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6. Interview: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지속가능성 전략은 선언 후 방법 찾는 것
조건 모두 갖춘 후에 하려면 주도권 놓쳐”

308호 (2020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LG화학의 지속가능경영 실천 전략

지속가능경영은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없이는 실현되기 힘듦. 아직 상업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제대로 구현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 조직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지속가능성이란 토픽을 의도적으로 우선순위에 올려놓아야 함. 모든 조건이 충족된 후에 시작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목표를 정해 놓고 방법을 찾으려는 ‘선제적’ 태도가 중요. 지속가능성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실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케이스로 만드는 게 핵심. 주요한 글로벌 이니셔티브 참여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며 복잡다단한 ESG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공조를 펼치는 방안도 고려.



지난 7월 LG화학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성장(Carbon Neutral Growth)을 달성하겠다며 국내 화학업계 최초로 전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아직까지 RE100 이니셔티브1 의 공식 멤버로 가입한 건 아니지만 해외뿐 아니라 국내 사업장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데 대해 업계의 관심이 크다. 전력구매계약(PPA) 등 재생에너지 공급 계약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아직까지 RE100 실현을 위한 제도적 여건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 때문에 RE100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내 업체들도 해외 사업장 대상으로만 우선 추진하고 있을 뿐 국내 사업장과 관련해선 말을 아끼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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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의 과감한 선언 뒤에는 1947년 회사 창립 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신학철 부회장이 있다. 100여 년 역사를 가진 글로벌 기업 3M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수석 부회장(해외사업 총괄)을 지낸 그는 2018년 6월 구광모 회장 체제하에 출범한 LG그룹의 첫 외부 영입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신 부회장의 국제적인 사업 운영 역량과 네트워크에 힘입어 LG화학은 최근 2년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관련된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우선 2019년 1월 미국 IBM과 포드, 중국 화유코발트, 영국 RCS글로벌 등과 함께 블록체인 기반의 코발트 조달 이력을 추적하는 컨소시엄인 RSBN(Responsible Sourcing BlockChain Network)을 구성하고 시범 프로젝트2 까지 끝마쳤다. 이어 같은 해 10월엔 책임 있는 광물 조달 및 공급망 관리를 위한 협의체인 RMI(Responsible Minerals Initiative) 3 에 국내 배터리 업계 최초로 가입했다. 올해 선언한 RE100 역시 범지구적 이슈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과 행동을 같이하겠다는 신 부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돼 이뤄진 것이다. LG화학의 지속가능성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 부회장을 DBR가 인터뷰했다.

2050년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으로 억제하겠다는 탄소중립 성장 계획을 발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해 달라.

탄소중립 성장은 LG화학이 말하는 지속가능성 전략의 뼈대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번에 발표한 지속가능성 전략은 △기후변화 대응 △재생에너지 전환 △자원 선순환 활동 △생태계 보호 △책임 있는 공급망 개발 및 관리 등 크게 다섯 가지 핵심 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흔히들 지속가능개발과 관련해 UN이 제시한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를 참고하는데 모든 걸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으니 현재 시장과 고객 관점에서 LG화학에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 5개를 선정해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이걸 수치적 목표로 말한 것이 ‘2050 탄소중립 성장’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보통 기업에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측면에서 다소 수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경제적 가치라는 암초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회적 선을 위한 활동을 하겠다는 건 그야말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이 말 그대로 기업의 전략으로서 지속가능할 수 있으려면 지속가능성이란 주제를 상당히 큰 ‘기회’ 요인으로 바라보고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실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케이스로 만들어야 한다. 가령, 기저귀의 핵심 소재로 제 무게의 수백 배에 가까운 물을 빨아들이는 고흡수성수지(Super Absorbent Polymer, SAP)를 생각해 보자. SAP에 지속가능성을 접목해 실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려면 이걸 현재 석유화학 합성 방식에서 바이오 기반 물질로 생산해 팔 순 없을지 고민해 볼 수 있다. 현재는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경제성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실제 상용화를 위해선 기술 혁신을 통해 대량 생산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과 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 등이 필요하다. 애초에 이런 일을 하려면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를 신사업의 동력으로 봐야 한다.

