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성공과 실패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던
김우중 리더십이 남긴 것

289호 (2020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리더십에서 드러난 반면교사의 지혜
1. 교주고슬(膠柱鼓瑟)의 우를 범하지 마라
2.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위험성을 경계하라
3. 거안사위(居安思危)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4. 절차탁마(切磋琢磨)에 힘써라


경영 실패인가, 정책 실패인가. 시대를 앞서간 전문 경영자인가, 시대에 편승한 개발 독재 시대의 후진 자본가인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별세 이후 그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주지하다시피 김 전 회장은 1967년 단돈 500만 원으로 창업, 재계 2위의 대기업으로 끌어올린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에서 1999년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8조 원을 선고받은 악덕 기업인으로 추락했다. 일각에선 그의 개척가적 기업가정신을 그리워하는가 하면, 한쪽에선 ‘일그러진 기업 영웅’에 대한 복고풍 향수를 경계한다. 기획 해체설을 제기하는 음모론적 시각 역시 여전한 듯하다.

사람들마다 대우와 김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바로 대우그룹의 흥망사가 우리 경제사의 비극적 서사이자 아픈 상처라는 점이다. 대우는 글자 그대로 세계를 무대로 큰 집[大宇]을 지었지만 국가의 큰 우환[大憂]이 돼 몰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전 회장이 별세한 2019년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째 되는 해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못지않게 경제 위기설이 제기되고 수축사회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는 2020년 벽두, 우리가 대우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김 전 회장에 대한 일방적 칭송이나 비판을 뛰어넘어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냉정한 되새김질이다. 본 글에서는 김 전 회장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워야 할 점 및 대우가 남긴 업적과 흔적을 중심으로 리더십 측면에서의 교훈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열정과 도전정신의 화신, 김우중

김 전 회장이 공항에서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히고 잠에 곯아떨어진 모습, 공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 떼의 근로자들과 함께 현장을 순찰하는 모습은 그를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아직까지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김 전 회장에게 정면 반박하는 내용의 책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를 쓴 노동시인 박노해 씨조차 “당신은 여느 독점 자본가들처럼 봉건적이지 않으며, 격의 없이 모든 곳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이다. 눈물이 있고 인간미가 넘치고 지적 이미지를 형성해온 자본가”임을 전제하고 반박논리를 펴나갈 정도다.

김 전 회장은 체질상 술은 입에 한 방울도 못 댔고 골프도 치지 않았다. 성취가 유일한 낙이었고, 재미라고 해봤자 해외 출장 중 기내에서 학자와 문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그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그의 열정을 높이 산다.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구성원들과 현장에서 격의 없이 소통하는 소탈함이다. 1988년 대우조선 노사분규 당시 현장 직원으로 근무한 K 씨는 “회장이 옥포에 내려와 직원들과 같이 밥을 먹고 뒹구는 것을 보며 반발심이 사라졌다. 그 후부터 자발적인 골수 ‘대우맨’이 됐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인재경영을 펼치고, 현장 소통 경영에서 늘 가지 않은 길을 열어 보임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당시 기업들이 꺼리던 운동권 출신 인재를 적극 포용한 것이나 대졸 여성 직원, 기혼 여사원 채용을 처음 실시한 것도 그 예다. 인재 존중과 파격적 처우 등을 통해 몸을 사리지 않고 오지에 뛰어들게 한 리더십은 대우의 가장 강력한 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김우중 리더십의 대표 브랜드는 세계 경영이다. 대우란 문자 그대로 세계를 무대로 큰 집을 지었다. 1996년 김 전 회장의 해외 출장에 동행했던 이성낙 가천대 명예 총장(당시 아주대 의료원 초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보건의료 프로젝트 논의를 하러 갔던 때였습니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좌석 아래 시트를 깔더니 금방 잠이 드시는 겁니다. 착륙하기 1, 2시간 전 일어나 채비를 하시더니 현지 프로젝트 내용을 설명해주시더군요. 그 후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졌지만 모든 면에서 한 번도 당장의 이익이나 문제점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늘 10년 후 미래에 필요한 일을 하라는 기준만을 이야기했지요.”

