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4. 크리에이티브 산업 시대의 도래

창의성으로 경제적 효과
‘오리지널리티’에 부가가치 입혀라

289호 (2020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개인의 창의성에서 나온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고용 및 부를 창출하는 분야,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말한다.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창의력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오리지널리티(1단계)를 콘텐츠(2단계), 서비스(3단계), 경험(4단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예술, 그중에서도 시각예술은 이 오리지널리티의 단초를 제공하며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 아트 마케팅: 무라카미 다카시, 쿠사마 야요이 등 일본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루이뷔통
- 아트 스폰서십: 영국 테이트 모던 전시 후원으로 로고 광고 및 VIP 유치 효과를 거둔 유니레버
- 글로벌 아트시장: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부유층 고객 확보하고, 해외 시장 진출에 도움받은 UBS



지난 10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산업(creative industry)은 글로벌 화두였다. 이 단어를 정부 차원에서 처음 정의한 나라는 영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한때의 제국, 영국이 4차 산업혁명의 진입로에서 눈길을 돌린 곳이 바로 크리에이티브 산업이었다. 영국의 문화관광부인 DCMS은 2000년 크리에이티브 산업을 두고 ‘개인의 창의성과 기술 및 재능을 근원으로 하는 산업’이라고 정의했다. 즉, 개인의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고용 및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 혹은 창출할 가능성(possibilities)을 포함하는 분야라고 본 것이다. 아이디어나 사상 그 자체보다도 ‘경제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의 여부로 이 분야를 정의했다.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느냐가 이 산업의 주된 관심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영국 정부는 정부의 역할이 직접 경제적 생산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경제 구조(framework)를 구축하고 기업들이 경제적 생산 효과와 가치를 극대화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봤다. 이런 인프라를 토대로 창의와 혁신을 양성해야 문화적 다양성과 경제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이처럼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가치에 주목한 주인공은 15년간 영국의 문화부 장관을 지낸 전설적인 인물,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다. 스미스 장관은 이 산업을 광고, 영화&비디오, 건축, 미술관 & 박물관, 공연예술, 패션, 출판, 공예, 소프트웨어 디자인, TV 라디오, 컴퓨터, 게임 등으로 정리하고, 이를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했다. (그림 1) 총체적인 크리에이티브 산업 생태계를 압축해 그린 것이다. 다이어그램의 중심에는 창의력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있다. 나아가 이 그림은 각 분야의 오리지널, 즉 ‘날것’들이 어떻게 ‘콘텐츠(2단계)’로 발전하고, 이 콘텐츠가 어떻게 ‘서비스(3단계)’가 돼 새로운 ‘경험(4단계)’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스미스 장관은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핵심이 되는 오리지널이 ‘예술(Art)’에서 나온다고 지목했다. 예술이 가진 유일성이 창의적 사고의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크리에이티브의 중심부로 떠오른 ‘시각예술’

이처럼 예술은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시작점인 ‘오리지널’의 단초가 된다. 아티스트라는 개인의 창의성, 그리고 여러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오리지널리티의 핵심부에 예술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다양한 오리지널의 콘텐츠화는 IP를 이루고,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근간이 된다. 그런데 최근 예술 경영 분야에서는 넓은 의미의 예술이 아닌 이보다 좁혀진 시각예술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예술 경영은 대중 시장을 가지고 있는 공연예술 경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매우 큰 발전을 보인 뮤지컬 시장이나 K-POP 매니지먼트, 한류와 함께 커지는 시장이 있어 예술 경영의 초점이 대개 공연예술에 맞춰졌다. 반면, 시각예술 분야는 산업의 핵심부에 있는 국내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이 여전히 공공 부문의 지원이나 비영리재단의 운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간과됐다.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는 일반적인 시장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대규모 컨벤션 산업과 같은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의 발전도 더뎠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예술 경영 분야가 빠르게 크리에이티브의 중심부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첨단을 지향하는 최첨단(cutting edge) 속성이 있고, 시대를 앞서가는 아방가르드적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대중화를 ‘기꺼이’ 꺼려 왔다. 그런데 이런 속성들이 새로운 소셜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희소성과 상징성을 갈구하는 Z세대, 혹은 S(Screen)세대라 부르는 젊은이들의 관심이 이 미술과 디자인 산업에 집중적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각예술이 신세대와 교감하고, 새로운 잠재 고객들을 잡기 위해 전략적 포지셔닝을 변경해야 하는 때가 왔다.