현재 LG화학 내에서 지속가능성 전략을 실현하는 데 가장 많은 도전과제에 부딪힐 부서는 회사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하고 있는 석유화학 사업본부다. 전지•첨단소재•생명과학 사업본부는 모두 미래의 메가트랜드를 겨냥한 비즈니스이기에 지속가능성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돼 있지만 석유화학 사업본부는 업의 특성상 탄소 배출을 굉장히 많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G화학은 현재 성장 속도를 고려했을 때 2050년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지금보다 네 배 이상으로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19년 LG화학 탄소 배출량이 약 1000만 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30년 뒤엔 4000만 톤 정도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결국 탄소중립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선 성장은 계속하되 약 3000만 톤의 탄소량 4 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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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발생량을 감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탄소 발생을 원천적으로 ‘회피(avoid, 간접 감축)’하거나,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탄소는 에너지 효율을 높여 배출량을 ‘저감(reduce, 직접 감축)’하거나, 나무를 심어 식물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시키는 방법 등으로 ‘상쇄(offset or compensate)’해야 한다. LG화학은 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다 동원해 탄소 배출량을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RE100(간접 감축)을 통해 전체 목표 감축량의 약 60%인 1800만 톤을 줄이고, 나머지는 에너지 효율 향상과 공정 설비 투자 같은 간접 감축 방식 및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 사업 같은 상쇄 방식을 함께 활용해 감축하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특히 사업 본부 및 거점 지역 특성을 고려해 탄소중립 성장 목표 연도도 사업본부마다 조금씩 다르게 잡았다. 가령, 전지 사업본부 글로벌 사업장은 2025년까지, 전사 모든 해외 사업장은 2030년까지, 전사 국내 사업장은 2050년까지로 구분해 설정해 놓았다.