조동성 인천대 총장은 『김우중의 경영을 통해 우리가 물려받는 유산들』에서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론의 방향 설정부터 잘못됐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반박한다. 조동성 총장은 “방향은 옳았으나 자금 조달 효율성과 투명성의 방식이 결정적 패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대우실업을 창립한 1967년에는 세계적으로도 국제화, 세계화라는 용어가 흔치 않았다. 본격 이슈로 등장한 게 1980년대이고, 국내에선 그보다 늦은 1990년대 중반에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란 단어를 처음 쓰면서 일반의 이목을 끌었다”며 미국보다 최소한 10년 전, 한국보다는 무려 20여 년 전에 세계화를 선언하고 나선 김 전 회장의 선구적 혜안을 높이 평가한다. 요컨대, ‘핵심 기술과 역량 없이 섣부르게 해외 시장부터 진출한 것 자체가 예고된 좌초였다’는 식의 공격은 오늘날의 눈으로 당시를 바라보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조동성 총장은 또한 “선(先) 핵심 기술 확보, 후(後) 해외 시장 진출은 서구학자들이 만든 전통 이론이다. 독점능력이 없는 나라의 기업은 해외 시장에 진출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이런 논리면 후진국은 평생 선진국 기업들과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숙명론으로 빠진다”며 “(당시 대한민국 기술 수준으론 선진국에 진출하기 힘들었으므로 틈새시장을 찾아) 아프리카, 동구권의 후진국으로 진출을 꾀한 방향 설정은 기업가정신의 발현으로 높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투자를 늘림으로써 기술력을 높이는 역순의 접근 방식은 개도국이었던 우리 실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오늘날 1인당 국민총생산(GNP) 3만 달러 시대의 눈으로 50년 전인 1970년대 1인당 GNP 200달러 시대의 경영 방식을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김 전 회장의 대표 캐치프레이즈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다. 그가 ‘국민 멘토’로서 전성기 때 낸 책 제목인 동시에, 대우그룹 해체 후 해외에서 발간한 회고록의 부제 모두 이 문장을 취하고 있다. 이 글귀를 볼 때마다 한자 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연상된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목표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사람이 놓치기 쉬운 게 올바른 절차와 과정의 수행이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도행역시(倒行逆施)’다. 차례를 거꾸로 시행하다는 뜻으로 도리에 순종하지 않고 일을 행해 상도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에 쫓기는 등 상황에 한계가 있으니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하고자 하는 일을 추진한다는 조급성이 담겨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정의 옳고 그름은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다. 김 전 회장이 추진한 세계 경영의 빛과 그림자에 딱 적용되는 말이다. 그가 세계 경영을 선도하면서도 최소한의 회계 투명성을 지켰더라면, 정도(正道)경영을 했더라면… 역사에서 “만약 ∼했더라면(what if∼)”이란 가정은 부질없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아쉬움이다. 그의 재산 국외 도피 혐의 문제도 여전히 석연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이 시대의 한계를 넘어 펼쳐 보인 세계 경영 정신의 의미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오늘날 이 같은 도전의식과 다음 세대에 대한 사명의식을 갖고 뛰는 기업가, 열리지 않는 시장을 두드리며 온몸으로 부딪히는 열정적 리더,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선각자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무대로 지은 큰 집[大宇], 나라의 큰 근심[大憂]이 되다

역사란 무대에서 실패한 사람은 대역죄인이다. 대역(大逆)이란 틀렸다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의미다. 리더의 요건에서 시대정신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이유다. 열 번의 승리를 거뒀더라도 마지막 승부가 전체 평가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기업사에서 경영자에 대한 평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우그룹이 통째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3개월 후인 1999년 11월, 김 전 회장은 고별사를 통해 “제가 기억 속에 묻히는 이 순간을 계기로 대우와 임직원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기업 환경이 앞날을 보장해주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때 백년이 지속될 튼튼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승승장구하던 김 전 회장이 30여 년 만에 추락한 데서 우리가 반면교사 삼을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교주고슬(膠柱鼓瑟)에 대한 경계다. 교주고슬은 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풀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어떤 규칙에 얽매여 융통성이 없음을 뜻한다. 그는 압축성장에서 수축성장으로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경영내실을 다지기는커녕 계속적으로 차입경영을 지속하려다가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 부담을 초래했다. 외부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차입을 통해서라도 규모를 계속 키우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것을 조직 내부에서 보다 빨리 제어하지 못했던 게 대우그룹 몰락을 초래한 결정적 패인이 됐다.

사실 김 전 회장만 몰랐지 대우 내·외부에선 그룹이 몰락하기 오래전부터 불안한 징후를 느끼고 있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하는지, 돈이 어디에서 흘러들어오는지, 얼마만큼이나 계속해서 흘러들어올 것인지는 늘 불안한 화두였다. 당시 해외 은행에서 근무한 모 인사는 “김우중 회장은 돈을 빌릴 줄만 알았지 갚을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라고까지 평했다. 김우중식 세계 경영의 핵심은 과대포장, 즉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과도한 차입과 저돌적인 기업 인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실패학의 대가 시드니 핀켈슈타인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실패한 리더의 공통점은 나태함이나 급격한 상황 변화, 도덕적 해이나 자금 경색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성공 경험의 함정 때문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김 전 회장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늘 10년 후 미래 경영을 부르짖었던 그는 바로 코앞의, 발밑의 시대 변화도 읽지 못해 좌초했다. 압축성장기의 경영 방식을 수축성장기에도 여전히 유지한 데서 온 예고된 실패였다. 실제로 리더십 분야의 대가인 워런 베니스 역시 경제 호황기나 고도 성장기엔 기업 제국을 건설하는 ‘제국 조성자’ 유형의 리더십이 유리하지만 저성장기에는 ‘문제 해결사’형 리더십이 각광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던 김 전 회장은 과거의 성공에 취해 기존 방식만을 고집하다 위기를 키웠다.