이에 지금까지 발전이 더뎠던 시각예술 경영에 있어서 새로운 인사이트가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3가지 주제를 소개하려 한다. 첫째는 아트 컬레버레이션으로 소개되고 있는 ‘아트 마케팅’, 둘째는 이 같은 협업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한 ‘아트 스폰서십’이다. 다음으로는 2000년대 이후 사상 최대의 부흥기를 누리고 있는 글로벌 아트 시장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각예술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
1. 아트 마케팅
아트 마케팅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예술가가 기업 영업의 가치사슬에 관여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대표적인 브랜드 전략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이 가진 고유성과 희소성을 의류, 가방 등 구체적인 ‘콘텐츠’로 구현하고, 마케팅 등 ‘서비스’에 접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아트 마케팅을 이야기할 때면 늘 대표 선례로 2000년대 루이뷔통이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도쿄 긴자에 낸 플래그십 매장이 꼽힌다. 물론 1980년대 BMW가 앤디 워홀과 협업한 적도 있고 기업과 아티스트가 브랜딩을 위해 손잡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 루이뷔통 플래그십 매장의 경우 특정 기업이 세계적인 규모로 ‘아트 가방’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아트 마케팅의 대표 격으로 지목된다. 당시 팝 아티스트 다카시는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와 루이뷔통의 컬래버레이션은 2002년 당시 루이뷔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의 제안으로 처음 성사됐다. 그리고 2003년에 대중에 공개된 이들의 ‘멀티 컬러 모노그램’ 라인은 또 한 번 큰 성공을 거두며 아트와 패션이 조화된 성공 사례의 대명사가 됐다. 다카시는 이를 계기로 고급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게 됐다.

이후에도 루이뷔통은 일본 작가인 쿠사마 야요이와 협업을 이어 나갔다. 루이뷔통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야요이 회고전에 메인 후원사로 나섰고, 야요이와의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회고전 오픈과 함께 공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60년대부터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야요이는 그녀가 경험하는 환영을 끊임없이 반복되는 점, 물결, 괴상한 형태,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신병을 앓았던 이력만큼이나 특이하고도 독보적인 예술적 영향력을 가진 작가였다.