RE100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어떤 실행 계획을 갖고 있나. 특히 국내 사업장의 경우 재생에너지 공급 인프라나 여러 제반 여건이 성숙돼 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솔직히 LG화학이 국내에서만 사업을 하는 회사였다면 현시점에서 RE100 선언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LG화학은 전체 매출액(2019년 기준 28조5702억 원) 5 의 약 7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2050년에 그 비중이 얼마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개인적으론 최소 90% 이상은 넘어설 것이라 본다. 이렇게 국내 비중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RE100도 실천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유럽(폴란드)과 미국 등 해외 사업장에 도입해 2030년까지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모든 글로벌 사업장에서 RE100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미 폴란드 배터리 공장은 녹색요금제를 통해, 미국 미시간주 배터리 공장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를 통해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13개 LG화학 생산 공장이 있는 중국의 경우 지난달 시진핑 주석이 206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한 만큼 RE100 도입에서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중국에선 내년부터 REC 시장 거래가 도입될 예정이고 동북 연안에 거대 해상 풍력 개발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REC 구매 및 PPA 계약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 생산을 상당 부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의 경우 온전히 RE100을 실현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국내 시장 여건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만만치 않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든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여야 된다. 다행히 현 정부가 RE100 도입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어서 향후 여건이 개선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무엇보다 우리 손으로 기술 솔루션을 찾으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이와 관련, 현재 LG화학 석유화학 사업본부에선 공정 혁신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 중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 기술 관련 담당 조직이 LG화학 여수공장과 대산공장에 있는 납사분해설비(Naphtha Cracking Center, NCC)의 열분해 공정을 전기로(electric furnace)로 대체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NCC는 섭씨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시설로, 크게 열분해•급랭•압축•분리정제 4단계 공정이 이뤄진다. 이 중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게 납사에 열을 가해 탄화수소로 분해하는 열분해 공정이다. 현재는 열분해로를 가열하기 위해 값싼 부생가스(by-product gas)를 연료로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한다. 이를 전기로로 바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시설 교체 비용도 막대하고,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운영해야 하는 만큼 설비를 교체한 이후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현재 경제성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재생에너지 전환 노력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기업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탄소포집저장활용(Carbon Capture Utilization Storage, CCUS) 기술 같은 기초과학 연구개발(R&D) 실증 프로젝트에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이 확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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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을 비롯한 2050 탄소중립 성장 선언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의 우려는 없었나.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구글 같은 기술 기업에서 탄소중립 선언을 하는 것과 업의 특성상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배출량이 많은 화학 업종에서 탄소중립 선언을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지만 딜로이트 코리아 전문가 그룹과 함께 1년여 동안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고, 각 사업본부에서도 그 필요성과 비즈니스 기회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내부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무엇보다 RE100을 요구해 오는 고객사의 요청 6 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탄소중립 성장을 포함한 LG화학의 지속가능성 전략은 절대적으로 ‘선제적’인 선언이다. 이 조건도 갖춰졌고 저 조건도 충족된 후에 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목표를 정해놓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속가능경영은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없이는 실현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LG화학의 경우 올해 초 지속가능전략팀을 별도로 조직했다. 기존에 대외협력 담당 산하에서 지속가능경영 관련 업무를 맡아 왔던 CSR팀에서 일부 인원을 분리해 별도의 전담팀을 만들었고 계속 인원을 늘려가고 있다. 현재 인원은 6명인데 조만간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에서 수년간 국제적 경험을 쌓은 전문가를 추가로 영입할 계획이다. 이런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없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다. 신사업을 발굴하고 영업이익을 개선하기도 바쁜데 이걸 누가 하려고 하겠나? 당장 고정 인건비 부담만 따져도 섣불리 추진하기가 어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20여 년 전부터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3M 재직 시절 태양광 관련 제품 개발 프로젝트도 이끈 경험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영자가 지속가능경영을 ‘사치(luxury)’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속가능성에 대해 5분 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속가능경영은 아직 상업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래서 제대로 구현되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최고경영진은 바로 이런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업부서나 조직원들에게 맡겨 놓아서 될 일이 아니다. 조직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먼저 지속가능성이란 토픽을 의도적으로 우선순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실현이 어렵다.

다행히 LG화학 내엔 배터리, 엔지니어링플라스틱, 바이오 의약품 등 지속가능성을 접목할 수 있는 후보군이 꽤 있다. 특히 배터리의 경우 전기차 폐배터리의 자원 선순환 고리(closed-loop) 구축을 꼽을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폐기 처리 후에도 60∼70% 이상 용량이 남아 있어서 이걸 그냥 버리는 건 그야말로 낭비다. 이걸 자원화해 사업화하려면 전기차가 수명을 다했을 때 고객사에 납품했던 배터리를 회수해 잔존 수명을 예측해서 일정 조건에 맞는 폐배터리를 전기차 충전소용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재사용(use)7 하고, 그 이후엔 폐배터리를 분해해 리튬, 코발트 등 원재료를 추출해 재활용(recycle)하는 등 자원 순환 시스템 자체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물론 이건 배터리 제조사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는 일로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비즈니스 기회가 있는 영역이다.

올해 들어 인도 공장 등 LG화학 해외 사업장은 물론 국내 사업장에서도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특히 지난 5월 말 고강도 환경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한 후 두 달도 채 안 돼 울산에서 또다시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 안전하지 않으면 가동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전 세계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는 LG화학만의 환경 안전 기준을 확립하고 관리 체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단지 현지 법규를 준수하는 차원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안전 관리 수준을 높이는 게 궁극적 목표다. 이를 위해 총 810억 원의 환경 안전 추가 투자8 를 집행해 LG화학 전체 사업장을 대상으로 고위험 공정 및 설비에 대한 긴급 진단을 끝마친 상태다.

