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묻고 신하가 답하다: 세종-강희맹

인재는 언제나 있었다. 알아보지 못할 뿐…

293호 (2020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예나 지금이나 국가든 기업이든 경영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요즘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재는 언제나 있었다. 다만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인재로서 쓰지 못했을 뿐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인재를 외면하지 않았는지, 주관과 선입견에 빠져 인재의 진면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가까이에 있는 인재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조판서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조선의 최고인사책임자(CHO)로서 인사 전문가의 경륜을 보여준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1

요즘으로 말하면 수십 년 공직 생활을 하고 인사혁신처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런 그가 과거시험 응시자였을 때 쓴 글에는 어떤 생각이 담겨 있을까? 여기에는 젊은이다운 이상뿐 아니라 인재 선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아닌 선발 대상자로서의 관점이 담겨 있다.

1447년 음력 8월에 열린 별시(別試)2 로 가보자. 이날 세종은 응시자들에게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인재를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3 라는 시험 문제를 출제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인재를 찾아내서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냐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인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훌륭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운영할 사람이 없다면 소용없을 테니 말이다.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능한 리더들은 인재 확보를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

하지만 인재는 뽑고 싶다고 해서 그냥 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야 하고, 그 사람에게 적합한 임무를 부여하고, 그 사람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인재’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임무를 자각한 리더는 누구나 인재 등용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세종이 저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종은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 문제에 대한 응시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임금으로서 누군들 인재를 발굴해 중용하고 싶지 않겠냐마는 인재를 쓸 수 없는 경우가 세 가지 있다. 임금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 인재를 알아도 쓰려는 마음이 절실하지 못한 경우, 인재와 뜻이 맞지 않는 경우이다.”

우선,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란 무엇일까? 강희맹은 답안에서 두 가지 예를 들었다. “인재가 멀리 떨어져 있고 신망 또한 두텁지 않아서 본래부터 책임을 맡기고 일을 시킬 필요가 없다고 여기거나, 아니면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것을 말합니다.” A라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이 기업의 CEO가 신규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적임자를 찾는다면 경영전략실 등 주요 부서나 미리 만들어놓은 사내 핵심 인재 명단이 대상이 될 것이다. 수백㎞ 떨어진 지사나 힘없는 부서의 직원들은 아예 검토조차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도 문제다. 이 사람에 대해서 잘 안다는 선입관 때문에 그가 가진 능력과 잠재력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다. 따라서 임금은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장되는 인재들이 없도록 멀리,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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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인재를 알아도 쓰려는 마음이 절실하지 못한 경우’에 대해 강희맹은 “임금이 인재가 가진 능력을 평범하게 여기고, 인재에 대한 주위의 평가를 제대로 살피지 않으며, 등용했으되 의심을 품거나 일을 맡기되 전담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떤 사람이 인재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엇을 정말 잘하는지, 그 사람의 능력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또 그 사람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와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인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재와 뜻이 맞지 않는 경우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저 사람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고 그 능력을 인정한다고 해도 임금과 인재 두 사람이 꼭 힘을 합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희맹은 “임금이 도덕에 뜻을 두고 있으면 공명(功名)을 말하는 인재를 저속하다고 할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공명에 뜻을 두고 있으면 도덕을 말하는 인재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평가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흔히 리더는 자신의 관심사와 성향에 부합하는 인재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자신과 맞지 않으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일지라도 소홀히 대하거나 심하면 배척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임금은 주관적인 호불호를 버리고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인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강희맹의 생각이다. “임금이 마음에 맞는 사람만 등용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버린다면 사람들은 결국 임금이 좋아하는 것에 자신을 맞추려 들 것”이며 “임금이 숭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임금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 매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란 또 만만치가 않다. 모든 개개인이 저마다의 품성과 성격을 갖고 있듯이 인재의 모습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은 “인재의 종류는 여러 날을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한다고 해도 다 말하기 어렵다”면서 어떻게 하면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인재들을 잘 분별하여 쓸 수 있을지, 그 방안을 물었다.

이에 대해 강희맹은 “사람은 형상과 모습이 만 가지로 다르고 기호와 욕구가 만 가지로 구별됩니다. 저마다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현명함과 부족함, 어두움과 밝음, 강함과 약함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니 이 모든 차이를 바로잡아 인격을 완성시킨 후에 그 사람을 등용하고자 한다면 설령 요순(堯舜)과 같은 임금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인재를 뽑아 임무를 맡길 때 망설이게 되는 지점은 보통 인재가 가진 단점 때문이다. 저 사람이 일은 잘하는데 성격이 안 좋아. 저 사람은 이 업무만 잘하고 다른 일들에는 소질이 없어. 저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한데 일 처리 능력이 떨어져. 저 사람은 고집스러워, 아부를 잘해,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본인 생각만 옳다고 여겨, 사회성이 부족해 등등. 이런저런 단점 때문에 주저한다. 그러나 인재들을 완벽하게 만들어 이끌어가는 것은 요순 같은 전설상의 성군(聖君)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강희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저 세상에 완전한 재주란 없습니다. 적합한 자리에 그 재주를 쓰게 하소서. 모든 일에 능통한 사람도 없습니다. 맡은 바 일에 그 능력을 쓰게 하소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한다면 탐욕스러운 사람이든, 청렴한 사람이든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자나 허물만 지적하려 든다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누구는 쓸 수 있고, 누구는 쓸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재능만 우선해서는 안 됩니다. 잘하는 점을 취한다면 어떤 사람이든 쓸 수가 있습니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 단점을 보완해준다면 어떤 사람이든 쓸 수가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고 부족한 점들이 있다. 만일 인재가 완전하길 바라고 단점이 없길 바란다면 세상에 쓸 수 있는 인재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해악만 끼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저 없이 내쳐야 하겠지만 나라와 백성에게 보탬이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장점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많은 인재를 활용할 수 있고, 인재들이 가진 역량을 공동체를 위해 투입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단점을 외면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강희맹은 “탐욕스러운 사람은 청렴하도록 바로잡아 주고 유순한 사람은 강하도록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사사로운 지혜를 물리치게 하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자기의 재능만 믿는 사람은 거만한 마음을 꺾어주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학문을 익히지는 않았으나 마음이 정직한 사람, 우직하지만 아는 것이 부족한 사람, 지조가 있으나 재능이 없는 사람은 단점을 덜어낼 수 있도록 교양을 갖추게 해야 합니다”라고도 했다. 즉, 사람의 장점을 취하라는 것은 단점으로 인해 그 사람을 사장하지 말라는 것이지, 장점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의 장점을 취한 뒤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단점을 보완하고 바로잡아 주어야만 인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인재와 공동체의 상호 발전도 가능해진다는 것이 강희맹의 생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든 기업이든 경영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요즘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재는 언제나 있었다. 다만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인재로서 쓰지 못했을 뿐이다. 강희맹이 과거시험 답안지에서 지적한 것들. 먼 곳에 있는 인재들과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인재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고, 그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 주관과 선입관에 빠져 가까이 있는 인재들의 진면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인재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재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제공해주지 않은 것. 리더의 입맛에 맞는 인재만 선호하고 인재가 가진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 등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조직과 그 조직의 리더들은 바로 이 부분부터 자기반성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게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논어와 조선왕조실록』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8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2020년 11월 Issue 1 목차보기