루이뷔통은 일반 가방의 무려 4배가 넘는 초고가의 다카시 루이뷔통 가방을 글로벌 시장에 유통했다. 이런 희소성과 상징성 때문에 다카시의 가방은 이제 경매에서 거래되는 가방이 됐다. 그뿐만 아니다. 2014년 두 번째로 진행한 야요이와의 협업 당시 루이뷔통은 글로벌 플래그십 매장을 완벽하게 야요이 개인의 작품 공간으로 바꿔 버렸다. 야요이의 작품 또한 매우 고가였지만 그녀 특유의 패턴이 들어간 가방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루이뷔통은 시대의 흐름을 읽은 아트 마케팅을 통해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루이뷔통에 이어 지금도 수많은 기업이 아트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이 시도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루이뷔통에서 배울 점은 일본이라는 아시아 특정 국가에서 떠오르던 예술가가 보인 크리에이티브 산업화의 가능성, 오리지널리티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글로벌 규모의 마케팅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브랜드는 파격도 주저하지 않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지만 야요이의 정신병 이력만큼이나 독특했던 점, 선, 면, 색 등의 크리에이티브한 요소를 자신들의 제품에 접목하고, 고가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는 창의성의 지역적 확장, 부가가치 극대화라는 예술계 흐름에 완벽하게 부합한 사례였다. 그리고 이 같은 전략적 포지셔닝은 개별 작품에 엿보인 작가의 삶과 세계관으로부터 크리에이티브 산업화의 기회를 포착한 루이뷔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제이콥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아트 마케팅은 안 하면 모르겠지만 일단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그 가치를 최고로 만끽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아티스트와 함께 진행하는 모든 활동이 아트 마케팅에 해당될까? 대답은 ‘아니요’다. 창의성의 산물인 예술과 결부된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가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트 마케팅이라 볼 수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품 및 서비스로 연결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의미다. 그 예로 소개할 만한 것이 롱샴과 트레이시 에민의 컬래버레이션이다. 트레이시 에민은 1980년대 영국에 혜성처럼 등장한 일군의 젊은 작가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 중 한 명이다. 이 시기 현대미술의 중심을 뉴욕에서 영국으로 옮겨 놓은 중요한 작가였다.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할 개인적인 이야기, 예컨대, 계속된 자살 기도와 강간, 낙태 등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그의 가장 아이코닉한 작품으로는
1995년 공개한 ‘나와 함께 잔 모든 사람(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이 있다. 제목 그대로 지금껏 그와 함께 밤을 보낸 102명의 남자들 이름을 텐트에 새긴 작품이다. 그 이후로도 그는 테이트 브리튼에서 선보인 ‘나의 침대(My Bed)’라는 작품에서 지저분한 침대와 헝클어진 이불, 무질서하게 놓인 보드카 병, 담뱃갑, 재떨이 등의 도발적인 요소들을 선보이며 1999년 터너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예술계의 악동으로 알려져 있던 에민은 2004년과 2005년 롱샴과 협업해 그의 작품을 가방으로 선보였다. 그녀는 롱샴의 가장 대표적인 컬렉션인 플리아주 가방에 자신이 어린 시절 사용했던 담요, 원피스, 커튼, 쿠션 등을 덧붙이고, ‘always me’ ‘international woman’ ‘you said you loved me’ ‘alone’ 등의 문구를 새겼다. 자신이 삶과 사랑을 통해 느꼈던 이야기들을 작품 속에 담은 것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비로소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롱샴과 에민의 컬래보레이션은 크리에이티브하지만 아트 마케팅의 전형적인 사례로 보긴 어렵다. 위의 루이뷔통 사례와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에민은 외설적인 성적 비유와 파격으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가다. 얼핏 생각해도 이런 구설수는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샴은 그녀를 선택했고,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매출 증대나 평판 제고보다는 예술계에 과감한 화두를 던지는 길을 택했다. 단기적인 경제적 손실과 이미지 타격까지 감수하면서 특정 작가의 행보를 지지하고 예술계 내 담론을 형성한 것이다. 롱샴은 창의적인 요소를 그저 보기 좋고 예쁜 디자인이 아닌 사회적인 메시지와 철학으로 전달했다. 그러나 이는 뛰어난 예술적 창의성의 산물일 뿐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트 마케팅보다 아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가깝다.



2. 아트 스폰서십
아트 협업이 후원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 바로 아트 스폰서십이다. 언뜻 보면 스폰서십 역시 경제적인 가치 창출과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예술이 가진 크리에이티브한 이미지를 흡수해 기업의 후광효과를 극대화하고 타깃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다. 중세 이후 현대까지 예술 발전의 밑바탕에는 항상 기업 후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메세나(Mecenat)’로 불리는 기업 후원의 전통은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비롯한 예술 대가들을 지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메세나라는 용어 자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데이비드 록펠러 체이스맨해튼은행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 중 일부를 문화예술 분야에 할당하자’고 건의한 것이 계기가 돼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고, 메세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다양한 기업이 예술 활동 후원자로 적극 참여하면서 기업과 예술이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미술 분야에서도 미술관 건립과 운영, 전시, 행사, 작가 후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업의 후원이 빠지지 않은 요소가 됐다. 가령, 영국 테이트 모던은 2000년 개관부터 매년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실상부 런던 예술계의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다. 특히 가로 23m, 깊이 155m, 높이 35m에 달하는 거대한 보이드(Void, 오픈 천장) 공간인 터바인 홀(Turbine Hall)은 거대한 설치작품을 보일 수 있는 곳으로 테이트 모던 내에서도 중요한 전시장이다. 미술관을 건립할 때부터 테이트 모던은 기업의 후원을 기획했으며, 개관 후부터 2012년까지 유니레버로부터 약 60억 원 규모의 지원을 이끌어 냈다.