지난 8월13일 울산 울주군 온산공단 내 LG화학 공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와 관련해선 사실 과도하게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부분이 없지 않다. 결코 이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무시해도 좋을 작은 사고라는 의미가 아니라 TV에 ‘실시간’ 사건사고로 방송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해당 사건은 공장 내 창고 안에 보관해 뒀던 작물보호제 생산 원료인 클로로아세트마이드(CCTA)가 분해되면서 연기처럼 보이는 휘발성 가스 물질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휘발성 가스 발생 후 약 40분만에 울주군청에서 시민들에게 “화학물질 누출이 의심되니 실내로 대피하고 차량은 이 지역을 우회하라”는 긴급 재난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 통에 방송사에서도 사고 소식을 바로 알고 카메라를 들고 찾아와 실시간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

이렇게 지자체에서 시민들에게 재빠르게 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LG화학이 미리 지자체에 협조를 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5월 고강도 환경 안전 강화대책 발표 후 LG화학은 그 후속 조치로 사내 환경 안전 및 공정 기술 전문가와 외부 전문기관으로 구성된 ‘M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그런데 M프로젝트 실천 매뉴얼 중에는 환경 안전사고에 ‘골든타임(golden time)’ 개념을 적용한다는 원칙이 있다. 화재 발생이든, 유독가스 누출이 됐든 처음 15분이 모든 걸 결정하므로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지역 소방본부에 알림과 동시에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토록 협조를 구하자는 게 핵심이다.

울산 사고 발생 전 LG화학이 울산군청에 협조를 구했을 때, 지자체에선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며 난색을 표했었다. 어떻게 일일이 주민들에게 문자를 발송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LG화학은 아무리 작은 사고라도 시민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지자체를 설득했다. 그 덕에 사고가 터진 후 신속하게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사고 소식을 알려 적절히 대피할 수 있게 안내할 수 있었다. 물론 LG화학은 정해진 골든타임 안에 울주군청에 사고 발생 사실을 알렸지만, 해당 지자체도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문구 작성과 내부 승인 절차를 거치다보니 긴급 재난문자 발송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했다. 처음이라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 부분은 추가로 협의해 향후에는 요청 즉시 발송하기로 한 상태다.

울산 사고가 분명히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안전사고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M프로젝트의 세부적인 실행 계획들이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골든타임 룰은 미국 미시간 배터리 공장 등 해외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국내 지자체를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는데 해외의 경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전에 대해 다소 안일하게 생각했던 기존 관념을 바꾸고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기 위해 반드시 추진하려고 한다.

기후변화, 산업재해 등 ESG(환경•안전•지배구조) 이슈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단에서, 특히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들이 주도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해외 상장 회사와 우리나라 기업, 특히 그룹사 이사회 구조의 차이에서 그런 지적이 나오는 것 같다. 미국 상장사들은 주로 회사에 부족한 역량이나 전문성을 보강하는 측면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셰일가스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하면 셸에서 CEO를 지냈던 인사를 영입해 오는 식이다. 나도 3M에서 근무하며 미국 포천 500 기업의 사외이사, 특히 감사위원회 멤버로 10년 이상 일했다. 미국에선 ESG 관련 이슈를 이사회 하부 위원회인 감사위원회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개인정보 보호 는 오래전부터 감사위원회에서 상시적으로 챙기는 이슈다. 대개 7명 안팎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 중 ESG 관련 전문가가 꼭 한두 명씩은 있었다. 이런 분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회사 내부인보다 훨씬 더 깊은 전문성을 갖고 있어 논의의 수준이 매우 깊다.

