가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원칙을 지키며 브랜드 가치 창출

그렇다고 지평주조가 모든 것을 바꾼 건 아니다. 특히 절대 고수하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옛날 방식으로 밀로 만든 누룩을 고수한 것이다. 밀 누룩(밀입국)은 1960년대부터 양조장에서 본격적으로 쓰였던 막걸리 발효제. 특히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쌀로 더 이상 술을 못 빚게 되면서 당시 모든 양조장이 이 밀 누룩(밀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와서 쌀 막걸리가 허용되면서 이 밀 누룩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은 상당수 사라졌다. 많은 양조장이 쌀 누룩(쌀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게 된 것. 하지만 지평주조는 맛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끝에 막걸리 맛의 본질은 밀 누룩에 있다고 보고 옛 막걸리 맛을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막걸리에 향수를 가진 5060 소비자층과 새롭게 신규로 진입한 2030세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됐다.

지평막걸리의 디자인에서도 연관된 기업 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바로 옛 방식인 세로쓰기인 종서(縱書)로 디자인이 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는 우종서(右縱書) 형태로 돼 있다. 고전적인 디자인 형태를 그대로 가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디자인은 지평주조 자체 내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고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의 작품이다. 즉, 고전적인 디자인이었지만 2030세대의 감성도 품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소비자에게는 첫인상이다. 첫인상이 좋아야 그다음이 진전된다. 결국, 클래식과 트렌디를 품은 디자인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거부감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매출로 이어졌다.

지평주조의 모토는 이것 하나로 귀결된다. ‘바꾼다, 하지만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은 추구하지만, 결국 그 근본은 지켜나간다라는 의미다.


필자소개 명욱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vegan_life@naver.com
필자는 일본 릿쿄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다 한국 전통주에 빠져 주류 전문가의 길을 가게 됐다. 현재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KBS1 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 SBS 팟캐스트 말술남녀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3호 Against the Pandemic 2020년 3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