유니레버의 지원 덕분에 이 공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이 마음껏 비전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됐다. 옛 발전소 시절 전기발전기가 놓여 있던 터바인 홀에서 진행되는 ‘유니레버 시리즈: 터바인 제네레이션 (The Unilever Series Turbine Generation)’ 전시에는 지금까지 총 24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2000년 터바인 홀 특별전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탑 작품인 ‘나는 한다, 되돌린다, 재생한다(I Do, I Undo, I Redo)’를 선보였고, 이후 아니시 카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웨이웨이, 카스텐 횔러 등 작가들의 작업도 이곳에서 소개됐다. 본래 미술관이 지어진 초기에는 유니레버사가 5년만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전시가 인기를 끌면서 2012년까지 연장됐다.




그렇다면 유니레버는 이 같은 후원을 통해 어떤 경제적 효과를 거뒀을까? 이 회사는 테이트 모던과의 협력에 힘입어 ‘사람들의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내자’는 비전을 실현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유니레버가 테이트 모던에 제안한 수십억 규모의 스폰서십은 당시만 해도 상당히 드물고 파격적인 사례였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스폰서십을 가능하게 했던 건 21세기 메디치가 되겠다는 유니레버의 비전도 있었지만 이 같은 후원이 결과적으로는 더 큰 광고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확신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유니레버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목격하고 있다. 당시 BBC에 1분 동안 광고를 내보내는 비용은 약 18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 테이트 모던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릴 때마다 그 내용은 BBC 메인 뉴스에서 대서특필됐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미디어에서도 앞다퉈 전시 내용을 조명했다. 단지 광고비 측면만 봐도 유니레버가 큰 이익을 본 셈이다. 또한 터바인 홀 지원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인식 제고, 소비자 개발 효과 등 스폰서십 비용의 150% 이상 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아가 직원 교육이나 VIP 유치 등에도 도움이 됐다.

이렇듯 기업은 후원을 통해 예술의 후광 효과를 등에 업고 타깃 고객층에 도달할 수 있다. 대체로 부유층 고객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금융과 명품 기업이 예술 후원에 많이 나서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가장 적극적이다. 현대차는 2014년 영국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과 11년 장기 후원 계약을 체결해 65억 원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으며 201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10년간 후원 계약을 맺었다. 또한 2015년엔 미국 서부 최대 미술관인 LA카운티미술관(LACMA)과 10년 후원 파트너십도 맺었다.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한 축을 이루는 시각예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3. 글로벌 아트 시장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산업 종사자들이 집결하는 공간이자 축제, 21세기 시각예술 경영에서 빠질 수 없는 교류의 장이 바로 아트 시장이다. 시각예술이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시작점에서 ‘콘텐츠’ ‘서비스’로 진화하고 나면 그다음 종착점에는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경험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시회, 갤러리, 박물관 등의 공간이다. 이런 경험 중에서도 대규모 아트 페어의 탄생은 전 세계 예술가와 수집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기회를 제공했고, 미술 산업의 가치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아트바젤은 1970년 스위스 바젤의 갤러리스트 에른스트 바이엘러, 트루디 브루크너, 발츠 힐트에 의해 처음 조직됐다. 개최 첫해부터 10개국 90개 갤러리 및 30개 예술 출판사가 참여했고, 1만6000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했다. 또한 이 행사는 2002년부터 마이애미 비치에서, 2013년부터 홍콩에서도 열리기 시작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는 어느새 미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아트바젤 홍콩은 홍콩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일조했다. 2008년, 당시 바젤 아트페어의 디렉터였던 사무엘 켈러가 야심 차게 홍콩 로컬아트페어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시아 미술 시장이 존재감을 가지게 됐다. 이제 아트바젤 홍콩은 공공연히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행사가 됐고, 작년에만 32개국의 247개 갤러리가 참여하고 약 8만 명이 방문했다.