반면, 한국 그룹사 사외이사는 대부분 대학교수나 변호사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미국 상장사 이사회 구조에 익숙한 해외 투자자들이 보기엔 한국 이사회, 특히 사외이사들의 ESG에 대한 전문성이나 이해도, 관심이 낮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는 틀린 말도, 정확하게 맞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그룹사 이사회 구조의 특징을 좀 더 감안해 줬으면 한다. 오히려 한국적 현실에선 이사회보다는 CEO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ESG 이슈를 비롯한 지속가능성 이슈를 책임지고 다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배터리 업계 최초로 RMI에 가입하고 RSBN의 경우 아예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향후 추가적인 글로벌 이니셔티브 가입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영어로 ‘부엌에 있지 않으면 메뉴판 위에 오르는 신세가 될 거다(You are either in the kitchen or on the menu)’라는 표현이 있다. 뭔가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전체 틀을 만드는 일부터 같이하지 않는다면 결국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지금 우리 기업들이 놓인 상황이 딱 그렇다. 속도의 문제일 뿐 어차피 모든 회사가 기후변화, 환경, 책임 있는 원재료 조달 등 ESG 이슈에 신경을 쓰게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할 거라면 떠밀려서 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리드해 나가는 편이 낫다. RMI 가입이나 RSBN 발족은 모두 그런 맥락에서 내린 의사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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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무 이니셔티브에나 가입해선 안 된다. 시간과 비용, 자원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선 당연히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LG화학이 RMI나 RSBN에 주목했던 이유는 이미 지난 2016년부터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코발트 채굴 과정에서의 아동 노동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책임 있는 공급망 구축에 대한 니즈가 매우 시급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의사결정을 내릴 때 핵심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한 전략적 로드맵하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경영 철학과 로드맵, 그에 따른 실행 계획과 과제가 한 방향으로 정렬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면 자칫 일회성으로 그치기 쉽고, 결국 별 성과도 없이 쓸데없는 노력만 허비한 결과를 낳기 쉽다.

앞으로도 LG화학은 지속가능성 전략 로드맵 하에 다양한 글로벌 이니셔티브 참여 기회를 모색할 방침이다. 올해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인증 획득을 염두에 두고 세계경제포럼(WEF)의 하위 분과 플랫폼인 세계배터리동맹(Global Battery Alliance, GBA)에 가입할 계획이다. 오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한 LG전자의 경우 고효율 가전제품을 활용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CDM 사업을 통해 매년 16만 톤 안팎의 공인인증감축량(Certified Emission Reduction, CER)을 발급받고 있다.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으로도 탄소감축 인증을 받는데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전기차 제조업체, 더 나아가 전기차 가격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제조업체에서 탄소감축 실적을 인정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현재 UNFCCC의 CDM 사업 방법론에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나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교체하면서 발생되는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정하는 방법론9 이 등록돼 있다. 하지만 감축분에 대한 소유권이 자동차 회사(OEM)에 귀속되는 구조여서 배터리를 납품하는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대한 감축 실적 인증과 관련한 근거는 전무한 상태다.

이에 따라 LG화학은 향후 GBA에 가입해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 안에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탄소 감축 효과를 어떻게 계산하고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한다는 계획이다. WEF의 하부 분과 개념인 GBA는 배터리 제조사, 원소재 기업, 자동차 회사, 국제기구, 비영리단체 등 70여 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배터리 산업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민관협력 플랫폼(public-private collaboration platform)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국제적 논의의 장을 펼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UNFCCC로부터 신규 CDM 방법론과 사업 승인을 받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한 만큼 국제적 공조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LG화학에 와서 놀랐던 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점이 많은 회사라는 사실이었다. 특히 기술의 깊이나 직원들의 역량, 실행력 이 세 가지는 3M보다 훨씬 낫다. 작년 8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강한 회사를 더 강하게(Building strength on strength)’ 만들겠다고 얘기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아쉬운 점은 좀 더 글로벌한 시각과 열린 마인드다. 기본적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기술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회사인 만큼 글로벌 이니셔티브 가입 등을 통해 글로벌 역량을 강화해 나간다면 훨씬 더 시너지를 내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3M을 그만두고 LG화학에 오기로 결심한 이유도 우수한 한국 기업들이 좀 더 글로벌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을 포함한 글로벌한 경영 철학과 기법을 공유해 LG화학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4호 Beyond e-learning 2021년 0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