둘째,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위험성이다. 경영은 리더가 뛰는 것이 아닌 사람을 통해 일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우그룹의 경우 회장이 1년에 200일 이상을 해외에 나가 직접 상대국의 원수와 담판을 벌였다. 이런 식의 리더십은 독보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독이 됐다. 김 전 회장 1인에게 의사결정을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5명의 소규모 무역상에서 재계 2위의 대기업이 될 정도로 커졌지만 김 전 회장은 규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우실업 때의 리더십 방식을 고수했다. “만약 대우에 있는 직원 중에 김우중이 죽일 놈이라고 욕하면 데려오십시오. 내 배를 가르겠습니다. 솔직한 얘기로 제가 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많이 일합니다”라고 자부하던 그는 크고 작은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다 관여했다. 30여 년간 현업 최고봉에서 일한 자수성가 리더 앞에서 임원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다른 의견을 표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우 계열사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외국인 고문을 영입해야 하는 일이 있었어요. 사실 그룹 차원에서 보면 지엽적인 일인데도 김 회장이 직접 면담을 했습니다. 주말에도 줄줄이 미팅이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죠”라고 회고했다.

수성은 창업보다 어려운 법. 비록 말 위에서 세상을 얻더라도, 얻고 나서는 책상 앞에서 이끌어야 한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말 위에서 현장을 쉬지 않고 뛰었다. 초심이 변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업그레이드는 더 중요하다.

김 전 회장은 그의 어록과 자서전을 통해 경영자와 장사꾼의 차이를 성취와 이익 추구의 차이로 구별한다. 소유보다 성취를 중시한 점은 존경받을 만하나 사람을 통해 시스템을 갖춰 일을 하기보다 본인이 뛰는 방식을 택한 것은 결정적 한계다.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된 1999년까지 김 전 회장의 총 출장 거리는 954만243㎞였다. 지구를 무려 240바퀴 돌아다닌 이 엄청난 기록은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시에 시스템 경영의 부재라는 한계를 보여준다. 리더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많고 현장은 곳곳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과 기준 설정이다. 원의 중심인 리더가 떠돌면 조직은 흔들린다. 리더가 구성원보다 더 많이, 더 바쁘게 일하는 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 경계할 만한 일이다. 리더가 시스템이 작동하게 하지 않고 본인이 뛰려고 할 때,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방법에 매달릴 때 사달은 벌어진다.

국내 기업사에서 김 전 회장은 전무후무한 대중적 스타 경영자였지만 진정한 기업가라 하기엔 아쉬움이 있다.

리더인 당신은 지금 열심히 뛰고 있는가, 열심히 뛰게 하고 있는가. 한비자는 일찍이 말했다. “삼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



셋째, 성공의 정점일수록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가치다. 대우그룹이 급속히 몰락한 이유 중에는 거듭된 성공으로 인한 둔감함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재벌 트로이카였던 현대, 삼성, 대우 중 대우가 외환위기의 직격타를 고스란히 맞았다. 여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가령, 삼성은 이른바 ‘한국비료 헌납사건(1966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일본 미쓰이그룹과 공모해 사카린을 건설 자재로 위장해 들여와 판매하다 들통 난 후 회사를 국가에 헌납한 사건)’으로 일찌감치 위기를 맛봤고, 현대의 경우 1980년 정치권력을 장악한 군부 정권의 강요(중장비 산업 구조조정)로 현대양행을 눈물을 머금고 대우에 매각했다. 이처럼 다른 재벌그룹은 일찌감치 위기상황을 경험하며 맷집과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키웠지만 대우는 거듭되는 성공신화에 도취해 몸집만을 키우며 맷집을 다지는 채비를 덜 했다.