이 아트바젤은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가진 무궁무진한 고용 및 부의 창출 가능성을 단기간에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유럽 갤러리들이 상업적인 편의를 위해 시작한 행사가 어느새 단기간 진행되는 행사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대형 시장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아트바젤의 등장은 제도권 전시와 공공 미술이 중심이었던 주류 미술 패러다임에 새로운 중심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작품의 가격도 놀랍다. 2019년 아트바젤 홍콩을 보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국제 중견 작가들의 작품가는 1억 원을 훌쩍 넘어섰고 빌럼 데 쿠닝의 작품은 오프닝 3시간 만에 370억 원에 거래됐다. 행사는 5일 만에 매출 1조 원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준비 기간만 봐도 세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가 얼마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지 알 수 있다. 일하는 사람만 해도 몇천 명이다. 개막 전에 작품 수만 점을 옮기는 운송업체부터 운송 후 작품을 행사장 안으로 옮기는 배달업체, 작품을 실제로 부스 벽에 거는 업체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다. 행사 기간 동안에는 몇만 명에 이르는 방문객을 수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숙소들이 모두 매진되며, 이에 따라 주변 상권은 자연히 활기를 띤다. 행사 기간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및 파티가 열리기 때문에 도시 내 호텔 및 공간에서 흥미로운 이벤트를 찾아볼 수도 있다. 방문객 및 거주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매해 아트바젤 기간이 도면 그 장소 주변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신진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다양한 장르의 위성(satellite) 페어들이 생겨난다. 아트바젤이 단순 문화예술 행사의 범주를 뛰어넘어 도시 전체에 영향을 주는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1994년부터 이 아트바젤의 리드 파트너를 맡고 있는 스위스의 다국적 투자 은행 UBS는 이 크리에이터들의 축제를 계기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핵심 후원사로서 아트바젤을 스폰서하면서 잠재 고객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희소한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UBS가 아트바젤이라는 경험을 공유한 신규 고객층을 발굴하는 계기가 됐다. UBS는 매번 행사가 열릴 때마다 아트바젤 기간 내 전시장 곳곳에 로고를 노출하며, 대담회나 VIP 라운지 등 부대행사나 시설을 통해 아트바젤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아트바젤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는 독일계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대표 후원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렇게 은행들이 글로벌 예술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후원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업의 브랜드 품격을 높일 수 있다. 둘째, 고가의 상품인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접점을 넓힐 수 있다. 실제로 미술품 구매층과 은행의 VIP는 ‘고액 자산가’로 상당 부분 중첩된다. 예술계의 고객이 후원 은행의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일례로, UBS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함께 ‘구겐하임 UBS 맵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지역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UBS의 해외 시장 진출에 큰 도움을 줬다. UBS는 공식 인터뷰를 통해 구겐하임과의 프로젝트를 계기로 해당 지역의 부유층 고객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프리즈 아트페어를 후원한 도이체방크 또한 이 사업을 통해 ‘독일 은행’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 세계 고객을 유치하고 ‘글로벌 뱅크’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됐다.

이처럼 이제는 예술, 그중에서도 시각예술이 산업 전역에서 가치를 만들고 돈을 버는 시대가 됐다. 인간 창의성의 산물인 예술이 강력한 오리지널리티의 원천이 돼 패션 등 콘텐츠와 결합하고, 마케팅 등 서비스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제는 과거 공연예술에 가려져 대중의 관심에서 소외돼 있던 시각예술까지 그 희소성과 상징성, 럭셔리 프리미엄 이미지와 브랜딩 효과 등이 부각되면서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중심부로 떠올랐다. 아트 마케팅과 아트 스폰서십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아트 행사를 비롯해 공공미술, 뮤지엄 콘텐츠 등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장소와 관련된 기억을 만들어주고 여행이나 관광 등을 촉발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간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의 경영자들도 총체적인 크리에이티브 산업 생태계를 이해하고, 미술을 단지 추상적인 예술로만 감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각 산업과 결합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개인의 창의성과 기술, 재능을 개인을 넘어선 차원의 고용과 부로 연결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존재 이유다.


필자소개 이지윤 숨프로젝트 대표 leejiyoon1@gmail.com
이지윤 대표는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런던대 골드스미스대 미술사 석사, 런던 시티대 미술관박물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런던대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20년간 런던을 기반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 아트디렉터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한국관 설립 코디네이터로 일하다 2001년 런던에서 글로벌 큐레이팅 사무소 ‘숨 아카데미 앤 프로젝트’를 설립해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를 잇는 국제적 현대미술 전시를 50회 이상 기획했다. 현대미술이 창조 산업의 핵심 개념이라 보고 관련 연구 활동을 해왔으며, 2011년부터 연세대 경영대학 겸임 교수로 ‘창조 산업과 예술 경영’에 대해 강의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8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2020년 11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