위기에 처한 기업이 공통적으로 자주 하는 실수는 빠르게 결정하지 않고 방어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반대로 위기에서 턴어라운드한 기업의 공통적 대처는 빠르고 공격적인 조치다. 구조조정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알바레즈앤마살(A&M)의 브라이언 마살 회장이 리먼브러더스 부도 당시 리먼 이사회에 던진 질문은 3가지였다. 현금 유동성, 파산 신청에 대한 계획,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 가능한 시간이었다. JAL은 계속된 실적 악화로 2010년 파산 직전엔 빚이 30조 원에 달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구원투수로 등장, 매머드 구조조정 계획을 1년 만에 전격 실시해 전 직원의 3분의 1을 내보냈다. 이때 그가 한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는 말은 유명하다.

결국 타이밍, 실기(失機)의 문제였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책 『위기를 쏘다』에서 “대우가 해체된 건 시간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1999년 7월까지 대우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 자산 매각, 외자 유치 등에서 5대 그룹 중 꼴찌였다”고 밝히고 있다. 리더의 긍정적 자신감은 필수다. 하지만 장애물을 직면하지 않은 채 외치는 자신감은 무모함일 수 있다. 편안한 상황이 거듭될수록 위기의 신호를 예민히 읽어 내부를 단도리하고, 외부 위기가 닥쳤을 때는 신속히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넷째,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중요성이다. 절차탁마란 상아나 돌 따위를 깎고 갈고 쪼고 갈아서 빛을 내는 것이다. 요즘 말로 품질 경영, 브랜드 관리에 해당한다. 대우는 해외 시장 개척에서 1위를 달렸지만 정작 1등 상품은 만들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은 평소 “기술은 얼마든지 사 올 수 있다”는 지론을 고수했다. 그는 “은퇴 후 품질경영에 나서겠다”고 말할 정도로 품질 문제는 후순위로 미뤄두고 시장 개척에 중점을 뒀다. 이에 따라 대우는 ‘최초’ ‘최대’ ‘최다’의 양적 지표는 몰고 다녔지만 최고의 질적 지표에서 뚜렷한 브랜드력을 갖지 못했다.

같은 시기, 삼성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신경영을 선언하고 핸드폰 화형식을 벌이는 등 일류제품 도약을 위한 극적 조치를 취했다. 한때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후지필름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신성장 전략을 수립해 추진한 데 있다. 핵심 역량, 자체 브랜드 확보는 생존은 물론 재기의 필수 조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우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남긴 것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전작라(門前雀羅)로 썰렁하다”는 옛말이 있다. 권력과 금력에 따라 작동하는 인간 속성을 가리킨다. 8000여 명의 조문객이 문상했다는 김 전 회장의 장례식 풍경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김 전 회장의 리더십을 고찰하며 그의 크게 우월한[大優] DNA는 교육 분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를 성공한 기업인에서 일약 스타 경영자로 떠오르게 해준 것 역시 ‘국민 계몽 서적’으로까지 불렸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김 전 회장은 기업의 30년 영고성쇠를 맛본 뒤 2008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생의 마지막 10년을 청년 인재 양성 사업에 주력했다.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했던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글로벌 청년사업가)을 운영하며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취업이나 창업하려는 청년들을 선발해 교육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재 양성이야말로 김 전 회장이 가장 잘하고 즐거워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 전 회장은 “사람은 죽어도 기업은 남는다”는 의견을 줄기차게 피력했다. 아마 자신이 죽고 나서도 대우가 백년기업으로 살아남길 기대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지만 30여 년 만에 몰락한 대우그룹 사례는 기업의 영속성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대우는 ‘사라진 공룡’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 ‘대우 정신’이란 이름으로 DNA만이 가냘프게 계승되고 있을 뿐이다. 대우 DNA로 영속하는 곳이 교육문화 사업과 관련한 기관인 대우학원, 대우재단 등인 것이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필자소개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blizzard88@naver.com
필자는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여 년간 세계일보 기자로 일했다. 숙명여대 경영대학원 초빙 교수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해 리더십 인사이트를 찾는 글쓰기와 강의에 힘쓰고 있다.


도움 말씀 주신 분(가나다순)
강정호 전 코스닥 사장, 강창희 트러스트 포럼 대표(전 대우증권 전무), 신동기 VI금융투자 대표(전 뱅커스 트러스트 은행 상무),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전 아주대 초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



참고도서
1.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 저, 김영사 간, 1989)
2.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 김우중 회장의 자본철학에 대한 전면비판(박노해 저, 노동문학사 간, 1989)
3. 김우중, 신문배달원에서 세계최고 경영자까지(길인수 외 저, 이지북 간, 2005)
4. 위기를 쏘다: 이헌재가 전하는 대한민국 위기 극복 매뉴얼(이헌재 저, 중앙북스, 2012)
5.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신장섭 저, 북스코프 간, 2014)
6. 김우중 어록 : 나의 시대 나의 삶 나의 생각(김우중 저, 북스코프 간, 2017)
동아비즈니스리뷰 308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2020년 11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